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소설가 앤서니 트롤로프의 초상화.사진 출처 www.layanglicana.org
영국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작가 앤서니 트롤로프(1815∼1882)의 소설에는 남자가 손만 잡아도 그가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가씨가 등장한다. 왜 그녀는 손만 잡아도 청혼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 아가씨가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의 마음과는 관계없이 혼자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만 것이다.
자신의 주관적 소망이 실제 연결되는 것으로 확장해 생각을 하다보니 남자가 별의미없이 한 행동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고 만 것이다. 그 깊은 원인에는 바로 그녀의 마음 즉 욕망이 있었다. 만약 그 아가씨가 남자를 짝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남자가 손을 잡는 행위에 대해서 별 감정이나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학자들은 '트롤로프의 수'(Trollope ploy)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현상은 영화계에도 불고 있는 모양새다. 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강남 1970', '세시봉'에 이르기까지 1960~1970년대를 다룬 영화들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영화 '나의 독재자'나 '허삼관'도 여기에 속하는데 이런 영화들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어 보인다.
그 패턴이라는 것은 이런 영화들이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이런 경우 복고 트렌드라고 불린다. 그러나 복고코드라고 생각하는 것은 '트롤로프의 수'에 해당하는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복고 자체에 그렇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만 다루었다고 해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흥행을 위해 언제나 과거를 다루어왔으니 복고가 없던 적이 없는 셈이 된다,
사극이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사극이라는 장르도 처음에는 복고 콘텐츠라고 불릴만 했다. 어느새 사극은 현실보다는 환타지에 가까워지고 있고, 이때문에 사극에서 고증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현대사나 문화사를 다룬 영화들에게서도 노출되고 있다. 영화 '국제 시장'에서는 실제 현실적 관점이나 고증보다는 현대사를 헤쳐온 시선이 주인공의 삶이 주는 재미와 메시지가 중요했다. 그것은 비단 그 개인의 이야기나 과거 세대의 삶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 '강남 1970'은 1970년대 강남이라는 공간을 두고 벌이는 부동산 개발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영화적 현실은 대부분 픽션이다. 강남개발이 특정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암투의 산물이라는 점만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질 뿐, 서사는 물론 등장인물들은 모두 허구이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시공간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사실이고 그렇지 않은지 알 수도 없다. 아니 관심이 없어진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과 합치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영화 '세시봉'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세시봉이라는 실제 음악 감상실과 그곳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의 이름과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허구적인 이야기다. 가상의 남녀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사랑이야기를 펼쳐내는데, 세시봉과 관련 인물들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시봉에 대한 경험과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 이는 추억의 흔적을 더욱 확장하겠지만, 그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사실에 바탕을 가슴시린 낭만적 사랑이야기이다.
복고 코드를 집어 넣으면, 대중적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트롤로프의 수'(Trollope ploy)에 휘말리는 것이다. 혼자 짝사랑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영화가 흥행을 하면, 복고 코드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규정할 뿐이겠다. 물론 그것은 오류일 가능성이 짙다. 사실상 사람들은 과거의 이야기이거나 현재의 이야기이거나 관계없이 재미에 더해 의미까지 찾을 수 있으면 좋을 영화들을 선택할 뿐이다. 이 때 사람들이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는 내용을 가미하여 호기심을 자극하면 더 만족할지 모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왜곡 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따라서 조선 시대의 사극이 판타지로 나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도 그렇게 가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것은 외연만 그렇게 빌려 올 뿐 현재를 위한 허구일 뿐이다.
그러니 막연하게 과거 추억을 다루는 영화들이 등장하는 것을 전망이 불투명한 사회에서 도피적인 행태라고 분석할 이유도 없다. 복고를 등장시켜야 흥행이 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결국에는 이런 영화 장르에서는 소재와 스토리를 통한 대중적인 영화적 재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영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요와 공연에도 마찬가지다. 단지 예전것만 다루는 작품이나 컨텐츠가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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