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법인·고소득자 증세 바탕 경기부양안 내놔
한국도 확장적 재정정책 유지하려면 ‘증세’ 불가피
전문가들 “증세 반감 고려, 단계적 논의 시작해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31일(현지시각) 2조2500억 달러 규모 경기부양안을 공개하며 재원 마련 방안으로 법인세와 연 4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우리나라도 확장적 재정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연설을 통해 인프라·일자리 투자 법안인 ‘미국 일자리 계획(American Jobs Plan)’을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는 향후 ▲교통 분야 개선에 6200억 달러 ▲식수 및 전력망 개선에 6500억 달러 ▲제조업 분야 지원에 5800억달러 ▲노인 및 장애인 지원에 40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양책 발표와 함께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았다. 법인세를 기존 21%에서 28%로 올리고 조세회피처와 해외 사업본부를 세우는 기업에 대한 세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화석 연료 업체에 대한 세금 면제 혜택은 중단한다.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도 늘린다. 연간 4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증세 목적을 “보다 평등한 이득을 보장하는 데 있다”며 “연간 40만 달러 이하 소득자는 추가 세금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국가 간 법인세 평준화를 위해 세계 최저 법인세율을 13%에서 21%로 인상하는 카드를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미국처럼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최근에도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대규모 투자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미국은 증세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반면 우리는 지출조정과 국채발행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다. 씀씀이를 아끼고 세금 대신 빚을 늘리겠다는 의미다. 국가 재정 상태를 보면 마냥 빚을 늘리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1월 우리나라 관리재정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예산 집행을 시작하는 1월부터 관리재정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1년 이후 지난해가 처음이다.
관리재정수지는 당분간 해마다 100조원 이상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가 지난해 9월 내놓은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올해 관리재정수지는 마이너스(-)109조7000억원, 내년엔 –123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가 채무액도 계속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예상 국가 채무액은 945조원 수준이다. 예상대로면 내년에 1000조원을 넘어서고, 2023년에는 1196조원, 2024년 1327조원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추가경정예산안까지 포함하면 채무 규모는 더욱 커진다.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 경우에 따라 올해 안으로 국가 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
나랏빚 증가에 대한 우려는 재정 당국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알라스테어 윌슨 무디스 국제신용평가사 국가신용등급 글로벌총괄과 화상 회의에서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며 재정준칙 법제화, 지출구조조정, 세입기반 확충 등 재정안정화 노력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마저 재정 상태를 우려할 상황이 되자 전문가들은 ‘증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증세를 하지 않고 국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인프라 확충 등으로 미래 세대가 수혜자가 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현재는 재난지원금 등으로 돈을 소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증세 필요성을 지적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해 11월 브리핑에서 “장기적으로 증세를 통한 재정 수입 확보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미 다양한 증세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다만,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증세는 선거용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국 정부가 증세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하지만 재정 당국은 머뭇거리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 추경 당시 증세 필요성에 대해 “증세는 복지 수준과 국민 부담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국민적인 공감대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세 요구를 ‘국민 공감대’를 이유로 피해 간 것이다.
홍 부총리 말대로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라도 논의는 서두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박형수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지금 대규모 적자를 내는 상황에 극히 일부 가계와 기업에만 세금을 걷어서는 재정 상황을 탈출할 수 없다”며 “중산층을 포함하는 증세 정책을 지속적이고, 완만하게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