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들어 최대 집회' 시민은 자제 경찰은 인내
<현장>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시위 인원 넘어서
청와대 길목 차벽 대치상황도 벌어졌지만 연행 인원 없어
광화문 촛불집회·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시위 인원 훌쩍 넘어서
청와대 길목 차벽 대치상황도 벌어졌지만 연행 인원 없이 평화적 마무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에 분노한 민심이 100만 촛불이 돼 활활 타올랐다. 12일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2016 민중총궐기’ 행사에 최대 100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주최 측 추산 최대 70만 명의 참가 인원을 넘어선 것으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최대 규모다.
12일 주최 측인 민중총궐기투쟁본부·민주노총을 비롯한 1503개 사회시민단체의 연대체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비상국민행동)’ 등에 따르면 이날 진행된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시민은 오후 7시 30분 기준 100만 명을 넘어섰다. 경찰은 오후 7시 10분 기준 26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촛불집회’(주최 측 추산 70만명·경찰 추산 8만명), 2004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시위(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13만명) 참가 인원을 넘어선 것으로, 2000년대 이래 열린 집회 중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이날 오후 4시부터 개최된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집회는 광화문광장부터 서울광장, 을지로 일대까지 가득 메운 100만 시민들의 참여로 오후 10시 20분을 기점으로 공식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됐다.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청소년뿐 아니라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 중년 부부, 휠체어를 탄 장애인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했다.
대규모 인원이었지만 집회는 큰 사건사고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한 오후 8시께에도 경찰과 충돌에 따른 부상자와 연행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인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사거리 일대에서 차벽을 사이에 두고 일부 시민들과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이때 대부분 시민들이 만류하며 평화집회 기조를 유지했다.
집회는 공연과 시국연설 등으로 이뤄진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행사에 이어 ‘청와대 에워싸기 국민대행진’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집회 내내 “박근혜 퇴진”, “몸통은 박근혜”, “사과 말고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저마다 손에 쥔 피켓에는 ‘이게 나라냐’, ‘대한민국 새로고침’, ‘새누리도 공범이다’, ‘박근혜를 우주로’ 등의 문구가 적혔다.
저녁 7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는 수십만 개의 촛불이 일제히 타올랐다. 시민들은 촛불이 없으면 스마트폰 손전등을 이용해 촛불 효과를 내며 동참했고, 자발적으로 촛불 파도타기를 하는 장관도 수시로 연출됐다. 이때 참가자들은 촛불을 조명삼아 셀카와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앞서 서울광장에서 4시부터 시작된 민중총궐기는 5시부터 ‘청와대 에워싸기 국민대행진’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세종로사거리-내자사거리-청운동사무소 구간 △의주사거리-서대문-금호아트홀-내자사거리 구간 △정동길-정동사거리-포시즌호텔-적전사거리-내자사거리 구간 △을지로입구-종로1가-안국사거리-내자사거리 구간 △한국은행사거리-을지로입구-을지로2가-종로2가-재동사거리-내자사거리 구간 등 5개 경로를 통해 청와대로 향했으며, 경찰이 차벽을 설치한 경복궁역 교차로에서 최종 대치했다.
당초 경찰은 주민 피해와 교통소통을 명분으로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와 내자로터리까지 행진하는 것을 불허,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남쪽 부분까지만 행진을 허용하겠다고 조건 통보했으나, 주최 측이 경찰의 행진 통고 금지를 취소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법원이 이를 수용해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이 전면 허용됐다.
차벽 앞에 줄지어 앉은 시민들은 자유발언을 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이어갔다. 차벽 앞 경찰과 대치한 시민 사이에 작은 충돌이 있기도 했으나,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경찰은 적이 아니고 악이 아니다” “불필요한 충돌을 하지말자”고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평화시위를 주장하는 참가자들을 향해 “청와대로 가자” “그러려면 왜왔냐”고 소리치는 시민도 있었다.
밤 10시께에는 한 시위 참가자가 차벽에 오르자 경찰 4~5명도 차벽에 올라 대응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나서 차 위에 올라간 시위참가자에게 “선동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말했고, 경찰은 그를 제압해 차벽 아래로 내려보냈다.
밤이 늦고 시위가 길어져도 경찰과의 대치가 길어지자 시민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경찰을 행해 ‘100미터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는 같은 날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가 청와대 인근 100미터까지 행진을 허용했으나 경찰이 800미터 지점에서 청와대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구호다.
12일 오후 4시 민중총궐기 행사가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서울역 시청 광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2호선에서는 “시청 행사로 인해 시청역 승강장이 혼잡하니 그 전 충정로역이나 다음 을지로입구역에서 하차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올 만큼 인파가 몰렸다.
민중총궐기 본집회가 시작되기 전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전국 노동자집회가 열리고 있었으며 미리 도착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광화문부터 숭례문까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서울광장 화장실지도’ ‘미아보호소’ ‘분실물보관소’ ‘응급의료소’ 등을 배치했다.
민주노동조합전국총연맹(민노총) 등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이날 4시부터 ‘백남기·한상균과 함께하는 민중의 대반격을! 박근혜 정권퇴진! 2016 민중총궐기’ 집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혜경 민노총 부위원장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옥중에서 보내온 서신을 대독했다.
한 위원장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차은택 등 불법 권력에 부역한 자들이 한 명, 한 명 감옥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병우는 왜 소식이 없는지 궁금하다”며 “불법 통치자 박근혜는 언제 들어올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와 최순실, 비선 권력의 공범 재벌 자본 권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불법 재벌들도 예외 없이 독방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재벌 특혜가 아니라 재벌 민주화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집회에 함께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고 백남기 농민 유족 백도라지 씨, 김충환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장도 투쟁사를 통해 “농민·노동자·국민이 손잡고 대한민국이 안전하게 살구 있고 인간존엄성이 중시되는 민주국가를 만들자”고 외쳤다.
시청광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풍자의 장이었다. 주최 측 스트레칭 시범자는 “3억5000만 원을 들여 늘품체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3만5000원을 들여 하품체조를 만들었다”며 시민들이 재미있게 따라할 수 있는 스트레칭 시범을 보였다.
김충환 위원장은 투쟁사에서 “박근혜 뒤를 보니 정유라 최순실 최순덕 끝이 없다”며 “막장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야 끝난다고 하는데 끝까지 파내 이 막장 드라마를 끝내자”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상여를 준비했다. 김영호 전농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 버려 상여를 가져왔다”며 “국민을 버린 대통령 초상을 치러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투쟁퇴진 선언문은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대표들이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전국여성연대 대표자는 선언문과 함께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집회’라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앞서 민노총은 ‘병신년, 아녀자, 암탉’ 등으로 지칭하며 여성과 장애인을 혐오하는 발언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시민들은 ‘박근혜정권 타도하자!’ ‘우리가주인이다 이것이나라인가’ ‘재벌도 공범’ ‘그걸 정치라고 하고 있으니 나라가 이꼴이지 책임지고 하야하라 새누리당도 공범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몸통은 박근혜다 2선후퇴 말도안돼” “박근혜는 퇴진하라 전경련을 해체하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친구 가족들과 함께 아이들 5명, 어른 5명이 촛불을 들고 시청 광장으로 나온 신기현 씨(40대·남)는 “도저히 못 참아서 나왔다”며 “아이들이 이런 사건을 안다는 것 자체도 창피한 일인데, 아이들이 이런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기를 바라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수록곡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를 부르며 이동했다. 서울예대 학생 조예은 씨(20대·여)는 “성난 민중들이 대항을 하는 이야기인만큼 우리도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하야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됐다”고 했다.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차벽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장소까지 나온 정모 씨(20대·여)는 “나라가 나라가 아니라서, 정말 분노를 추스를 수 없어 나서 나왔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2선후퇴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우병우는 황제수사를 받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부가 한다는게 하는게 아니라는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의 맞불집회도 개최됐다. 앞서 지난 5일 촛불집회에서 여고생을 때려 물의를 빚은 주옥순(63) 씨가 이끄는 '엄마부대'와 박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단체 회원 5000여명은 오후 3시 여의도에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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