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시시 웃은 류현진, 격랑의 마운드 타고 연승?
직구 줄이고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 위력 키워
다음 등판일정도 투수에 유리한 샌디에이고 원정
류현진(30·LA 다저스)도 첫 승을 거둔 뒤 “기념비적인 날”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류현진은 1일 오전(한국시각)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5.1이닝 3피안타 9탈삼진 1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1승 4패. 2014년 9월 1일 샌디에이고전(7이닝 1실점) 이후 973일 만에 맛보는 승리다. 평균자책점은 종전 4.64에서 4.05으로 떨어졌다.
1회초 선두타자의 외야 뜬공을 우익수 푸이그가 글러브로 잡았다가 놓쳐 3루타가 됐다. 이어 류현진은 적시타를 맞고 먼저 실점했다. 이후에는 변화구 구사를 높이면서 안정적인 투구를 했다. 올 시즌 늘 그렇듯, 마운드에 있는 동안 타선의 화끈한 지원은 없었지만 류현진은 실점하지 않고 잘 버텼다.
류현진은 투구수를 100개로 제한한 상황이라 2-1 살얼음 리드 속에서도 6회 한 타자만 잡고 내려왔다. 더 던져도 될 만큼 구위는 괜찮았고 안정감도 있었다. 류현진은 로버츠 감독 말대로 좋았을 때로 가고 있다. 보는 사람들이 이제는 편안함도 느껴진다. 구속 얘기만 나오는 직구 대신 변화구의 비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샌프란시스코전(6이닝 1실점)과 같은 퀄리티 스타트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체인지업을 비롯한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과 안정적 제구로 필라델피아 타선을 압도했다.
포수 그랜달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류현진은 최근 위력이 떨어진 직구에 비해 변화구 비율을 상당히 높였다. 이는 직구 스피드가 90마일이 채 되지 않은 가운데 9개의 삼진을 유도한 원동력이다. 9탈삼진은 자신의 시즌 최다 기록.
지난 4경기에서 류현진은 4패 평균자책점 4.64에 그쳤다. 복귀전 포함 3경기에서는 매번 홈런을 얻어맞았다. 직구 구속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류현진은 최근 2경기에서 직구 보다 체인지업과 커브, 슬라이더의 비율을 높이면서 퀄리티스타트 혹은 근접한 피칭을 하고 있다.
복귀전 포함 초반 3경기에서는 체인지업이 20%대에 머물렀다. 그런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지난달 25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96개 가운데 40개가 체인지업이었다. 변화구 구사율은 70% 수준에 이르렀다. 첫 승을 거둔 이날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22개의 체인지업 가운데 17개가 헛스윙을 유도했다. 9개 탈삼진 가운데 커브로 4개, 체인지업으로 3개, 슬라이더로 1개를 잡았다. 직구(투심)로는 1개만 잡았다.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향하는 체인지업, 중반부터 비중을 키운 70마일 초반대 커브가 절묘하게 떨어지면서 타자들의 방망이는 헛돌았다. 이날도 직구는 32개에 그쳤다. 체인지업(35개)과 커브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이날 최고 시속 148㎞에 머문 직구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 다른 방향을 택한 것이다. 류현진 말대로 직구 비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이날 잘 통하는 변화구를 적극 구사한 것이다.
류현진의 커브 구사율은 10% 안팎이었다. 20% 수준의 체인지업, 좌타자를 상대로 30% 수준을 구사하는 슬라이더에 비하면 구사율이 매우 낮다. 그러나 이날은 커브의 비중을 크게 높이며 필라델피아 타자들을 농락했다. 주무기 체인지업을 노리고 있다가 낙차 큰 커브가 들어오면 속을 수밖에 없다. 체인지업-슬라이더에 이어 커브까지 무기로 장착한 셈이다.
류현진은 클레이튼 커쇼를 제외한 4명의 투수들과 선발 로테이션에서 경쟁하고 있다. 최근 3승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 중인 브랜든 매카시는 자리를 잡았고,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는 유리아스도 콜업 직후 5이닝 이상 책임졌다. 마이너리그에서 불러올린 만큼 당분간 시간을 줄 수 있다.
리치 힐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류현진은 이제 마에다 겐타-알렉스 우드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날의 승리는 너무 반갑다. 변화구의 비율을 높이며 승리 방정식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류현진은 2경기 연속 호투로 선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뛰어난 선발투수들이 모여 있는 격랑의 다저스 마운드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는 더 큰 동기부여로 경쟁의 긍정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쿠어스필드-월드시리즈 우승팀 컵스를 연달아 만났던 것과 달리 일정상 행운(?)도 따른다. 다음 등판일정도 류현진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다. 다음 등판 때 만날 것으로 예상하는 팀은 NL 서부지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다저스에 3.5게임 뒤진 지구 4위의 팀이다.
아직 다저스의 선발등판 일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로테이션상 7일 또는 8일 출격 가능성이 높다. AT&T 파크만큼은 아니지만 홈런이 많지 않은, 전통적으로 투수들에게 유리한 펫코 파크 원정 경기 출격이 유력하다는 얘기다.
류현진은 샌디에이고전에서 기분 좋은 추억도 많다. 통산 6경기 4승1패 평균자책점 2.19(37이닝 9자책점)로 호투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가장 많은 승리의 희생양이 된 팀이 샌디에이고다. 펫코 파크에서는 2승, 평균자책점은 0.90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필라델피아전에서 승리를 따내기 전 마지막 승리도 펫코 파크(2014년 9월1일)에서 이뤘다.
올 시즌 초반 샌디에이고의 팀 타율도 0.223로 NL 14위, 출루율은 0.223으로 꼴찌다. 35개의 팀 홈런으로 5위라는 것을 빼면 위협적인 타선은 아니다. 감을 잡고 분위기를 탄 류현진이 다양한 무기로 펫코파크에서 연승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