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알리익스프레스 디지털서비스법 위반 조사 착수
佛 의회, 쉬인·테무 겨냥한 ‘패스트패션 제한법’ 가결
美 하원, 국가 안보 위협 ‘틱톡 강제매각법’ 통과시켜
中 정부 “경쟁에서 밀려나자 괴롭힘 선택했다” 반발
‘초저가’를 무기로 앞세운 중국 기업들의 무차별 공습에 전 세계가 ‘장벽’ 높이기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등이 ‘디지털 서비스법’(DSA)·‘패스트패션 제한법’ 등 제재 조치를 방패로 내세워 중국 기업들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중국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기업인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 산하 해외 직접구매서비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全球速賣通)에 대해 DSA 위반 여부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14일 보도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EU가 지난달 17일 DSA을 전면 시행한 이후 미 소셜미디어(SNS) 엑스(X)와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TikTok)에 이어 세번째로 조사 대상에 올랐다. e커머스업체로는 처음이다. 이 법은 특정 인종·성·종교에 대한 편파 발언이나 테러, 아동 성학대 등과 연관 있는 콘텐츠의 유포를 막는 게 주요 목표다. 대상은 EU 내 이용자 4500만명 이상을 보유한 20곳에서 직원 50명·연 매출 1000만 유로(약 145억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됐다.
EU는 알리가 가짜 의약품·건강보조식품 등의 판매를 금지한 약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미성년자의 음란물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도 미흡하고, 인플루언서를 통해 입점업체를 홍보·판매할 때 유해제품이 유통되는 것을 사실상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분쟁조정 시스템 구축과 입점업체 추적·관리, 광고·품질 관리 등에 관해 DSA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이날 ‘패스트패션 제한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패스트패션은 최신 유행을 반영해 시즌 구분없이 빠르게 신제품을 내놓고 소비하는 의류산업이다. 프랑스 하원은 패스트패션이 과잉생산에 따른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지나친 소비자 지출을 부채질한다는 이유로 환경 부담금 부과 및 광고금지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킨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패스트패션 업체에 환경 부담금은 내년에는 의류 제품당 5유로를 부과하고 2030년까지 판매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 선에서 부담금을 10유로까지 인상할 수 있다. 법안을 주도한 안세실 비올랑 의원은 “환경 부담금은 세금이 아니다”라며 “지속가능한 의류 생산자들에게 재분배돼 가격을 낮추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스트패션 제한법은 사실 중국 업체 쉬인(希音·SHEIN)과 e커머스업체 핀둬둬(拼多多)그룹 산하 테무(Temu)를 정조준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없이 온라인으로 승부하는 쉬인은 코로나19를 발판으로 급성장했다. 미국에서는 2022년 11월에 쉬인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 기존 업체 H&M(16%)과 자라(13%), 패션노바(11%), 포에버21(6%)을 합친 것보다 점유율이 높다.
테무 역시 거침없다.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고 제조업체와 소비를 직접 연결해 가격을 끌어내렸다. 이를 통해 경쟁업체보다 최대 50% 저렴하게 판매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테무는 2022년 9월 출시한지 16개월 만인 올해 1월 월간 활성 사용자 5100만명을 돌파하며 미 e커머스 시장에 쥐락펴락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 횟수는 출시 첫달 44만회에서 4054만회로 100배가량 폭증했다. 반면 아마존 활성 사용자는 6960만명에서 6700만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유럽에서도 인기는 선풍적이다. 지난해 영국(1500만회)과 독일(1300만회), 프랑스(1200만회), 스페인·이탈리아(각 900만회) 등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으로 떠올랐다. 덕분에 모회사 핀둬둬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나스닥에 상장된 핀둬둬는 지난해 10∼12월 매출이 전년보다 123% 증가한 890억 위안을 기록했다고 20일 공시했다. 순이익도 146% 증가한 230억 위안에 달했다.
미국 의회는 앞서 13일 중국 정보기술(IT)기업 쯔제탸오둥(字節跳動·ByteDance)이 자회사 틱톡을 6개월 내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사업을 금지하는 이른바 ‘틱톡강제매각(퇴출)법’을 가결했다. 찬성 352표, 반대 65표로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리버티스트래티직 캐피털을 이끄는 스티븐 므누신 전 미 재무장관은 틱톡 인수를 위한 투자자 그룹을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틱톡퇴출법이 통과된 이유는 미국인 절반에 달하는 1억 7000만 명이 쓰는 틱톡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국 정부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건 틱톡 금지가 아니라 자료가 미국에 머무느냐, 중국으로 가길 원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법안이 상원을 거쳐 시행되면 쯔제탸오둥는 180일 이내에 회사 지분을 매각해 분산해야 한다. 틱톡이 매각 명령에 불응하면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목록에서 틱톡이 삭제된다. 기존 틱톡 앱은 남아 있지만 신규 사용자 유입과 업데이트가 중단돼 시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틱톡퇴출령은 미국 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틱톡이 미성년자들을 유해한 콘텐츠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며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틱톡이 미성년자와 취약층에게 잠재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며 1000만 유로(약 144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틱톡이 마련한 안전 가이드라인이 청소년 이용자들의 취약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대들 사이에서 뺨을 스스로 꼬집어 멍을 만드는 ‘프렌치 흉터 챌린지’가 틱톡을 통해 유행하자 이탈리아 공정위는 플랫폼이 이를 방치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캐나다도 틱톡의 자국 내 사업 확대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에 나선다. 캐나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칠 잠재적 위험을 평가할 수 있는 데 따라 산업부는 틱톡의 투자계획에 초점을 맞추고 위험 요소를 면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캐나다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지난해 정부기기나 공무원의 업무용 휴대전화, 정부기관 네트워크에 접근 가능한 기기에 틱톡 설치를 줄줄이 금지했다.
아시아·아프리카의 국가들은 틱톡의 콘텐츠가 사회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제재를 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한때 틱톡 이용자가 1억 5000만명에 이르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인도는 2020년 중국과 국경갈등이 격화하자 틱톡을 영구적으로 금지했다. 이듬해 1월에는 틱톡 뿐아니라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Wechat) 등 중국 앱 50여개도 영구 퇴출했다.
대만도 2022년 12월 정부 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했고 이를 민간 부문까지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EU 역시 지난해 유럽의회와 유럽연합위원회, 유럽이사회 등 모든 정책결정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 휴대전화에 틱톡 설치를 금지했다. 네팔은 지난해 틱톡이 "사회의 화합을 방해하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데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이용을 전면 금지했다.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2022년 틱톡이 "젊은 세대를 오도하는 것"을 막겠다며 틱톡 금지를 발표했다. 소말리아도 지난해 8월 틱톡과 텔레그램, 온라인 도박사이트 규제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들 사이트가 "노골적인 콘텐츠"를 퍼뜨려 "젊은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2021년 부적절한 콘텐츠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틱톡을 약 한 달간 금지했다가 이를 해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미국에서 법률이 통과되기 전 브리핑에서 “지난 몇년 동안 미국은 틱톡이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며 “(미국이) 공평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괴롭힘을 선택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