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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역사교과서 집필자가 겪은 악몽의 2개월


입력 2013.08.26 09:18 수정 2013.08.26 11:47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대한민국 폄하하는 국사학계의 증오

60년 전 남로당의 낡은 안경을 걸친 지금의 역사교과서

2011년 5월 결성된 한국현대사학회는 한국사학계에서는 증오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학회의 초대 회장인 내가 대표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는 그들에게는 죽이고만 싶은 대상이었던 것 같다. 왜곡된 한국사교육을 바로 잡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바르게 보자는 목표로 대표집필을 맡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가 국사편찬의원회의 제 1차 검정을 통과한 것은 2013년 5월 10일이었다. 그 소식은 별다른 신문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8종 교과서 중 하나인 교학서 교과서가, 통과된 8종 교과서 중의 하나로 속해있었다는 사실이 뉴스거리가 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작 한국현대사학회가 뉴스거리가 된 것은 5월 31일 학회가 아산정책연구원과 ‘교과서문제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공동개최한 학술대회 때문이었다. 이 대회에서 나는 “2012년 검정통과 중학교 역사교과서 현대사 서술의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논문의 요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쓰기로 교육과정에 명시된 이래 출판된 교과서들이 과연 교육과정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고 있느냐 하는 것을 점검하는 데에 있었다.

60년 전 남로당의 낡은 안경을 걸친 지금의 역사교과서

그런데 분석 결과는 뜻밖이었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들이 이전과 거의 아무런 차이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들의 내용을 분석한 후 이들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한마디로 압축하여 조선공산당-남로당이 사용하던 프레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발표 하루 전날인 30일에 <조선일보>는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歷史교과서가… 民衆사관으로 도배’라는 기사를 썼고, 같은 날 <문화일보>도 ‘여전히 左편향 심각한 國史교과서, 개선 시급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세계일보> 역시 ‘아직도 우물 안에 앉아 하늘 보는 역사교과서’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썼다.

하지만 학술대회 당일 날인 31일 한국현대사학회를 증오하는 언론들이 총동원되어 폭격을 하였다. 그런데 묘한 것은 나의 논문을 폭격한 것이 아니라, 내가 대표집필을 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에 융단폭격을 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1면에 ‘뉴라이트가 만든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라는 제목의 기사를 그리고 3면에 ‘우익 교과서 부각 목적… MB 때 시작된 ‘역사 우향우’ 본격화’라는 기사를 썼다.

<한겨레>도 같은 날 ‘‘이승만•박정희 독재 미화’ 뉴라이트, 역사 흔들기 본격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같은 날 EBS 뉴스는 “권 회장이 집필한 교과서 역시 너무 우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라고 보도하였다. 이로써 교학사 교과서를 규정하는 키워드가 만들어졌다. 뉴라이트, 독재 미화, 역사 흔들기, 우편향 등이 그것이다.

이 키워드에다 트위터, 인터넷을 통하여 각종 유언비어가 부가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 유관순 열사는 여자 깡패”,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인 성매매”, 김구는 ‘빈 라덴 같은 인물’ 등등의 내용이 교학사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유포되었다. 그리고 이를 응징하기 위하여 교학사에서 출간되는 모든 책에 대하여 불매운동을 하자고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였다. 실제로 교학사에는 협박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왔다고 한다. 광풍이 분 것이다.

정치권 역시 이 같은 광풍에 적극 동참하였다. 학술대회가 열리던 당일인 5월 31일 오전에 진보정의당의 이지안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하여 교학사 교과서의 “본심사 통과 과정도 의아스러운데...다른 출판사들의 역사교과서에 좌편향 문제가 있다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으니 참으로 우려된다”고 한국현대사학회를 공격하였다. 같은 날 오후에는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이 “우리 역사교육에 대한 터무니없는 음해와 심지어 좌파 운운하는 색깔론까지 등장해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좌편향 교과서들을 두둔하면서 한국현대사학회를 비판하였다.

지난 2011년 12월 16일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대강당에서 열린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공청회에서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사학계의 반발에 이어 벌집을 쑤신 듯한 야당 정치권

그리고 이틀 뒤인 6월 2일 민주당의 배재정 대변인은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에 대하여 “전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알려진 내용들은 경악할만한 수준”이라고 하면서 김구와 안중근은 “테러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서술되어 있고, 5.16은 “혁명”으로 미화하고 4.19는 “학생운동”으로 폄하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교과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대하여 “심사과정을 전면 공개하고...최종심의에서...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 유언비어를 근거로 하여 교학서 교과서를 최종심에서 탈락시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6월 4일 민주당의 김태년 의원은 내가 근무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지난 5년간의 강의, 연구, 출장 등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나 혼자 신상 털기 하기는 부족했던지 한국현대사학회의 임원인 동료 교수 정영순 교수의 자료까지 같이 내라고 하였다. 또한 민주당의 정청래 의원은 6월 10일에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홍원 총리에게 김구가 “항일 테러 활동”을 했냐고 묻더니 “아니다”라고 하자, “뉴라이트 교과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고 이것이 통과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한국현대사학회를 매도하고, 교학사 교과서가 나오기도 전에 사산(死産)을 시키려는 광풍은 도대체 어디에서 불어온 것인가? 나는 그것이 언론, 정치권, 학계 등 어느 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광풍은 대한민국의 밝은 과거와 미래를 모두 부정하고 거부하려는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를 잘못된 것으로 보려는 가치 전도의 역사의식이 원흉인 셈이다. 그 잘못된 역사인식은 우리 모두를 지옥으로 이끈다.

그래서 광풍이 한창 몰아치던 6월 4일 나는 <데일리안>에 기고한 글에서 “한 권의 교과서가 그들이 지배하던 암흑에 한 줄기 빛이 되지 않는다면 언론과 사이버 공간이 그렇게 요동치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놓아두어도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여 교학사 교과서 하나가 등장함으로써 그들이 애써 감추려고 했던 치부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암흑의 세력은 기승을 부린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건강성을 발견한 것이 다행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건강성 또한 발견하게 되었음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교학사는 각종 유언비어와 협박으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많은 분들의 격려와 지지에 힘입어 교과서 발간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현대사학회 역시 부당한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이 김태년 의원을 통하여 정치적인 압박을 함으로써 학회의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일어났을 때, 이를 걱정하면서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역사 왜곡과 학문 탄압을 걱정하는 지식인 모임’ 소속 420여명이 성명서를 발표한 일은 근간에 볼 수 없었던 쾌거였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려는 인사들이 분명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일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것은 그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킬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을 때만 확보되는 것이 자유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사 자체가 자유 수호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해방공간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소련을 등에 업고 “진정한 민주주의”로 위장하며 대중을 오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승만, 김구, 한민당의 투쟁으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의 교란과 폭동을 제어하면서 적화 야욕을 좌절시켰다.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가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를 지켰다. 6.25 전쟁이 일어나서 생존의 갈림길에 처해 있었을 때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켰다.

남북 분단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에 도전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북한을 압도하고 G20의 일원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힘,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보장하는 그 자유를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고, 생명을 내던지면서까지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 자유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에도 자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사 교과서를 쓴 이유 역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통을 받아도 당당했던 것은 그 자유가 가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뜻있는 언론과 시민사회가 나를 지켜준 이유 역시 대한민국의 가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지난 2개월여의 시간은 내게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기는 한편으로는 힘들었지만 자유를 위한 연대를 체험하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빌어 함께 연대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글/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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