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서 고향사랑기부제 개선방안 논해
“지자체 특성 반영할 수 있는 민간플랫폼이 기부 확대에 유리”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민간주도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이를 통해 핵심주체인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시민, 기업 친화적인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아닌 지자체에 기부하면, 지자체는 이를 지역 실정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자체가 새로운 재원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2023년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는 지난 17일,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방안 모색 – 문제점 개선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세션이 열렸다. 현재까지 진행된 고향사랑기부제 현황을 돌아보고, 개선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자리였다.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에서 진행됐으며, 피스윈즈코리아, 대한민국 시군구청장협의회, 한국지방자치학회가 공동주최했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한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동생산(co-production) 개념에 부합하는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민간주도 온라인 플랫폼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선필 교수는 행정안전부가 구축한 모금 플랫폼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기부할 수 있도록 한 규제를 언급하며 “현행 방식은 기존 행정 패러다임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향사랑기부제는) 정부와 시장이 결합돼있는 모델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방정부 모델이 출현해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며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자체가 기부금 모금 주체로 서고, 나머지는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기부 플랫폼을 단독으로 운영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기부금은 중앙정부로부터 내려받는 재원이 아니라, 기부자로부터 모집하는 새로운 재원이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기부금은 지자체에게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원”이라며 “기부금은 각 지역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도록 정착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행안부는 지자체로부터 약 70억원을 걷어 고향사랑e음을 구축했으나, 기부내역 미반영, 결제오류, 답례품 선택 오류 등 시스템이 불안정해 발생하는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법에서는 다양한 모금방법을 정해놨는데, 사실상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기부가 가능한 상황이다.
권 교수는 고향사랑기부제가 답례품, 기부 마케팅, 지역문제 등이 원활하게 연결되고 통합되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권 교수는 “지역에서 기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연결되도록 디자인돼야 한다”며 “일본 고향납세 사례를 보니 다양한 참여자를 통해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공동생산(co-production) 모델을 거론했다. 지자체와 지자체 내 민간부문이 공동생산 참여자로, 기획단계에서 집행, 평가단계까지 함께하는 것을 공동생산모델이라고 한다. 권 교수는 “현재 고향사랑기부제는 중앙정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지방자치 관점에서 공동생산모델과 연결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방법론으로는 온라인 플랫폼 모형에 주목했다.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공동생산 방식으로 진행되려면 온라인 플랫폼이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기부자 편의성 증대 및 효과적인 정책 홍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 운영 중인 고향세 민간플랫폼은 지자체와 기부자의 복잡한 관계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은 참여자들간 상호작용을 통해 생태계를 만들고 이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연결기능, 비용감소기능, 브랜드 신뢰기능, 커뮤니티 형성기능, 이질적 그룹간의 교류를 통해 제3의 서비스 제공 등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를 진행한 최승재 경상대 행정학과 강사는 기부금 사용에 대한 신뢰도 확보 및 기부금 총액 확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먼저 신뢰도 확보를 위해 지정기부제 활성화가 필요하며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정기부제란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에 기부자가 기부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부액은 문제해결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최 강사는 “기부자가 사용분야를 지정하면서 기부에 대한 자기주도성과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일본 사례를 일부 차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기부문화가 위축되는 이유는 기부 후 사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홈페이지에 연 1회 정기 공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부에 따른 높은 개인 부담비율을 줄여 기부금 총액 확대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고향사랑기부제에 따르면, 연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 대상이나, 10만원 초과시 16.5%만 공제해준다. 10만원 초과 액수에도 공제비율을 높이자는 이야기다.
최 강사는 10만원 이상 16.5% 정율 공제이기 때문에 고액 기부에 대한 동기 부여 감소가 있을 것”이라며 “정치후원금 10만원이 다수인 점을 고려할 때, 10만원 이상 기부금에서 세액공제 비율을 점차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고향사랑기부제에서 중앙정부 책임 비율을 낮추고 지방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최 강사는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방분권의 핵심요소이자 자체적으로 균형발전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라며 “관 주도 운영으로 주민들의 의사 반영은 미비할 우려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법인 기부 허용, 기금운용 지자체 민관협치 강화, 관계인구 확대를 위한 노력 등에 대해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발제한 양석원 열린옷장 사외이사는 한국의 고향사랑e음과 일본의 기부 플랫폼을 비교분석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했다.
그는 현재 고향사랑e음이 시민에게는 불편한 사용성을, 공무원에게는 관리 기능의 부재를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석원 이사는 “시민의 경우, 단순 쇼핑몰처럼 답례품만 확인할 수 있어, 기부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다”며 “심지어 기존 쇼핑몰보다 불편하다. 기부를 끌어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무원에게는 갑자기 쇼핑몰 운영자 모드가 돼 본래 취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업무 과중문제도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 이사는 지자체, 시민,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강화된 플랫폼 출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고향세의 경우, 민간이 고향기부 사이트를 열고 기부금 증가를 널리 홍보하는 등 상호경쟁하는 과정에서 활성화됐다”며 “지역 특산품을 강조하거나, 다수 답례품을 마련하거나, 프로모션에 집중하는 등 각자 차별화된 전략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현재 한국은 고향사랑e음 단일망만 존재하기에 고향사랑기부 활성화를 위한 전략·전술을 설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간의 역동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독점 플랫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민간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특화하고, 공무원의 업무를 덜어줄 수 있는 플랫폼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는 민간의 경쟁이 과열됐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체계만 잘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규칙과 신호체계 등만 잘 만들고, 나머지는 플랫폼이 시장경제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자체와 시민은 더 잘하는 곳을 선택해 기부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시간에는 이상범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정협의회 정책연구실장, 조인선 강원도 양구군청 인구정책팀장, 이석환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가 발언했다. 좌장은 신두섭 지방행정연구원 지방재정실장이 맡았다.
먼저 이상범 정책연구실장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특성을 감안할 때,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역시 고향세 제도를 설계한 후 지방정부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뒀다는 것이다.
이상범 실장은 “고향사랑기부제에 정부가 지금처럼 너무 많이 관여해서는 안된다”며 “정부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지방정부 별로 다양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자치, 분권, 제도 등 패러다임을 바꾸고 민간과 지방정부를 신뢰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밝혔다.
조인선 팀장은 지자체 입장에서 민간플랫폼을 통한 지정기부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양구군은 민간플랫폼 ‘위기브’를 통해 못난이 농산물 프로젝트 등 지정기부를 시도했으나, 행안부의 제재로 중단한 바 있다.
조 팀장은 "243개 지자체가 인구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다”며 “그런데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기부금 자판기를 행안부에서 만들었다. 고향사랑e음에서는 각 지자체 공무원 입장에서 기부를 독려할 방법이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양구군은 단순히 기부금을 모집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지역에 참여하는 관계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지정기부 프로젝트는 스타트업과 청년이 시도하기 좋은 사업아이템이 포함될 여지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 활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석환 교수 역시 행안부를 향해 통제형 지방자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아 강력한 중앙통제형 지방자치가 이어지고 있다”며 “(고향사랑기부제에서도) 행안부가 단일 기부플랫폼을 만들어놓고 통제하려 해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같은 날 행안부 산하 지방행정연구원은 ‘고향사랑 기부금 제도의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세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민간플랫폼 활성화 관련 내용은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