폭행 장면 과다 반복 노출 팩트 넘어 정신적 상처
'인천 어린이집' 명명으로 동일 이름 보육기관 봉변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유사 피해 사례가 속속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피해 아동과 학부모, 해당 보육기관 원생 등과 관련한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의 과도한 상세 보도와 모자이크 등 신변 보호 처리 없는 CC(폐쇄회로)TV 영상 장면 공개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들이 노출되면서, 특히 가해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SNS 주소 등 개인 정보가 온라인상에 유포된 상태다.
때문에 이 같은 상황에서는 수일 내 피해 아동 혹은 부모, 피해가 발생한 어린이집의 원생들의 신상 정보도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언론이 2차 피해를 가할 수 있는 지나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이밖에 신문·방송 등 언론에서 아동이 학대를 당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있어 학부모들 사이에서 ‘집단 트라우마’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 학부모뿐만 아니라 현재 자녀를 보육시설에 보내고 있거나 보낸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이 충격적인 장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자칫 전체 어린이집 종사자에 대한 불신과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 나오고 있다.
피해자 신상정보 유출 가능성 “지나친 보도는 자제해야”
신상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는 과거에도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바 있다. 사회의 지나친 관심과 시청률, 판매부수를 올리려는 언론사들의 자극적인 보도에 피해자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오히려 또 다른 제2의 피해를 낳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는 20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언론이나 네티즌에 의한 2차 피해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언론도 네티즌들도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가해자가 물론 잘못한 것도 있지만 보호받아야 할 부분이 있기도 하다”며 “사실 너무 과열보도, 경쟁보도를 하다보면 부정확한 보도를 하기도 하고 네티즌들도 잘못된 정보를 올리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과거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언론사의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보도, 과열 경쟁으로 인해 2차 피해를 겪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경우도 있다며 언론사 자체적인 자정 노력과 일종의 보도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에서 아무리 사건을 보도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피해자들의 경우 언론에 의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화면을 통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피해자 인권침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시정해야할 부분들이 많다”고 언론의 보도 행태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본보와의 통화에서 “사건 보도와 관련해서는 언론이 자체적으로 조심을 해야 하지만, 취재 경쟁에 빠지다보니 개인의 인권을 상당히 소홀히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물론 주위 가족이나 어린이집에 대한 2차 피해가 상당히 심각하다”며 “언론이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인권 보호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언론사 과열 보도로 인한 인권 침해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차 “언론이 우리 사회 공공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인천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으로 불리며 ‘인천 어린이집’이라는 상호명을 가진 타 보육기관에 항의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되는 등 간접피해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인천 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인천 남동구의 한 어린이집에는 사건 보도 직후 욕설이 담긴 항의 전화나 협박성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잘못된 언론 보도 행태로 간접피해를 입은 해당 어린이집 관계자는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언론에서 그냥 ‘인천 어린이집’이라고만 하니까 사건 보도 이후에 계속 우리 기관에 항의 전화가 왔다”며 “(너무 심해서) 언론사에 전화해 정정해서 보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고쳐지는 것 없이 그대로 나가더라”라고 씁쓸해했다.
학부모들, 극도 분노·불안감 표출…언론 또 다시 ‘집단 트라우마’ 조장?
또 현재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종편 채널과 지면신문은 모두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번 사건은 물론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연일 주요 이슈로 꼽으며 학대 영상을 편집해 보도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인천 연수구에서 벌어진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당시 여아가 보육교사의 손찌검으로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장면이 여실히 공개돼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후 인천 부평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동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 같은 충격적인 영상을 지속적으로 재생하거나 게재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른바 ‘집단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기 김포시 소재 어린이집에 5세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한 학부모는 19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처음 영상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장면들이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계속 나오니까 괜히 나쁜 상상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심장이 벌렁벌렁한 느낌을 자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 CCTV 영상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저런 선생님이 있나’라는 생각에 분노를 느꼈다”며 “그런데 TV를 틀거나 인터넷을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장면이 나오니까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괜히 우리 아이도 위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불거진 여러 어린이집 폭행 사건들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충격적인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니 분노와 걱정이 커져 이제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학부모는 “언론이 문제를 알려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한데, 똑같은 장면을 계속 내보내니까 자꾸 생각이 나고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크다. 이제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 보다는 대안 마련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또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경험이 있는 40대 여성 직장인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마 모든 부모가 그 장면을 보면서 교사에 대한 살의를 느낄 정도로 분노했을 것”이라며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인데 그게 계속 반복돼서 나오다보니 뇌리에 박혀 다른 일에 집중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과거 자신의 자녀가 어린이집에서 겪었던 일화를 전하며 “이번 사건으로 자꾸 10여년 전의 일이 떠올라 다시 분노를 느끼고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힘들다”면서 아울러 “지금은 아이가 크긴 했지만 학교에서 폭력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확대 상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자극적인 방송은 조금 접고 차분하게 무엇부터 (해결)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더군다나 당사자인 아이의 경우에는 커서 이 장면을 접할 수도 있을 텐데, 아이가 겪을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방송은 조금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익명을 요구한 S대 신문방송학과 A 교수는 2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똑같은 폭행장면을 반복적으로 과다하게 노출함으로써 사건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흐려지고 시청자들을 흥분시키게 돼 분노의 표출로만 나타나게 된다"며 "(언론의 반복 보도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보육교사들 “전체 교사들을 향한 비난, 이해는 하지만 우려스럽기도”
이번 사건으로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가해지면서 보육시설 종사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개인의 자질 문제가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모든 교사들의 문제로 비춰질 수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아동 폭력 사건이 발생한 뒤 유사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면서 전사회적으로 어린이집 전체 종사자들의 자질 문제가 거론되자 일부 보육교사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당혹스럽고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사건이 불거진 지난 15일 자신을 보육교사라고 칭한 한 네티즌(sej****)은 온라인 포털 사이트 토론방에 이번 사안과 관련, 논란이 되고 있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어린이집 보육교사 학력 문제 등에 대한 견해와 함께 보육교사로 수년간 일해 오며 느꼈던 심정 등을 밝혔다.
해당 글에서 그는 “요 며칠 어린이집 아동학대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난무한 가운데 많은 이들의 글을 읽고 서러움을 금치 못해 이렇게 글을 올린다”며 “여러 가지 오해에 대한 변명이라 할지라도 어린이집 종사자들을 예쁘게 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작성 이유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동학대는 유치원·어린이집을 불문하고 교사 개인의 자질 문제이지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모든 선생님들이 마치 아동학대를 행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사랑받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점을 인정해주시고 격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와 관련해서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보육교사의 개인 인권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씀들은 너무 서운하다”며 “모든 보육시설 종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하고 CCTV를 설치한다면 (과연) 아동학대가 근절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20일 12시 현재 해당 글은 조회수 8만을 기록하고 있으며, 글 아래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여론이 보육교사를 몰아세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보육교사 여러분 힘내세요” 등의 네티즌 댓글 1200여개가 달려있는 상태다.
이 외에도 자신을 어린이집 보육교사라고 밝힌 여러 네티즌들은 ‘해당 사건은 개인적 일탈일 뿐 전체 보육교사의 문제가 아니다’는 취지의 글을 통해 일부 보육교사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다른 보육교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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