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라큘라' 8월 1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뮤지컬 배우 이재현은 지난 2011년 뮤지컬 ‘바울’로 데뷔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지만 이재현의 10년 배우 인생에서 그가 가진 ‘신념’은 처음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의미를 부여할 법도 싶은 ‘10주년’이지만, 그에겐 성장을 위해 거쳐 온 여느 해와 크게 다르지 않는 2021년이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건설 관련 회사에 취직했던 이재현은, 뒤늦게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쫓아 무대에 올랐다. 어렵게 찾은 꿈인 만큼, 한 순간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했고, 또 자신이 선택한 무대를 존중했다. 이런 마음가짐은 뮤지컬 제작자에서 그를 꾸준히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뮤지컬 ‘드라큘라’에 다시 함께 하게 됐네요.
지난 시즌 ‘드라큘라’가 시작할 무렵에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는데요. 그때 참 많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다시 ‘드라큘라’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의 아쉬웠던 마음을 이번 공연에서 다 풀어놓고 싶네요.
-이번 드라큘라에서는 ‘잭 스워드’를 연기하고 계십니다.
정신병원의 원장, 의사입니다. 반 헬싱 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했죠. 젊은 나이에 병원의 원장이 될 만큼 지식이 많고 똑똑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만심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루시에게 청혼한 3명의 남자 중의 하나이며 루시가 아더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축하해줍니다. 하지만 루시가 죽고 난 후 루시의 복수를 위해 아더, 퀸시와 함께 의기투합하는 캐릭터예요.
-잭 스워드를 연기하게 되면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나요?
앞에 말씀드렸다시피 잭은 인텔리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 부분에 초점을 많이 뒀던 것 같아요. 차분한 말투, 지식으로 남을 설득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요즘은 잭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 더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연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루시를 사랑하지만 루시의 선택에 박수를 쳐주고 축복해주죠. 하지만 루시가 쓰러지고 난 이후 흥분하는 아더를 설득하며 차분한 척 하려하지만 결국 잭도 너무 답답한 거죠. 그걸 억누르며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모습 등 여러 부분에서 잭의 인간적인 부분을 보여주려고 노력 중입니다.
-작품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대사나 넘버가 있다면요?
너무 많지만 하나만 꼽자면 ‘Fresh Blood’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넘버가 진짜 ‘드라큘라’의 시작이라는 느낌이랄까요? 노쇠한 드라큘라에서 젊고 강한 드라큘라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너무 짜릿합니다. 이 넘버 후반부만 본다면 정말 런던을 정복할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무대와 조명과 넘버의 조화가 너무 장엄하고 멋진 장면입니다. 뱀파이어 슬레이브들도 한몫하죠(웃음).
-스스로가 느낀 뮤지컬 ‘드라큘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스토리만 본다면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뻔하고 진부한 스토리에 장대한 무대가 회전하고 멋진 영상과 조명, 그리고 매력적인 넘버들까지 조화가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면 더 이상 진부한 스토리가 아니라 멋진 현실이 됩니다.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시즌에 또 한 번 ‘드라큘라’와 함께 하게 된다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또 한 번 잭을 연기하고 싶어요. 제가 같은 작품, 같은 역할을 맡은 게 대극장에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두 시즌 동안 잭을 하면서 지난 시즌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찾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발전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사실 ‘드라큘라’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반 헬싱입니다. 격정적인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한참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이재현 배우의 뮤지컬 데뷔 10주년이기도 하죠.
제가 2011년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바울’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는데, 올해로 11년차가 되었네요. 음, 뒤돌아보면 많은 작품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게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지난 10년보다 더 긴 시간을 배우로서 살고 싶습니다.
-10여년 전,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당시는 어땠나요?
사실 저는 정치행정언론학부 신문방송학 전공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건설계통의 회사에 입사했었죠. 1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와 너무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는 생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무대’였어요.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생각하게 됐지만, 너무 막연하기도 했죠.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뭘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어요. 일단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뮤지컬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뮤지컬 아카데미를 반년정도 다니고 반년정도 오디션을 계속 보다가 첫 작품에 합격을 했죠. 당시의 감정은, 행복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해요. 아주 적은 페이였지만 전혀 걱정거리도 아니었고, 그냥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나도 이제 뮤지컬배우다’ 라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요?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인사’입니다. 뮤지컬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장르죠. 배우, 스태프, 컴퍼니 등등.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진정어린 인사는 닫힌 마음도 열어준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에게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극장에 와서 웃는 얼굴로 밝게 인사를 나누면 그날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어렵게 찾은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솔직하게 지난 10년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서른 넘어서 시작한 이 선택에 후회란 없다는 생각으로 배수의 진을 치고 시작했고, 제가 좀 단순해서 ‘이거 아니면 내가 뭘 해야 할까’라는 생각마저 머리 아프더라고요(웃음). 이럴 땐 단순한 게 좋은 것 같네요. 하하. 물론 오디션이 잘 안 풀리거나, 시기가 맞지 않아서 반년정도 쉰 적도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때문에 5개월 정도 쉬기도 했고요. 하지만 포기를 떠올린 적은 없었어요. ‘버티자!’ 이 생각뿐이었습니다.
-뮤지컬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지는데요. 그런 마음을 갖게 된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가요?
사실 2017년에 형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제가 뮤지컬 배우를 준비하던 때,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고 초반에 힘들었을 때 형이 뒷바라지를 많이 해줬어요. 무명배우였지만 형에게는 제가 가장 큰 자랑이었죠. 정말 보잘 것 없는데 말이에요. 나중에 형을 만나면 정말 자랑스러운 동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2011년부터 정말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네요. 이런 과정들이 이재현 배우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는 ‘성장’이었습니다. 막 시작했을 때 전공자가 아닌 저로서는 전공자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고 스스로 자격지심에 빠질 때가 많았어요. 뮤지컬아카데미에서 반년동안 배운 건 그냥 뮤지컬이 어떤 건지 정도였죠. 하지만 작품을 거칠 때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걸 배우고, 또 그걸 다음 작품에서 활용하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우고 성장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싶네요(웃음).
-이번 ‘드라큘라’를 포함해 지금까지 거친 작품들 중 스스로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작품은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입니다. 2018년도 ‘맨오브라만차’에서 안셀모 역을 맡았는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특히 ‘새야 작은새야’라는 넘버를 소화해야했는데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부를 수 있던 곡이 한 번 음 이탈이 나고 나니 계속 압박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역할에 대한 무게가 정말 크게 와 닿았던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맨오브라만차’라는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너무 좋아요.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중략)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 와도 평화롭게 되리…’
누군가에게는 상투적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은 돈키호테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고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제가 늦은 나이에 뮤지컬을 선택하고 계속 해나가는 모습도 돈키호테와 같기를 소망합니다.
-2017년엔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도 출연하셨다고요.
결혼을 하고 나서 6개월간 작품이 없었습니다. 오디션도 계속 떨어지고 조금 낙담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마냥 발전 없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뭔가 배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한 기회로 승마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승마장이 영화나 드라마에 말을 대여해주기도 했는데요. 말을 다룰 줄 아는 배우를 구한다고 해서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해서 단역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씬이었지만 스크린 연기는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말 위에서 연기를 해야 했기에 정말 긴장도 많이 하고 떨렸었어요. 엎지른 물은 담을 수 없는 무대 연기와는 다르게 될 때까지 찍고, 또 같은 씬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촬영하는 게 정말 어려웠죠. 특히 말이 말을 안 들을 때는 정말 머리가 아프더라고요(웃음). 무대 연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스크린에 도전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기회도 너무 적을뿐더러 스케줄 문제로 뮤지컬과 병행을 하긴 어려웠어요.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고, 전 무대를 선택한 거죠. 혹시 나중에 저의 연기 스펙트럼이 더 넓어진다면 다시 꼭 도전하고 싶네요. 하하.
-이재현 배우에게 무대란?
‘터전’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정말 즐기며 서있었던 곳이고요. 앞으로도 사랑하고 즐기며 계속 서있을 터전입니다.
-10년 후의 이재현 배우는 어떤 모습일까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춤도 노래도 연기가 부족하면 다 허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10년 후에도 무대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조금은 연기가 늘어있지 않을까요? 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