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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백'이 채워지는 순간 [D:쇼트 시네마(59)]


입력 2023.12.29 09:07 수정 2023.12.29 09:0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신시정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백화점 청소원으로 일하는 은숙(최희진 분)은 최근 딸 은지(안예림 분) 교육 때문에 좋은 학군으로 이사했다. 백화점 내에는 정원 감축 이야기가 떠돌고 화장실 청소를 하다 진상을 만나기 일쑤다.


그런 은숙의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은 쉬는 시간에 화장실 맨 끝자리 칸막이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이다. 가끔 동료와 화장실에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겁다.


퇴근 후에는 착한 딸 은지가 기다리고 있다. 집에 놀러 온 은지의 친구 해윤(신해윤 분)에게 비싼 망고를 깎아주며 잘 부탁한다고 했지만, 은지가 자꾸만 친구 해윤의 숙제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내려본 곳엔 해윤의 그림은 거의 완성이 됐지만, 은지의 그림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어느 날 은숙은 백화점 화장실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해윤의 엄마가 은지를 흉보는 걸 듣게 된다. 이제 은지는 해윤이 다른 친구와 놀고 있다. 그리고 딸의 그림은 이제 모두 완성이 됐다. 그림 안에는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딸의 그림을 본 은숙은 화장실에서 숨어 듣던 클래식 음악을 직접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 학원을 찾기로 결심한다.


은숙은 가장 사랑하는 딸이 자신의 얼굴을 그림을 본 순간, '나와 닮은 삶을 살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장 먼저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기쁘지만 다른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길 마음이 공존할 것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무언갈 포기하며 살아간다. 은숙 역시 자식의 성장이 곧 나의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화점의 진상 손님도 견디며 묵묵하게 하루를 충실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를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나의 성장, 결심 등은 딸을 좋은 모습으로 이끌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딸을 위해 비워둔 '나'라는 공백을 채워 넣기 시작한 은숙의 결연한 모습이 여운으로 남는다. 은숙은 포기하지 않고 클래식 음악을 완주해낼 것이다. 러닝타임 18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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