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회사 상대로 임금 차액 청구 소송 제기…"직급 2단계 강등된 기본급 받아"
회사 "임금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 아냐"
1·2심, 직원 손 들어 줘…대법 "임금 하락으로 직원 불이익"
합리적인 이유 없이 만 55세 이상 직원의 임금을 깎는 이른바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속했던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인해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다"며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그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전후로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의 사정에 비춰 보면,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해 2014년 명예퇴직했다. B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거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2009년 1월에 도입했다. A씨는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됐다.
A씨는 이후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이 2단계,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게 됐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B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했다.
B연구원 측은 재판과정에서 "고령자고용법에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500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이 있으므로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하지만 하급심 1·2재판부 모두는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 재판부는 "피고(B연구원)의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거나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화의 심화나 정부의 장려 등과 맞물려 2016∼2017년 사이 빠르게 확산했다. 2019년 기준, 상용 노동자가 1인 이상이면서 정년제를 실시하는 사업체 가운데 21.7%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한편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가린 첫 판례다. 대법원도 이를 의식한 듯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B연구원과 같이 일정 연령 이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임금피크제에 대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다르게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여부는 다양한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가령 ▲임금피크제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대상조치의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에 따라 임금피크제에 대한 유·무효 여부가 달라진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