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또케'는 여성 아무것도 안 한다는 여혐 단어,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정승윤 교수 "'오또케' 단어 혐오 불러일으킨다고 생각이나 했겠나…신세 서글퍼"
"'허버허버'는 음식 따위를 게걸스럽게 먹는 남자 뜻하는 남성 혐오 표현 인식"
전문가 "희화화를 빙자해 조롱하는 표현들 난무…순화됐어도 공격성 줄어들지 않아"
인터넷 공간에서 남녀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상에서 피해가야 할 혐오 표현들이 늘고 있다. '한녀' '한남충'처럼 비교적 명백한 혐오 표현과 달리 최근에는 '오또케' '허버허버'처럼 일상에서 쓰는 단어도 조롱과 비하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미를 빙자한 단어가 맥락상 누군가를 비하했다면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직장인 이모(32)씨는 지인들과의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지인이 보낸 "얘 오또케"라는 글을 보고 놀랐다. '오또케'는 '어떡해'의 변용으로 범죄 현장에서 남자 경찰이 악전고투할 때 범인을 제압하는 업무를 하지 않은 여성 경찰관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씨는 "오또케는 엄연히 본인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여성들이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남성 동기에게 기대고 아무것도 못하고 안 한다는 발상 아래 쓰는 뿌리 깊은 여혐단어"라며 "이런 단어는 여자 무용론을 만들고 여성 전체 문제로 프레임이 씌워 보기만해도 스트레스"라고 분노했다.
20대 남성 김모씨는 "금은방에서 도둑이 금을 몇 개 훔쳐가니까 여자가 발만 동동 구르면서 손을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연상시켜 '오또케' '오또케스트라'라는 '밈'(meme)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으로 퍼져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여성혐오라고 하니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맥락은 살펴봐야 한다. 비하의 뜻이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회가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한 대통령 후보의 대통령선거 공약집에 '오또케'라는 표현을 넣었다 해촉된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 교수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떡해'를 발음대로 표현한 '오또케'가 혐오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이나 했겠느냐"며 "참 현실이 서글프고 내 신세 역시 서글프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이 먹고 20대 남녀의 갈등을 몰랐다는 것이 죄라면 죄일까"라며 "안치환처럼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연인'이라고 표현돼 있었으면 알았을텐데"라고 밝혔다.
직장인 안모(29)씨도 "급하게 밥을 먹을 때 '허버허버'라는 의성어를 쓰곤 했는데 남성혐오 단어인 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지인이 이건 남성 혐오 단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며 "남성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는데 인터넷 용어 공부라도 해야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허버허버'는 '조급한 마음으로 몹시 허둥거리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인 '허겁지겁'과 뜻이 유사하지만, 음식 따위를 메기마냥 게걸스레 먹는 남자를 뜻하는 남성 혐오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명한 혐오 표현을 썼던 과거와 달리 최근 문제가 되는 표현들은 희화화를 빙자해 조롱하는 형태가 난무하고 있다며 주의를 요청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김치녀, 한남충과 같은 과격한 표현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밈이라는 문화를 잘 이용하고 있고, 밈을 통해 비꼬고 희화화하는 방식의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며 "표현이 순화됐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공격성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감정적인 공격을 하기보다는 담론을 형성해 형평성·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유대력이 강화되고 있는데, 웃음에 대한 전염성이 크고, 희화화할 수 있어야 단어들이 널리 확산되는 특징이 있다"며 "하지만 웃음의 포인트가 사회 소수자에겐 비하를 전제로 한 웃음 코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 웃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주류 미디어에서 그대로 표현을 가져다 쓰거나 정치인이 공적인 목소리로 그 혐오 표현을 쓰면서 정답처럼 돌아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김 교수는 이어 "여성·남성 혐오 표현은 특정한 시대상과 배경,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오조오억'이나 '허버허버'와 같은 표현은 인터넷상에서 많이 쓰인 용어인데 갑자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이후 남성 혐오 단어로 둔갑했다. 오또케의 경우도 남자친구에게 애교스럽게 말하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주로 젊은 여성의 능력이 부족했을 때 희화화하는 단어로 쓰이는 혐오 단어가 됐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