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기 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은 시청 수를 기록했던 드라마 ‘퀸스 갬빗’, 오는 3월 10일 드디어 공개되며 시즌2를 학수고대한 팬들의 목을 유지 시켜 줄 드라마 ‘더 글로리’. 두 드라마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여자 주인공을 원톱으로 내세웠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 분), ‘퀸스 갬빗’의 엘리자베스 하먼(이하 베스, 안야 테일러 조이 분). 한 사람은 ‘복수 왕’이고, 다른 사람은 ‘체스 왕’이다.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대신 보냈다는 엄마로부터 둘은 버림받았다. 두 엄마는 가난한 미혼모였다.
이발소 미용 보조로 일하는 동은의 엄마 정미희(박지아 분)는 딸에게 관심이 없고 마땅한 집도 없이 여인숙에서 거처한다. 동은이 연진(임지연 분)과 그 무리로부터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했음에도 항의나 해결이 웬말, 폭력을 가한 연진이 엄마(윤다경 분)로부터 ‘입막음용’ 합의금 2000만 원을 받아 애인과 야반도주했다. 동은은 졸지에 혼자가 되어 살아나가야 했고 친구라 부르기 힘든 학폭 가해자들의 폭력은 말할 수 없이 심해졌다.
베스의 엄마 앨리스 하먼(클로이 피리 분)은 코넬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단항식의 표현과 대칭성’을 제목으로 박사 학위를 쓸 만큼 지적인 인물이었지만. 나이 든 유부남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베스를 낳아 혼자 키우며 정신적으로 병들었다. 베스 생부에게 어렵사리 도움의 손길을 청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차를 몰던 엄마는 “눈 감아”라는 말을 베스에게 남기고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제 삶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 ‘(혼자서는) 딸을 어떡할지 모르겠다’는 근심 속에 더 이상 자신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엄마. 좋아하는 돈과 남자에 눈이 멀어 딸을 혼자 두고 도망간 엄마. 어느 쪽이 더 나은 엄마라고 비교할 가치도 없겠으나, 여하튼 베스와 동은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과정은 베스보다 동은이 더 처절하다. 베스는 기독교 재단 보육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거기서 체스를 가르쳐 준 샤이벌 씨(보육원 관리인, 빌 캠프 분)와 하나뿐인 친구 졸린(모지스 잉그럼 분)을 만났다. 샤이벌 씨는 추후 베스가 처음으로 체스 토너먼트에 나갈 5달러를 빌려줬고(끝내 갚지 못했지만), 졸린은 로스쿨에 가려고 모아둔 돈을 베스가 파리 세계 챔피언십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빌려줬다(공중분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무엇보다 베스에게는 새로운 엄마가 생겼다, 앨마 휘틀리 부인(마리엘 헬러 분). 베스는 휘틀리 부부에게 입양되는데, 아내 곁에 누군가 생기자마자 남편은 떠났고 엘마와 베스만 남았다. 베스는 자신의 매니저를 자청한 앨마와 함께 체스대회 여행을 다닌다. 결석을 위해 거짓말을 나서서 하고 어린 베스에게 술을 먹이니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하지만 마음 여리고 상처 많은 보통의 사람일 뿐 베스에게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마음의 울타리’ 역할을 해줬다.
친엄마에게서는 뛰어난 두뇌를, 보육원에서는 파란 알약(신경안정제)을, 새엄마에게서는 알콜 중독을 얻은 베스. 가난과 고아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베스는 주변에 사람이 있어 무너지지 않았고, 체스대회 출전을 시작한 이후로도 해리 벨틱(해리 멜링 분), 베니 와츠(토마스 생스터 분)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세계 체스 왕’의 자리를 성취해 낸다. 약물과 술을 끊은 것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1950~60년대 미국 켄터키주에 산 베스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동은의 생존이 더욱 험난하다. 동은은 온몸을 지질 만큼 잔악한 폭력을 가해 오는 연진 무리로부터 벗어 나기로 결심한다. 아무리 법이 있고 교사라는 사회적 어른이 있어도 돈과 힘을 가진 그들을 내몰 수 없고 자신이 도망쳐 숨어야 한다. 공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주경야독하며 대학교에 갈 수 있는 제반여건을 준비한다.
과거는 잊고 대학생, 학교 선생님 시절을 즐기며 살 수도 있지 않았나, 동은에게 묻기 어렵다. 동은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 돈을 모으고 졸음을 참으며 악착같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계획’이 그 힘을 제공했다.
불행히도 그 계획은 복수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동은의 계획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어서 당장 연진과 그 친구들에게, 당장 학교와 엄마 정미희에게 재력을 행사한 연진의 엄마에게, 당장 그 재력에 매수된 담임 김종문(박윤희 분)을 향한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김종문의 아들이 다시 교사가 되어 체면이 중요해지고 아버지의 추문이 두려워진 그때, 연진이 성인이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멋진 남편도 얻고 귀한 딸도 얻은 그때, 실행하기로 한다. 연진이나 연진이 엄마를 건드리지 않아도,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다. 김종문에게 직접 손대지 않아도 가능한 계획을 세운다, 아무리 멀리 돌아가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어찌나 치밀한지, 동은은 연진에게 있어 자식 다음으로 소중하고 연진에게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해 주는 남편 하도영(정성일 분)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가 즐기는 취미 바둑을 배운다. 체스 천재 베스에게 ‘체스’는 스스로 삶을 나락에서 건져낼 ‘희망의 방법’이었다면, 동은에게 ‘바둑’은 날카로운 복수의 도구다.
과연 바둑이, 하도영이 문동은을 위한 ‘복수의 칼날’이 되어 줄지 역으로 문동은이 하도영에게 매혹 당할지는 시즌2에서 확인되겠지만. 여성 주인공이 체스를 두고 바둑을 두는 모습은 무척 이채롭다. ‘퀸스 갬빗’의 시대적 배경인 20세기 중반에는 체스를 두는 여성이 드문 가운데 ‘체스 천재’ 엘리바베스 하먼이 등장해서 더욱 그러하고, ‘더 글로리’의 21세기에서도 바둑을 두는 공원이든 기원이든 여성 기사의 모습이 드물다. 더군다나 두 주인공 모두 ‘인생을 걸고’ 체스와 바둑을 두니 드라마에서 내포하는 의미는 단순 취미일 수 없다.
두 사람의 플레이 스타일에도 공통점이 있다. 공격적이다. 동은도 베스도 매우 과감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며 바둑과 체스를 둔다. 흔히 남자들의 세계라고 생각되는 곳에 여성이 등장한 것도 눈에 띄는데, 이례적으로 공격적 플레이를 펼치니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퀸스 갬빗’은 당시 소련 모스크바에서 베스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꺾고 승리한 뒤, 카페 테라스에서 체스를 즐기는 현지 할아버지들과 게임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끝이 났다. 스토리가 완결됐음에도 드라마와 배우들의 매력이 대단하다 보니 시즌2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지만, 지난 2020년 공개된 후 후속작은 없는 상태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다르다. 애초 시즌2가 함께 제작된 데다, 여느 OTT(Over The Top, 인터넷TV) 드라마들과 다르게 시즌2 공개일까지 예고한 터다. 이제, 3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