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보내도 전체 의원 10%만 응답 여당의원 24명은 '거부'
시민단체 "새누리당이 인권법을 야당과의 협상수단으로 인식"
북한 동포들의 인권을 위한 북한인권법이 지난 2005년 처음 국회에 발의된 지 벌써 10년째다. 그간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계류되거나 폐기된 법안만 10건이다. 최근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위한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은 반짝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도 마찬가지다. ‘데일리안’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북한 동포들의 인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2월 3일 화요일 오전 11시 30분. 겨울 추위가 한창인 이날도 어김없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서는 올바른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제17차 ‘화요집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14일부터 시작한 집회는 약 70여개의 단체가 모여 결성한 ‘올바른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모임’(이하 올인모) 주도로 현재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같은 자리에서 진행되고 있다.
올인모 회원들은 ‘북한인권법 제정, 시급한 통일 준비다!’라는 현수막을 펴놓고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바른 북한 인권법이 제정될 때까지 화요집회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도 밝힌 상태다.
집회 시작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이날 약 100여명의 북한 인권단체 소속 회원들과 보수시민단체 회원들, 실제 과거 수용소 생활을 하며 북한인권의 참상을 눈앞에서 지켜본 여러 탈북자들은 한 목소리로 “북한주민을 살리는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을 살리는 법”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자리에 모인 일부 탈북자들은 추운 날씨 탓에 털모자와 장갑, 목도리로 꽁꽁 싸매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손에 쥔 작은 태극기는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이들은 한 손 또는 양 손에 든 태극기 모형을 흔들며 북한 주민의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북한인권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인권법 설문에 전체 의원 ‘14%’만 응답…의원실 찾아가도 반응 ‘싸늘’
국회 앞 화요집회는 이날로 17회를 맞았지만, 여전히 정치권은 북한인권법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년 전 처음으로 북한인권법을 발의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 최초의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 같은 당 심윤조·이인제·하태경·한기호 의원 등 북한인권법 대표 발의자들과 이에 꾸준히 관심을 보인 몇몇 의원을 제외하면 정치권의 관심은 그야말로 ‘제로’에 가깝다.
실제 올인모는 북한인권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돌며 여러 차례 여야 의원실 문을 두드렸지만, 되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는 후문이다.
3개월에 걸쳐 북한인권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지를 전체 의원실에 돌렸지만, 여당 의원들의 응답률은 상당히 저조했고, 야당 의원들 역시 대부분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야당 내부에서 설문조사에 답을 하지 말라는 단속까지 나섰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는 후문이다.
실제 지난해 2월 출범한 ‘북한인권법을 위한 청년 국회방문단’(이하 청년방문단)은 올인모와 함께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북한인권과 북한인권법에 대한 대국회의원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데일리안’이 입수한 이 설문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응한 국회의원은 43명(새누리당 의원 39명,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4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약 14.3%에 불과하다. 청년방문단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의원실에 연락해 설문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결국 응답률은 10%대에 그쳤다.
반면, 북한인권 및 북한인권법 설문요청에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힌 의원은 48명을 기록했다. 북한인권법 설문조사를 거부한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 24명,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24명이었다.
주목할 점은 설문을 거부한 의원 가운데 절반이 여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설문조사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회의원의 관심정도 △북한인권법의 필요성 △북한인권 개선 방안 △대북지원 모니터링 방안 등 북한인권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이 골자였음에도 이를 새누리당 의원들이 거부한 것은 북한인권에 대한 여당의 인식이 크게 떨어져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설문조사 외에도 청년방문단은 북한인권법에 대한 개별의원의 견해를 듣기 위해 의원실을 직접 찾아갔지만 의원들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의원실에서 보좌진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 외에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보좌진마저 만나지 못한 의원실에는 메일과 팩스로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야당도 문제지만 여당이 더 문제…진정 통과시킬 마음 있나”
이와 관련, 채명성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여당이 무관심하다는 것”이라며 “북한인권법을 정략적으로만 이용한 측면이 있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고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채 사무총장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설문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이다. 실제 새누리당의 경우에도 북한인권법안을 발의한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북한인권법 자체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북한인권법 문제로 야당과 대립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못한 원인은 여당의 관심 부족이다. 지금까지 새누리당의 행태를 보면 북한인권법을 야당과의 타협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15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까지 북한인권법을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으로 추진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2011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시절에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야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또 최근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고 유엔 안보리가 이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지금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킬 최적의 타이밍”이라며 제정을 강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당내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보니 일부 북한인권 단체와 탈북자 단체에서는 당 지도부 자체가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열망이 없으면서 ‘립서비스’식 발언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인지연 북한인권법통과를위한모임 대표는 화요집회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부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열망이 불붙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 대표는 “이번처럼 100명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적이 없었다”며 “하루라도 빨리 세상 사람들에게 북한 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 해야겠다 싶어 우리가 의지를 갖고 사람들을 모았더니 이만큼이나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인권법 제정에는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참여와 행동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마음으로만 응원하지 말고 단 한번이라도 함께 자리해서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현재 이들이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북한인권법은 윤상현(2012년 6월), 황진하(2012년 6월), 이인제(2012년 8월), 조명철(2012년 9월), 심윤조(2013년 3월) 새누리당 의원 등 5명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 5개를 같은당 김영우 의원이 통합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북한주민의 인권 증진과 개선에 목적을 두고 있으며 △인도적 지원 및 국제 인도 기준에 따른 배분·감시 준수(안 제 7조) △북한인권재단 설립(안 제 9조) △북한인권 침해사례 조사 및 관련 자료 수집·기록·보존을 위한 법무부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안 제 12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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