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8월 1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아더 홈우드 역으로 열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올해로 10년차를 맞은 뮤지컬 배우 이호진은 꾸준히 성장하는 배우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주변의 사람들, 주변의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쓸모를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10년이라는 긴 시장동안 그를 단 한 번도 정체되지 않게 만든 힘이다.
공연계를 덮친 코로나19 여파로 1년여의 공백을 갖기도 했지만,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드라큘라’에 아더 홈우드 역으로 참여하면서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의 10년을 느리더라도 정체되지 않는 배우로 무대에 오르겠단 각오다.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나요?
아뇨,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고3 때까지 체육 관련 학과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뮤지컬을 접하게 됐어요. 친구의 친누나가 남뮤지컬 아카데미라는 곳을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올리는 뮤지컬 ‘시스터 액트’를 보러 가게 됐죠. 공연을 보는 내내 ‘아,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이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깊은 울림, 아니 확신이 생겼죠.
그래서 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누나에게 전화해서 입시학원을 소개받아 그 다음날 바로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입시 3달 정도를 남겨두고 급하게 진로를 바꾸게 됐어요. 입시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뮤지컬을 본적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해본 거 같아요. 그 당시 친구의 누나가 최근에 뮤지컬 ‘마틸다’ 미스 허니, ‘마리 앙투아네트’ 마담 랑발 역할로 활동 중인 박혜미 배우입니다.
-올해로 딱 데뷔 10년차가 됐어요.
네,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크게 와 닿지는 않았는데 질문을 받고 돌이켜보니 제가 막내 때부터 도움 주시고 보았던 형님, 누님, 선배님들, 선생님들이 생각나네요. 지금까지도 너무 멋진 모습들로 무대를 지켜주시고 빛내주시고 계셔서 그저 모든 분들께 존경스러운 마음뿐입니다.
-데뷔 당시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너무 생생합니다. 저에게는 평생에 잊지 못할 기억이죠. 서울시 뮤지컬단 객원으로 들어가서 뮤지컬 ‘호기심’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서울 지역을 투어 하는 공연인데 첫 투어 극장이 취소가 되는 바람에 제가 뮤지컬을 보고 꿈꾼 바로 그곳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그때의 그 감격은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대에 오르면서, 환경도 마음가짐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동료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네요. 경력이 쌓이고 여러 작품들을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동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에게는 모두 스승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도 계속 자극을 받고 좋은 부분들은 배워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것이 있다면?
제 스스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네요. 하하. 저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이호진 배우를 성장시킨 것들을 기억해볼까요?
특별한 사건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저를 성장시킨 건 그저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꾸준하게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 사소해 보이던 작은 것들이 모여서 저를 지금까지 성장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은 일도 있었나요?
적어도 공연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거나, 주저앉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19로 공연이나 오디션이 미뤄지거나 없어지면서 1년 동안 공백이 있었습니다. 공연 말고는 다른 일은 해보지 않은 저에게는 너무 앞길이 막막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도 찾아봐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공연을 놓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던 중 이번 ‘드라큘라’에 참여하게 됐죠.
네, 코로나19로 1년 동안 공백기를 가지고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던 중 오디션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합격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더 홈우드 캐릭터를 맡고 계시죠. 세 남자(퀸시, 잭, 아더) 중 루시의 선택을 받게 된 인물인데요. 어떤 매력이 있길래 루시를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루시가 소개하는 대사를 보면 퀸시나 잭은 외모 그리고 사회적 지위, 능력 등으로 설명을 하는데 아더는 옆집 살던 소꿉친구, 그냥 늘 같이 함께했던, 항상 옆에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요. 아마 퀸시와 잭보다는 외모, 사회적 지위는 좀 부족하지만 그냥 편안한 매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더 홈우드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셨나요.
제가 생각하기엔 생각보다 조심성도 없고, 조금 과격하며,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데이비드 연출님이 설명해 준 아더는 조금 달랐어요. 처음에 연습을 할 때 데이비드 연출님이 아더에 대해 ‘신사적이고 과격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셨거든요. 그리고 루시 역의 선민 배우가 공연 1막이 끝나고 ‘왜 루시가 아더를 선택하는지 아냐’고 저에게 물어보면서, ‘아더는 누구보다 친절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말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집중해서 감정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최대한 맞춰가려고 매회 집중하고 있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더 선명하게 보이길 바랄 뿐입니다.
-극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나 넘버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잇츠 오버’(It's Over)라는 넘버를 좋아해요. 음악뿐만 아니라 무대 조명 모든 것들이 합을 이뤄서 그 역동적인 장면을 만들어 눈과 귀가 즐거운 넘버인 거 같습니다.
-만약 다음 시즌에 ‘드라큘라’에 다시 참여하게 된다면, 그때도 아더 홈우드를 선택할까요?
다른 매력적인 배역들도 너무 많아 물론 도전해보고 싶고 욕심도 나지만 오히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더를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만약 이번 시즌에서 놓치고 갔던 부분들이 있다면 보완해서 조금 더 완벽하게 성숙해진 모습의 아더를 표현해보고 싶거든요.
-그간 ‘지킬앤하이드’ ‘명성황후’ ‘맘마미아’ 등을 비롯한 다수 작품들에 참여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나요?
모든 작품들이 저에게는 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만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입봉작인 ‘호기심’이 제일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지킬앤하이드’에서 제가 앙상블을 겸하면서 짧은 솔로가 있는 사제라는 캐릭터인데요. 제가 입시할 때 지킬 넘버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 ‘MURDER, MURDER’라는 넘버에 이 사제 솔로를 들으면서 막연하게 ‘지킬앤하이드’를 하게 되면 저 부분은 내가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곡이에요. 근데 11년이 지나고 그 막연했던 꿈을 이뤄냈습니다!
-향후 도전하고 싶거나, 다시 서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요?
도전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배역이나 작품 열심히 준비해서 지원할 거고요. 꼭 서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레미제라블’과 ‘스위니 토드’ 무대에 오르고 싶네요.
-이호진이라는 배우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요?
생각보다 재미있는, 생각보다 진지한 사람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무대 위에서 저 배우 참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람 냄새나 보인다. 특별히 튀거나 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기억되고 싶어요.
-이호진 배우의 10년이 지났는데, 앞으로의 10년은 어떨까요.
사실 벌써 10년이 지났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10년 후의 저는 그냥 지금처럼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지낼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10년 보단 조금 더 성장해 있지 않을까요? 저의 바람인데 어디서든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이호진 배우만의 신념이 있다면?
멈춰있지 않는 것, 정체되지 않는 것, 갇혀있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을 것, 조금 느려도 올바른 길을 가는 것. 무대가 됐든, 삶이 됐든, 배우로서, 나로서 언제나 선한 영향력으로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