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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 용사들 "외상 없어서 유공자 아니래요"


입력 2015.03.25 17:31 수정 2015.03.25 17:42        조소영 기자

"남들은 국가유공자로 보상 받은줄 알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외국사례 참조해야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13일만인 지난 2010년 4월 7일 오전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침몰 당시 상황을 설명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사건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적 부담이 작아진 느낌도 들지만, 그때를 떠올리거나 사건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경우, 여전히 사건에 대한 기억과 참혹함,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등 많은 것들이 온몸을 감싸며 위축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직도 사건 소행이 북한이 아니라는 등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시 사건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 나라 국민으로서, 장교로서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안함 생존 용사 A씨)

천안함 폭침 사건이 26일로 5주기를 맞는다. 그간 천안함 생존 용사들의 생활은 어땠을까. 최근 천안함 5주기를 맞아 열린 호국보훈 세미나에서는 천안함 생존 용사들이 '음모론'에 상처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존 용사 A씨는 "천안함 장병들에 대한 지속적 관리도 중요하지만 선행돼야할 것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천안함 폭침 사건의 진실과 대적관, 안보관 등에 대한 교육"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노력이 이뤄져야 하며 군대 내에서도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은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5년이 지난 현재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북한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폭침"이라고 발표했지만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좌초설'을 제기하는 등 일각에서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불신하고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기주 국방대 안보대학원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적(북한)의 공격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천안함 용사들에 대한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정치화 및 이념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명백한 소행에도 불구하고 공격 주체에 대한 의심이 거두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불명확한 의혹은 정치 쟁점화돼 남남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북한을 이롭게 하고 있다"며 "또 참전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희석시켜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생존 용사들은 자신들을 '패잔병'으로 보는 주위 시선에 힘겨워하고 있다. 적의 공격에 당한 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논리에서 불거진 것이지만 '기습적 공격'이었던 점, 병사들이 끝까지 대응했던 점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생존 용사들은 '불명예스러운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살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의 기습적 공격에 미처 대응지 못한 것은 '작전의 실패'이지 '전쟁의 실패'는 아니다"며 "특히 천안함을 피격한 북한 잠수정은 은밀성을 최대 강점으로 하기 때문에 기습공격 땐 최신 전투함조차도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조규택 계명문화대 군사학부 교수는 미국 제35대 대통령을 지냈던 존 F 케네디의 사례를 통해 최원일 천안함 함장을 비롯한 천안함 용사들을 명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장교로 참전했던 케네디는 PT-109 어뢰정 정장으로 일본 구축함을 공격하는 임무를 받고 출격했는데 사실상 임무를 실패하게 된다. 야간작전 중 일본 구축함을 발견하고 어뢰를 발사하려 했지만 구축함에 부딪혀 어뢰정이 두 동강나게 된 것. 그러나 이들은 구출될 때까지 함께 끝까지 역경을 헤쳐나갔다는 점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무엇보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존 용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했던 국가로부터의 냉대다. 국가유공자로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은 물론 외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 생존 용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국가의 대우는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생존 용사 B씨는 "(사람들은) 살아남은 대원들이 모두 국가유공자에다 보상을 잘 받은 줄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외상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며 "난 후회한다. '탈출할 때 상처 하나 만들고 나올걸.' 그만큼 힘들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나보다 더 힘들게 버티는 대원들이 많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며 "다들 도와준다고 말만 하니까 우리끼리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천안함 관련 행사 때도 생존 용사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성토했다. B씨는 "1주기부터 4주기 행사까지 1순위가 유가족들인 것은 당연한데 2순위는 우리가 아닌 윗사람들이었다"며 "행사 때마다 우리는 저 멀리 구석에 있었고 (윗사람들의) 들러리를 섰다"고 말했다.

차승만 백석대학교 교수는 국가보훈기본법에서 자유민주주의 발전 등을 위해 특별히 희생하거나 공헌한 이들을 '희생, 공헌자'로 정하고 있으며 천안함 참전자들은 이에 속하는 만큼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교수는 "목숨을 담보로 최북단에서 영해수호를 지켜온 참전자들의 기여도를 볼 때 합당한 수준의 예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며 "정부는 참전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명예선양(예우)지원에 해당되는 의료적, 취업, 연금 및 보조금, 교육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까지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PTSD로 상이등급을 받으려고 국가보훈처에 신청했으나 복무 중이거나 전역 직후 정신과 치료 경력 등을 자료로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천안함 참전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기까지 많은 진통이 예고된다"며 "그러나 미국, 호주, 캐나다 등 대부분 선진 국가들이 포용적 심사기준으로 국가유공자로 진입할 문을 열어주고 이들의 명예와 권익보호를 국가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소영 기자 (cho1175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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