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주체사상·북한 대부분 거짓에 은폐
안희정·김경수, 주제사상 편력 전체 생략
정청래 사이드로 학생운동을 무협지나 활극화
하태경·최민희·송영길, 비주사파로 비교적 사실
ⓒ데일리안 DB
운동권 출신 고위 정치인 6명의 회고록을 필자는 보고 있다.
각각 2016년 안희정의 ‘함께 혁명’, 송영길의 2009년 작 ‘벽을 문으로’, 2015년 정청래의 ‘거침없이 정청래’, 2019년 하태경의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 2020년 최민희를 다룬 책 ‘쉼 없이 걸어 촛불을 만났다’, 2015년 김경수의 ‘사람이 있었네’이다.
회고록들이 방대한 내용이니만큼 초점을 좁혀 보았다. 이들이 북한과 주체사상에 대해 자신들의 학생운동 경력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우연히 학생운동 출신 고위 정치인들의 회고록을 수집하곤 했다. 그런데 이들의 회고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이를 검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조사할 생각이다.
안희정·김경수·하태경·정청래는 주사파 혁명조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 중 안희정은 반미청년회, 김경수는 자민통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다. 안희정과 김경수는 자신의 학생운동 경력을 밝히면서도 그것이 주사파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고려대 83학번인 안희정은 85~88년 학생운동의 절정기인 3학년~5학년 시절의 사상 편력 전체를 감춘 셈이고 서울대 86학번인 김경수의 경우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주체사상이 강하게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전체를 생략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희정·김경수가 수필 형식 또는 가족사와 같은 소프트한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회고하는 형식을 취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안희정은 책 제목부터 혁명이고 김경수 또한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지적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엑기스에 해당하는 부분은 빠져 있는 것이다.
정청래는 확실하지 않다. 안희정·김경수에 비해 사이드에 있었기 때문에 주사파에 연루된 정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정청래의 학생운동 회고는 그야말로 무협지나 활극을 보는 듯하다. 사상이나 이론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고 애국·투쟁·저항·동지·신념과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데 이는 정청래의 성정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학생운동 출신 중에는 학생운동 시절을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이 아니라 청년·애국·신념·동지애·반미 등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정청래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주사파라기보다는 흥부·놀부·공자·맹자 사상을 신봉한다. 사상과 이론을 구현할 능력은 없고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적응했던 사람들이다. 주사파가 속류화되면서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 문제이다.
반면 하태경의 진술은 매우 상세하다. 하태경은 90년 서울대 조통위(조국통일위원회), 91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조통위에서 비주사 NL로 활동했는데 90~91년 서울대·전대협 조통위는 그야말로 주사파의 전성기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조직이기 때문에 들을만한 증언들이 적지 않다.
그는 책에서 “전대협 조통위 역시 주사파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조국통일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주사파 학생들은 북한의 대남방송을 녹취해서 거의 공개적으로 나눠주기도 했었다. 물론 그런 일은 비공개 조직이 몰래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어차피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로 이거 몰래 뿌린 걸로 합시다”라면서 대놓고 그냥 뿌린 것이었다고 증언한다.
위 정도의 진술을 회고할 수 있는 사람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문제는 이런 기억들이 체계적으로 누락되면서 기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가 가끔 청년들에게 1987년 당시 북한 방송을 청취했다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학생들이 있다. 불과 30여 년 만에 한국민주화운동은 누군가의 구미에 맞게 체계적으로 변조되었다.
하태경이 주사파에 대해 자세히 진술할 수 있었던 것은 하태경이 애초에 비주사였고 주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건 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을 했던 정치인들을 관통하는 어김없는 법칙이다. 주사파였던 사람은 주사파였던 사실 심지어 학생운동 전체를 모호하게 처리하고 주사파가 아니라면 비교적 상세하게 입장을 밝힌다. 최민희나 송영길도 회고록에 주사에 대한 생각을 적었는데 이 또한 그들이 주사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면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하다가 정치권에 입문한 정치인들이 쓴 회고록 중 주체사상·북한 부분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조사해 보면 거의 100% 그러하다.
학생운동 출신의 고위급 정치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주변 인사들이 그런 은폐·누락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본인은 주사파인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전대협 1기 의장이면서 반미청년회에서 파견되었던 사람이 주사파가 아니라는 주장은 소가 웃을만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주변 동료들은 그런 거짓말을 묵인하고 심지어 언론조차 그러하다. 질문의 사이즈가 줄어들고 점차 질문을 주변화·희화화하는 형태로 질문 자체를 묻어 버렸다.
주사파의 결정적인 특징은 북한·김일성·주체사상과 연관된 좁은 의미의 주사파가 있는 반면 사상과 담론을 중층화하여 확장된 넓은 의미, 유사 주사파들이 있다.
일례로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웠다. 모든 악의 근원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분단은 미국·일본 외세 때문이다. 세상의 의미 있는 변화는 민중항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모든 가진 자는 악하다와 같은 주장은 주사와 교집합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한때 주사파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적과 아가 대치하는 혁명 국면에서는 과거 역사는 묻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상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수미일관한 것이다. 돈이 그런 것처럼 사상에도 꼬리가 붙어 있다. 주체사상에서 연원해서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웠다는 말단의 주장까지 그것은 하나의 레일 위에 있는 열차이다. 2020년대에 걸핏하면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는 거친 주장의 기저에는 1980년대에서 기원한 길고 긴 꼬리가 붙어 있다. 그리고 그 꼬리는 은폐를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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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경우 시민단체 대안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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