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문화 꼬기>소모적인 소비 마케팅의 날이 안되려면...
어김없이 11월 11일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많은 비판에도 빼빼로데이는 여전히 건재하다. 다른 날로 대체하거나 다른 의미부여를 하는 행사들이 도전했지만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도대체 왜 뻬빼로데이는 수많은 논란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불야성을 이루는 것일까. 우선 다른 기념일이나 '~데이'를 살펴보면서 정리해볼 수 있다.
빼빼로는 과자 상표 이름이다. 본래 과자 종류는 초코스틱. 이 과자를 생산하는 다른 제과·제빵업체들이 '스틱데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스틱은 막대기라는 뜻이니 별다른 의미의 차별성을 주지 못한다. 11월 11일은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하다. 일단 인식의 저변이 확대되지 않았다. 퍼포먼스와 이벤트가 아니라 관심과 배려의 날임을 강조한다.
보통 일상에서 뭔가 공유할 만한 즐거움의 매개물이 필요해 보인다. '레일데이'도 있다. 철도의 날을 기해 철도이용을 장려한다. 평일에 갑자기 철도를 타고 훌쩍 떠날 수 없다. 서로 나누기 쉽지 않은 철도이용이다. 아오이 소라라는 일본 AV배우의 생일로 기억할 필요는 없겠다. 젓가락데이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손기술을 기리기 위해 회자된 바가 있다.
다만 젓가락은 먹을 수도 나눌 수도 없다. 적극적인 마케팅의 주체도 없다. 중국에서는 독신자의 날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하나씩 네 명이 둘씩 서 있는 모양에서 비롯했다. 다양한 솔로탈츨 프로그램과 상품이 팔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임팩트를 주고 있지 못하다. 또한 '가래떡데이'도 있다, 농업인의 날을 기념해 가래떡 먹는다.
피땀으로 지은 농민들의 쌀로 만든 떡이니 의미가 있다. 가래떡은 쉽게 구할 수 없고 포장도 쉽지 않다. 먹기도 불편하다. 쌀과자가 낫다. 그런데 스토리가 없다. 어디서나 쉽게 구입하고 포장의 미학에 혀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만약 가래떡이나 쌀과자가 살을 빼준다면 선호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처음에 빼빼로데이가 어떻게 시작하여 정착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간의 이견들이 있지만 본래 빼빼로데이는 정이나 사랑과 거리가 있었다. 본래 이날은 몸매에서 비롯했다. 1996년 11월 11일 부산의 여중생들이 빼빼로과자를 나누며 빼빼 마른 몸매가 되자고 소원을 빈다.
이같은 사실이 지역신문을 통해 알려졌고, 그 뒤부터 제과업체의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를 텔레비전이 전하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이에 힘입어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 주거나 회사 동료들과 같이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빼뺴로데이에는 원래 마른 몸매에 대한 선호심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빼빼로를 비롯한 초코스틱 과자는 고열량의 제품들이다. 초코파이보다 30% 높고 캔 콜라 2개를 먹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있다. 빼빼로 한 갑 평균 열량은 201.7칼로리, 밥 한 공기가 300칼로리다. 결국 빼빼로 하나는 밥공기 3분의 2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직접 원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주기도 한다. 역시 고열량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애초에 빼빼 마른 몸매를 이룰 것이라는 바람은 허튼 것이 된다.
즉 오히려 빼빼로 때문에 살이 찌게 된다. 몇 만원짜리 바구니 세트는 더 많은 열량을 포함하고 있다. 빼빼로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품도 같이 곁들여진다. 쉽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포장하면 원래 낱개 상품보다 2배의 가격으로 상승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결국 마른 몸매도 유지하는 다이어트 식품도 아닌데 각종 인공첨가물에 가격은 비싸고 거품과 허영의식을 부추기는 셈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빼빼로데이는 폐지논란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것일까. 스토리텔링이 좋았다. 지역의 여중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스토리텔링의 신뢰성을 낳았다. 이는 특정과자 상표를 기념일로 만들었을 때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 빼빼로라는 과자의 상표는 오랜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 있었다는 점도 효과를 발휘했다. 만약 신생 과자였다면 자리잡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지상파 방송을 통해서 빼빼로데이가 전국에 알려졌다. 여기에 기업체의 엄청난 마케팅이 작용을 했다. 인위적으로 마케팅으로 정착시킬 수 없지만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을 알리는 것은 더 쉽고 효과가 컸다. 또한 빼빼로데이는 논란을 통해 성장했다. 각종 미디어는 물론 지식인들의 비판은 오히려 빼빼로데이에 대한 인식을 강화해주었다.
사실 처음에 마른 몸매의 차원에서 빼빼로데이가 생겼고 퍼져나갔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맥락에서만 접근하지 않는다. 또한 예전만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자꾸 다른 부대상품이 빼빼로에 덧붙여지고 있다. 11월은 본격적인 겨울을 앞둔 때이다. 이때문에 계절성우울증이 생기는 시즌이기도 하다. 스산해지고 옆구리가 시리다는 말도 곧잘하게 된다.
9~10월의 결혼 시즌을 넘어 11월에는 12월 연말을 대비해 소개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정을 나눌 수 있는 별다른 기념일이 없는 때이기도 하다. 남자들의 과시욕 때문인지 빼빼로세트가 갈수록 부피가 커지고 가격도 비싸지만 간단하고 간편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을 나눌 수 있는 계기는 중요하다. 그것도 가장 원초적으로 달콤한 음식일수록 쉽게 소구할 수 있다.
이날을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이성적이고 대의명분의 거창한 의미부여가 강할수록 부담스럽게 작용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들에 관심을 기울려달라고 하는 기념일을 빼빼로데이의 교체 대안으로 삼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빼빼로데이에 초코스틱 과자를 사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고, 관심과 배려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정과 사랑에 목말라있기는 모두 마찬가지이며,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빼빼로데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로리가 많고 각종 인공 첨가물에 포장에 거품이 있어도 지불을 하는 것이다. 물론 1년 내내가 아니라 특정 하루이니 용인이 된다.
1년에 한번 남녀 이성간의 사랑이나 자식 부모에 관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적인 정으로 관심과 배려를 해주는 날이 있는지 원초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와 가치, 명분 그리고 공유의 실질적인 매개 수단이 있다면 빼빼로데이같은 소모적인 소비 마케팅의 날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