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라이선스 안 부럽다…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빚은 수작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2.24 08:50  수정 2026.02.24 08:51

‘명성황후’ ‘영웅’ 제작사 에이콤 신작 ‘몽유도원’

4월 11일~5월 10일까지 샤롯데씨어터

대극장 뮤지컬 시장이 라이선스 작품들로 채워지는 가운데, 한국 고유의 색채를 전면에 내세운 창작 뮤지컬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에이콤의 신작 뮤지컬 ‘몽유도원’이다. ‘명성황후’ ‘영웅’을 통해 한국 창작 뮤지컬의 굵직한 획을 그어온 윤호진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오래된 명제를 무대 위에 세련되게 입증해 냈다.


ⓒ에이콤

‘몽유도원’의 뼈대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소설가 최인호가 백제 도미 부부 설화를 바탕으로 1996년 발표한 소설 ‘몽유도원도’가 원작이다. 백제의 왕 여경이 꿈속에서 본 여인과 꼭 닮은 아랑을 현실에서 조우하며 시작되는 엇갈린 욕망, 그리고 아랑과 그의 남편 도미를 둘러싼 처절한 사랑을 그린다.


자칫 낡은 옛이야기로 머물 수 있는 고전 설화를 현대적이고 짜임새 있는 극적 구조로 재편했다. 권력을 쥔 자의 맹목적인 탐욕, 운명에 휩쓸리면서도 지조를 지키는 인간의 숭고함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감정이다. 촘촘하게 쌓아 올린 비극적 서사는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각적 연출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다. 복잡하고 거대한 무대 장치로 시각적 자극을 쏟아내는 기존 대극장 뮤지컬의 문법을 과감히 탈피했다. 대신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보는 듯한 여백의 미를 택했다. 간결한 선과 색채, 조명과 그림자의 대비를 활용해 한국적인 정서를 구현했다. 창호지문을 연상시키는 무대 구조물과 절제된 영상미의 결합은 몽환적이면서도 처연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특히 사건의 방향과 인물의 심리에 따라 변화하는 먹의 농담, 그리고 ‘달’의 모양은 이 작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에이콤

청각적 요소 역시 한국적 정체성과 세계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 위에 국악기의 애절한 음색이 이물감 없이 녹아든다. 국악과 양악의 기계적인 결합이 아닌, 극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선에 철저히 복무하는 음악적 조화가 돋보인다.


배우들의 보컬 구성도 파격적이면서 성공적이다. 정가 전공자, 창극 출신, 성악가, 뮤지컬 전문 배우 등 상이한 발성과 창법을 가진 이들이 한 무대에 오른다. 이질적일 수 있는 목소리들이 충돌하는 대신 절묘한 화음을 빚어내며 극의 입체감을 더한다. 배우들의 열연은 극의 완성도를 방점 찍는다. 여경 역의 민우혁은 광기와 집착을 오가는 입체적인 연기로 무대를 장악하고, 아랑 역의 유리아는 단단한 내면과 절절한 슬픔을, 도미 역의 김성식은 가혹한 운명에 맞서는 인물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몽유도원’은 앞서 2002년 한 차례 초연한 바 있으나, 이번 작품은 극본과 음악을 전면 재구성하고 세계 진출을 염두에 둔 사실상 오리지널 초연 프로덕션으로 설계했다. 윤호진 연출은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역사나 전통 설화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관객도 서사에 공감할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면서 이미 2028년 브로드웨이 진출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을 마무리한 ‘몽유도원’은 재정비를 마친 후 4월 11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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