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민' 강조하는 김정은, 정작 주민 삶은 고달파?
하급간부 빈소 직접 찾아 '인간적 지도자' 면모 강조
전문가 "애민은 정치적 수사…주민들 심한 노동에 내몰릴 듯"
하급간부 빈소 직접 찾아 '인간적 지도자' 면모 강조
전문가 "애민은 정치적 수사…주민들 심한 노동에 내몰릴 듯"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새해 들어 '애민 지도자' 이미지 부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년사에서 자책을 하며 주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최근에는 하급간부의 장례식장을 직접 찾아 조문하는 등 기존의 독재자 이미지를 벗어내려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신년사 마지막 부분에서는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며 자아비판 '인민의 참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새해의 이 아침에 엄숙히 맹약한다"는 등의 발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후 김정은은 5일(보도일 기준) 평양가방공장을 찾아 "우리가 일떠세운 공장에서 우리의 원료와 자재를 가지고 우리의 손으로 만든 가방을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에게 안겨주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라며 인간적인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리고는 류경김치공장(8일), 김정숙평양제사공장(12일), 금산포젓갈가공공장(15일) 등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경공업 공장을 잇달아 방문해 '민생 챙기기' 행보를 지속했다.
심지어 김정은은 19일 새해 들어 처음으로 군부대를 방문해서도 "병사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따뜻이 돌봐주며 훈련과 군무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제때에 풀어줌으로써 군인들이 오직 훈련에만 전심전력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나 미국을 겨냥한 위협적인 발언은 자제하면서 군인들을 살뜰히 챙기는 다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를 두고 통일부 당국자는 "굳이 평가한다면 처음에 가방공장, 김치공장, 젓갈공장 등을 가고 부대 후방시설을 점검한 것인데, 애민정신의 군대판으로 보이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지난 17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기록 영상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의 인사에 고개를 숙여 답례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여러 차례 나왔고, 23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사진 속에는 강기섭 민용항공총국 총국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시신 앞에 머리를 숙여 인사하거나 고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애도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담겼다.
특히 노동신문은 21일 '인민의 참된 복무자들로 키워주시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을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렬한 인민 사랑의 열과 정으로 심장을 끓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이라고 묘사하며 그의 애민 면모를 강조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감격의 눈물 없이는, 뜨거운 심장이 없이는 돌이켜볼 수 없는 우리 원수님의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 사랑의 이야기들을 어이 다 전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이렇듯 북한 매체까지 동원돼 김정은의 애민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배경에는 집권 5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과 민심 이반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년사에서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제 행보에 나선 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의 민심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라며 "함경북도 수해로 민심이 교란되고, 핵·미사일 도발로 대북제재가 심화하는 과정에서 주민 불만이 극도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으로서는 민생 챙기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김정은의 언행은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 의지를 여전히 피력하고 있는데다 신년사에서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5개년전략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민총돌격전을 힘차게 벌려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북한 주민들은 올해에도 강도 높은 노동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와 우상화를 위해 애민을 부각하면서도 내적으로는 노력 동원을 통한 자력자강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올해 북한 주민들은 더욱 가혹하고 고달픈 삶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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