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인천 '건축왕' 일당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검토 지시
법조계 "보이스피싱·마약·보험사기 등 범단죄 적용 판례 있어…통솔체계·수익분배 있다면 범죄조직"
"역할 분담 및 체계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밝히는 것이 관건…기소 후에도 치열한 법리 다툼 예상"
"사기죄 성립 전제하고 논의 이뤄져야…범단죄 적용돼도 개인마다 처벌 범위 달라질 것"
인천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전세사기를 벌여 388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이른바 '인천 건축왕' 일당에게 경찰이 범죄단체조직죄(범단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일당이 범죄단체로 인정되면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같은 죄명으로 처벌 받는 만큼 사기죄보다 형량이 무거워지지만, 실제로 범단죄 적용이 가능할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느 범위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등 수사단계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상황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다수이고 범행 규모가 크며, 무엇보다도 일당이 조직적으로 활동한 정황이 있는 만큼 범단죄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경찰이나 검찰이 어디까지 사실관계를 확보할 지가 중요하고, 특히 검찰에서 조직 역할 분담이나 체계가 조직적으로 세밀하게 이뤄졌는지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봤다. 다만 범단죄 적용에 앞서 이들에 대한 사기죄 적용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기소 이후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서도 치열한 법리 다툼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24일 법조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20일 전국 수사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조직적인 전세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시가 내려진 후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즉각 A씨 일당을 범죄조직으로 볼 수 있는지 따지기 위한 법률 검토에 돌입했다. 형법 114조에 따르면 범단죄는 사형, 무기징역, 4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행하려고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해 구성원으로 활동한 경우 적용할 수 있다.
범단죄 유죄 인정 시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같은 죄명으로 처벌 받는다. 형법상 범단죄는 사기죄 보다 포괄적으로 처벌할 수 있고, 범죄를 모의 하는 예비 음모 단계에서도 처벌이 가능해 추가 피해도 막을 수 있다. 최근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자 경찰 내부에서는 엄벌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A씨 일당에게 사기죄보다 형량이 무거운 범단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앞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범단죄가 적용되려면 범죄조직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 체계와 특정 다수, 동일한 범행 목적, 시간적 계속성 등을 요건으로 갖춰야 한다. 이전까지는 조직폭력배 등 폭력조직에 주로 적용됐지만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7)씨 등도 이 죄로 처벌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다수이고 범행의 규모가 크며, 무엇보다도 일당이 조직적으로 활동한 정황이 있는 만큼 범단죄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재식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목적으로 범죄조직을 구성하고, 여기에 가입해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의 경우 범단죄로 처벌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범죄, 보험사기 등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지른 일당에게도 범단죄가 적용된 판례가 있다"며 "통솔 체계를 갖추고 수익을 분배한다면 범단죄 조직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을 보면 법인과 공인중개사, 바지사장 등이 체계적으로 조직체를 갖추고 꽤 오랜 기간 회사 구성원으로서 범죄 수익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회사처럼 계약을 맺고 통솔 체계와 수익 분배가 있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입증된다면 범단죄 적용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김가람 변호사(법무법인 굿플랜)는 "공인중개사와 컨설팅 업체, 금융주선자 등이 각각의 역할을 한 것이 공교롭게 합쳐졌다면 범죄단체로 보기 어려우나, 이번 케이스의 경우 조직적·유기적으로 서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나 검찰이 어디까지 사실관계를 확보할 지가 중요하고, 특히 조직 역할 분담이나 체계가 조직적이고 세밀하게 이뤄졌는지 검찰에서 밝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며 "전세사기 조직에 대한 범단죄 적용 사례가 이전까지 없었기에 송치 및 기소 과정 등에서 법리 검토가 상당히 이뤄질 것이며 특히, 기소 이후 법원으로 넘어가서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 또한 범단죄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며 "유기적·조직적으로 범죄를 진행하지 않은 이상 인천이라는 넓은 지역의 범위에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며 범죄 행위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기관에서 범단죄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은 곧 어느 정도 관련된 증거를 확보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이를 적용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현재 문제되고 있는 피해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가기관의 엄포라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사기죄와 범단죄가 적용된다고 해도 일당 구성원마다 처벌 범위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형법 114조에 감경에 대한 조항이 담겨 있는 까닭에 범죄 가담 및 관여 정도에 따라 일당의 말단과 주범, 총책 등이 각각 다르게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재식 변호사는 "일회성 범죄를 각자 나눠서 하는 경우를 모두 범죄단체조직으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지속성을 갖고 역할을 나누며 공모하고,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해 스스로 범죄를 위해 모인 단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입증해야 한다"며 "실행 행위를 분담한 정도가 아니라 법률상 고의를 넘어선 목적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검토 후 검찰이 기소여부를 결정하겠으나, 이처럼 케이스가 악랄한 경우 상응하는 처벌 사안에 따라 범단죄를 적용해서 적극적으로 경고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