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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차와 동일, 신호등 없어도 횡단보도 앞에 서야"…산재 불인정 이유는 [디케의 눈물 187]


입력 2024.02.28 05:08 수정 2024.02.28 05:08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근로자, 2020년 자전거로 퇴근 중 보행자 치고 사망…법원 "업무상 재해 아냐"

법조계 "근로자 퇴근길에 사망했어도…범죄행위가 직접적 원인이라면 보상 못 받아"

"횡단보도서 안 멈추고 계속 주행, 12대 중과실 해당…자전거도 차와 똑같이 간주"

"사망 안 했다면 벌금형 및 구류 처벌됐을 사안…어떤 처벌이든 받으면 산재 안 돼"

ⓒgettyimagesBank

근로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면 출퇴근길에 벌어진 사고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자전거로 퇴근하다 보행자를 치고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횡단보도에서 자전거를 멈추지 않아 일어난 사고는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에 해당하고, 법 위반 행위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만큼 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와 동일하기에 신호등이 없어도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시정지하고 반드시 보행자가 모두 건너간 후 지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정상규)는 A씨 외 1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2020년 9월 퇴근길 공원관리 업무 담당 근로자였던 B씨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 중 서울 강동구 한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를 친 후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다음 날 사망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는 약 12주 치료를 요하는 치아 파절 등 상해를 입었다. 유족은 망인이 출퇴근 재해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B씨의 범칙행위가 원인이 된 사고를 산재보상법상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절했다.


유족은 당시 횡단보도에 정지선이 없었다며 법규 위반 사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때 운전자는 진입 여부와 관계없이 일시정지 등으로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며 "영상에서는 망인이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이려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밖에 정황을 살펴도 망인이 업무로 인한 통증, 치료의 시급성으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고 사고는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범죄행위'에는 도로교통법상 범칙행위도 포함되고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사망이 발생한 경우'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며 "B씨는 자전거를 운전하면서 횡단보도에서 멈추고 하차해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음에도 그대로 진행하다가 보행자를 가격한 것이므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상 12대 중과실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고 설명했다.


ⓒgettyimagesBank

이어 "도로교통법이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상 자전거는 '차'와 동일하다. 횡단보도 보행자를 보호해야 하고 신호등이 있거나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시 정지, 보행자가 모두 지나간 다음에 지나가야 한다"며 "본 건의 경우 정지하지 않을만한 이유가 없었고 정지하지 않고 지나가다가 보행자를 친 점,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른 점 등이 인정돼 B씨의 법 위반행위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된 것이다"고 부연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차마(車馬) 운전자는 보도를 횡단하기 전 일시정지해 좌측과 우측 부분 등을 살핀 후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횡단해야 한다"며 "만약 B씨가 이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산재보험법에서 규정하는 '범죄행위'는 종류를 불문하기에 금고나 징역, 벌금 등 어떤 처벌을 받아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출퇴근산재가 인정되려면 사업주가 제공한 차량 혹은 이에 준하는 차량으로 주거지와 취업장소 혹은 취업장소간 이동 중 사고가 발생한 경우이고 통상의 방법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자전거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내리지 않고 보행자를 친 경우라면 통상의 방법에 어긋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뺑소니나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사고는 애초에 통상의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는 자전거를 타다가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난 것이라면 당연히 자전거의 과실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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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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