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비롯해 각종 플랫폼들이 폭증하면서, 콘텐츠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간 ‘을’로만 머물렀던 콘텐츠 제작사들의 협상력이 커지는가 하면, 콘텐츠 IP(지식재산권) 권리를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한다.
콘텐츠의 중요성은 커지고, 공개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등 미디어 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그간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던 다양한 권리들도 다시금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각종 권리들이 활발한 논의를 통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인력들에게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채널의 숫자가 많아지고, 각종 OTT들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가세하면서 스태프들의 전문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방송 스태프는 “일단 콘텐츠의 숫자가 늘어나서 전보다는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좀 줄었다. 주 52시간이 정확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근로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다. 스태프만을 전문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업무 환경이 더욱 열악했던 방송 작가들에게도 변화의 물꼬가 터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KBS·MBC·SBS와 각각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방송작가 중 보도, 시사·교양 분야 자체 제작 프로그램 방송작가 36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4월부터 약 8개월간 조사를 실시했고, 152명(41.8%)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방송 작가들은 대다수가 방송국과 프리랜서 위탁계약을 맺고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상 보호를 받지 못해 환경 개선이 더디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 그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사례들이 생기면서 이제는 그들도 보호망 안에 포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의 김한별 지부장은 “무기계약직 등 정년 보장이 되는 작가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짚으면서도 “다만 시사, 교양 작가들에게만 한정된 조사였으며, 그들 또한 이후 근로 형태를 어떻게 바꿔서 계약하게 될지 그 내용이 이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 KBS만 움직이고 있는데, 프리랜서 계약을 선택지로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 자체가 강조가 될 수도 있다. 현장의 다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서둘러서 진행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김 지부장은 현재 방송 작가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일에 비해 적은 임금’을 꼽았다. 올림픽과 같은 큰 행사 시 결방이 이뤄지게 되면, 일부 작가들은 임금 보전을 받지 못하는 등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모는 관행들이 문제점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 지부장은 “보수 문제와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 역시 계약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에는 대등한 위치에서 결정을 하는 것들이 이뤄지지 못해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체계나 기준이 없이, 관행으로만 일을 이어온 게 문제였던 것이다. 유의미한 변화는 있었지만, 이제 시작”라고 말했다.
한 프리랜서 PD는 고용 불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는 “고용 불안정이 제일 큰 문제인 것 같다. 제도적으로 조금 서포트를 해주는 예술인 고용보험 같은 것이 있다곤 하지만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어떻게 활용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런 게 있다면 알려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