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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사줄게" 약속했던 아버지, 65년만에 두 딸의 발에...


입력 2015.10.25 12:44 수정 2015.10.25 12:47        금강산 공동취재단 데일리안 목용재 기자 /서울 = 하윤아 기자

<이산가족 상봉 현장>개별상봉 때 주려고 챙겨온 선물 꺼내보인 남측 가족들

북한에 있는 처남에게 전달할 아내 유품 챙겨오기도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최고령 구상연 할아버지와 딸 구송옥 씨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주최 환영만찬에서 최고령 상봉자인 구상연 할아버지가 남측의 아들, 북측의 작은딸과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98세 고령의 아버지는 65년 전 두 딸에게 약속했던 꽃신을 품에 안고 금강산에 도착했다. 남측의 아버지 구상연 씨(98)를 모시고 온 아들 구형서 씨(42)와 구강서 씨(40)는 북측의 누나 구송옥 씨(71)와 구선옥 씨(68)를 위해 아버지가 준비한 꽃신을 누나들에게 직접 신겨주겠다고 했다.

제20차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이틀째인 25일,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외금강호텔에서의 비공개 개별상봉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전날(24일) 북에 두고 온 두 딸과 만난 구상연 씨는 개별상봉 때 두 딸에게 전해줄 선물들을 잔뜩 챙겨뒀다. 코트, 화장품, 시계 등 준비한 여러 선물 중에서도 그에게는 빨간색 꽃신이 가장 각별하다. 65년 전 입대를 위해 황해도 장연군 낙도면 석장리의 집을 떠나기 전 두 딸에게 ‘고추를 팔아 꽃신을 사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이제야 지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남측에서 온 큰아들 구형서 씨는 이날 개별상봉에 앞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누나들에게 예쁜 신발과 옷감을 사주라고 얘기했다”며 “어제(24일) 신겨드리고 싶었는데 어제는 좀 어려웠고 오늘 개별 상봉 때 신겨드리겠다고 하니까 누님들도 알겠다고 하더라”라며 선물 전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날 단체상봉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둘째 아들 구강서 씨는 “아버님과 누님들이 너무 많이 닮았더라”라며 “식사(저녁만찬) 때 (누님들이) ‘동생, 동생’ 하면서 잘해주셨다.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더라”라며 상봉의 감격을 전했다.

그러면서 구 씨는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돕고 싶다”며 준비한 선물들을 가리켜 “이것들 가져가 좋게 잘 쓰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구 씨는 진한 분홍빛깔의 굵은 실로 촘촘히 짜인 목도리를 들어 보이면서 “이번 상봉에 오지 못한 (남측) 누님은 하루 만에 목도리를 4개 떠서 보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밖에 북측의 처남처 김정옥 씨(86)를 만나기 위해 금강산을 찾은 이승국 씨(96)는 생전 아내가 쓰던 유품들을 선물로 준비했다. 회색 목도리와 가방, 시계 두 개는 모두 2006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쓰던 물건이다. 이 씨는 “통일되면 유품을 갖다주려고 보관했다”고 했다.

이승국 씨의 처남은 현재 북에 살아있지만, 거동이 불편해 이번 상봉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처남의 아내인 김정옥 씨가 북측 상봉단으로 금강산에 와 만남이 이뤄졌다.

이승국 씨와 함께 온 딸 이충옥 씨(61)는 “어머니에게 남동생 3명이 있었는데 이름은 임정순, 임중순, 임진순”이라며 “어머니는 (남동생의) 이름을 ‘덩순이’라고 했는데, 어느 날 엄마 꿈에 나타났다. 엄마는 ‘덩순이가 보여서 이리오라 했는데 가만히 있었다. 덩순이도 하늘나라로 갔나보다’하면서 우셨다”고 생전 남동생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충옥 씨는 “아버지 형제는 다 내려오셨는데 엄마 형제들은 한 명도 못 내려왔다. (어머니는) 평생 남동생들을 보고 싶어 하셨다”며 “아버지는 (어머니의) 유품을 전달하고 나서 하늘나라 가서 엄마에게 ‘내가 이렇게 했노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북측이 주관하는 저녁만찬이 예정된 가운데 북측이 준비한 음식이 준비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전날(24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저녁 환영만찬에서 이산가족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식사하며 환담을 나눴다. 앞선 단체상봉 당시 어색함을 드러냈던 일부 가족들도 만찬에서는 연신 밝은 표정이었다.

남측 상봉자 설순환 씨(83, 남)의 동생인 북측 설명환 씨(68, 남)은 형님과 함께 온 형수 하을예 씨(77)에게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라며 술찬을 채워줘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남측 백기남 씨(90, 여)와 동행한 딸 이현희(56) 씨는 “북쪽 음식 맛있다”며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만찬 테이블에는 북한 강계 지역에서 만든 포도주와 오미자사이다, 대동강맥주, 금강산 샘물 등 술과 음료가 놓였고, 문어숙회와 송어구이 등의 음식이 차려졌다.

만찬에 앞서 북측 상봉단의 단장인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가려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리 위원장은 “이번 상봉은 지난 8월에 극적으로 타결된 북남합의의 성과적 이행을 위한 첫 걸음으로서 앞으로 북남관계발전을 이룩해나가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며 “대결과 불신은 민족번영의 장애물임을 똑똑히 깨달은 우리 겨레이기에 누구나 북남관계가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일구월심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흩어진 가족, 친척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 북남관계를 개선해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북남적십자단체들은 갈라진 민족의 아픔을 한시도 잊지 말고 적십자사업의 본도에 맞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함으로써 북남관계를 개선하는데 적극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위원장은 환영사가 끝난 뒤 “오늘의 상봉을 축하하며 여러분의 건강을 위하여 축배”라며 건배 제의를 했고, 이에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건강하세요”라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후 남측 상봉단 단장인 김선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답사를 통해 “이산가족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시는 동안에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도록 다 같이 적극 노력해 나갑시다”라고 말했다. 답사를 끝낸 김 부총재 역시 곧바로 “위하여”라고 짧게 건배를 제의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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