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문화 꼬기>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그리고 '나를 찾아줘'
지난 10월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500권째 책이 발행되었다. 100에 의미를 두는 문화적 습관이 있는데 백 권이 다섯 번, 1천권을 향한 절반이나 의미가 더해질 수 있겠다.
500권째이니 시대적 화두를 담아야하지 않을까. 500권째 책의 제목은 '결혼'이었다. 언제나 결혼이 시대적 화두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좀 더 현실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이 책도 이러한 흐름에 부응해야할 듯싶다.
책 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그리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기도에는 바람직한 결과를 위한 염원과 소망이 경건하고도 절실하게 담겨 있는 법이다. 이제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잘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도하는 마음 자세뿐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런 때문에 저자는 결혼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혼 생활의 묘미는 기가 막히게 잘 맞는 남녀가 만나서 사는 것이 아니다. 아슬아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불안한 남녀가 사는 것이 진짜 묘미다. 놀랍게도 결혼 생활은 대부분 그렇게 유지된다. "
저자는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남녀의 삶이 '묘미'라고 적었다. 항상 사랑과 행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란이 있고, 긴장과 초조함이 같이 있다. 그 와중에 삶의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것 때문에 결혼은 유지될 법하다.
이런 맥락에서 2014년 가을, 부부의 생활을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관객들을 찾았다. 한국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할리우드 영화 '나를 찾아줘'가 바로 그 영화들이다.
영화 '나를 찾아줘'는 2012년 길리언 플린의 소설 'Gone girl'을 리메이크 했고, 한국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22년 전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 두 편 모두 원작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영화 '나를 찾아줘'는 한국의 개봉 번역 이름이다. 원작의 'Gone girl'을 '나를 찾아줘'로 바꾼 것은 영화가 단지 아내 즉 여성이 사라졌다는 현상적인 특징이 아니라 각자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부부의 갈등과 반목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겠다.
두 작품은 부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맥락과 관점에서 접근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신혼부부의 생활을 로맨틱 코미디 형식에 담아내고 있다면, '나를 찾아줘'는 스릴러 방식에 담고 있다. 부부 생활이 알콩달콩 달콤하고 재밌어야 한다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나를 찾아줘'는 부부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하는 생활에 더 익숙하다. 상대방을 자기 방식대로 통제하려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배우자의 자아는 물론 육체까지도 파괴하려 한다. 달콤할 수만은 없고, 쓰디쓴 측면을 스릴러 방식으로 풀어 본 '나를 찾아줘'가 되겠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모두 양극단으로 치우쳐 있다. 부부에게 갈등과 분란이 있는 게 사실인데, 이를 다루는 방식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갈등과 분란이 있어도 항상 원만히 해결 되고 에피소드 마다 해피엔딩이다. ‘나를 찾아줘'는 연이어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위선과 고통으로 더 심화된다. 영화는 마치 각자의 자아충만감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악화 시킬 수 있는 보여주려는 것 같다.
애초의 의도를 십분 발휘한 것과는 별개로 살인, 사기, 조작 등 각종 범죄를 일삼는 모습은 이 영화가 현실을 극단화 시켰음을 충분히 인지하도록 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훨씬 기분이 좋고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마지막 장면에서 벤 애플렉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싸우고 비방하고 상처를 입고 이게 뭐야"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몰랐어? 원래 부부란 그런 거야"
벤 애플렉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같은 결혼 생활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내는 그런 생각은 안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통제권을 더 행사하여 배우자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려 했다. 남편이 갖고 있는 생각은 어쩌면 판타지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도 큰 법. 그것은 남정욱의 책 '결혼'에서도 마찬가지. 즉,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전체 기조는 현실을 긍정의 결말로 소망하는 것일 뿐이다. '나를 찾아줘'는 극단적 부정성을 바탕으로 결혼의 현실을 면밀하고 날카롭게 날 것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물론 오락영화의 요인으로 극적 흥미를 돋우기 위해 애쓰는 점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닮았다. 코미디의 재미이건 스릴러의 재미이건 결혼의 본질에 어떻게 다가갔는가를 본다면 '나를 찾아줘'는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 있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소망의 현실로 돌아왔다.
흥행 결과를 보면, 한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세계인이 아름다운 부부생활이라는 전형적인 스토리보다 지금껏 잘 드러내지 않았던 날 것의 모습을 좀 더 공론화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한편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나를 찾아줘’의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심리가 투영되고 있는지 모른다. 엄혹한 현실에서 때론 소망의 환상이 두 사람이 애초에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부부가 그렇다는 인식은 자칫 현실 타개의 노력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도록 만든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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