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될 영화는 캐스팅부터 술술 풀린다. 영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 제작 퍼펙트스톰필름·채널플러스 주식회사, 배급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키다리스튜디오)을 봐도 그렇다.
우선 주인공 태인 역의 배우 하정우를 캐스팅한 건 될성부른 미래의 신인 감독을 알아본 하정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하정우는 김성한 감독이 ‘빌런’ 용대 역으로 마음에 저장했던 배우 여진구를 예능 ‘두 발로 티켓팅’의 인연으로 ‘하이재킹’과 닿게 했고, 공중 납치당한 비행기의 지나친 침체를 막을 만큼 밝은 에너지를 지닌 배우 채수빈을 감독에게 추천한 건 하정우였다.
감독 김성한은 “하정우가 영화 ‘하이재킹’의 ‘캐스팅 디렉터’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밝혔다. 영화 개봉을 사흘 앞둔 지난 18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다.
먼저 배우 하정우 캐스팅 스토리는 김성한 감독이 조감독을 수행했던 영화 ‘1987’과 ‘백두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정우 씨는 감독님들이라면 1순위로 생각하는 배우이지 않을까요. ‘1987’ 때 편집실에서 편집하는데 정우 씨가 연기한 여러 테이크 중 이걸 붙여도 붙고 저걸 붙여도 붙는 겁니다. 어떻게 뉘앙스가 다 다른데 붙지? ‘백두산’ 하면서 연기하시는 거 보면서, 또 붙고 붙는 편집 과정을 똑같이 겪다 보니까 ‘아, 편집에서 이렇게 쓸 수 있게 연기하시네!’라는 걸 알았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발견하는 혀를 내두르게 하는 연기. ‘편집점’을 알고 연기하는 거야 배우를 업으로 하는 많은 이가, 이미 검증돼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라면 다들 가능할 터. 그러나 이 중에 어느 게 영화 흐름에 좋을지 몰라 여러 느낌으로 다양한 촬영분을 확보해 두는 것인데 ‘뭘 붙여도 붙는’ 경험을 두 번 연속 마주했으니 놀랄 만하다. 배우 하정우의 강점부터 설명한 김성한 감독의 말은 ‘하이재킹’ 출연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영화 ‘백두산’ 끝날 때쯤 농담처럼, 그때는 농반진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출)작품 준비 안 하시느냐’ ‘안 하고 있다’ ‘준비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준비하시면 저 꼭 보여주세요’,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배우님들 으레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연출 데뷔작 ‘하이재킹’ 시나리를 쓰게 됐고) 말씀이 생각나서, ‘정우 씨, 책 주고 싶다. 괜찮을까요?’ 하니 달라고 하셨어요. 혼자 생각에, 할까? 하실지 모르겠으나 긍정적으로는 보실 거다 싶어 드린 거였습니다. 일주일도 안 돼 연락을 주셨고, 너무 감사하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백두산’에서 ‘하이재킹’ 사이의 이야기가 생략됐다 싶었더니 부연 설명이 나왔다.
“사실 ‘1987’ 하면서는 얘기할 기회가 없었고. ‘백두산’ 하면서도 조감독으로 봐주시다 보니까 기본적으로는 함께 일한 거지요. 사실 제가 ‘일’적으로 기계처럼, 제가 사교성이 별로 없어요. 작품 많이 하면서도 연락처 주고받지도 않고 술자리 하지도 않는 편인데… ‘백두산’ 때는 조금 달랐어요. 정우 씨는 먼저 연락처를 알려주시더라고요, 제 연락처도 물어보시고. 촬영할 때는 술자리도 갔어요.”
하정우가 툭 치니 밖으로 잘 열리지 않던 김성한의 마음 문이 스르륵 열린 걸까. 배우 하정우가 자신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조감독 김성한은 감독님들이 깊이 믿는 스태프이고,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영화 ‘1987’에서 최 검사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얼렁뚱당 처리를 지연시킬 요량으로 목욕탕에서 버티던 장면의 촬영장, ‘백두산’ 때 한여름에 방호복 입고 촬영하는 배우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한 일을 들어 설명했다.
“영화 ‘1987’에서 처음 뵀어요, 처음부터 조감독이라기보다 감독 느낌. 키 크고 저음에 말을 잘해요, 현장 진행을 굉장히 잘해요. 아우라가 달랐습니다. ‘1987’ 초반에 촬영을 쭉 했는데, 그때도 ‘하이재킹’처럼 대전 세트였어요. 담배 피우러 갔는데, (김성한 조감독이) 직접 말아서 피우더라고요. 이국적 느낌이시네! 촬영이 진행됐죠. 제 촬영 막바지. 목욕탕 신이었어요. 다른 스태프와 목소리 높여 언쟁하는데, 얘기 들어보니 김 감독 말이 다 맞아요. 낮부터 저녁까지 찍는데, 뜨거운 물에 6시간 있으니 살은 불지, 장준환 감독님도 김성한 조감독에게 맡겨 상황 정리하는 거 보며 ‘아. 카리스마 있으시구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백두산’에서 다시 만났어요. 방호복 입고 촬영하는데 입는 순간부터 땀이 쏟아져요. 메이크업 지워지고 문제가 생기니까, 김성한 조감독께서 방호복에 선풍기를 달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시원하게 해 줄까, 며칠간 연구하셨다는 거예요. 방호복에 구멍 뚫어서, 기계과 나오시긴 했어도, 와! 했죠. 방호복이 일체형 원피스인데, 잘라서 허리 부분에 숨구멍 만들고…, 배우들 위해 연구하고, 사려 깊다! 사실 조감독이 하지 않아도 되는 걸, 그때 참 감동적이었어요.”
“진짜 친해진 계기는 그때 제가 주식 처음 해서 물린 종목들 얘기하며(웃음), 서로 위로하며 연락처 주고받고. 전문 조감독만 할 건지 여쭸어요. 감독 준비하게 되면, ‘그럼 만약 감독님, 저한테도 한번 보여주세요!’, 훈훈하게 마무리됐죠. 2022년에 시나리오 처음 받았고, 드라마 ‘수리남’ 전주 세트에서 읽고 바로 답했어요, ‘하겠다!’. 강명찬 대표(‘하이재킹’ 제작사 퍼펙트스톰)에게 시나리오 받고, 그날 기억나는 게 비가 와서, 7월인데 스콜처럼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촬영이 멈췄어요. 이 (‘하이재킹’) 시나리오를 1시간 넘게 정도에 다 읽었어요, 굉장히 빨리 넘어가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마지막의 먹먹함이 지금 개봉한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시나리오에 있던 알토란 같은 맥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그게 신기해요.”
배우 하정우의 이야기를 들으면 장면이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진다. 기억을 사진 찍듯, 영화 촬영하듯 장면으로 저장해서다. 감독 김성한의 말은 달변임에도 절제돼 있다는 느낌, 조금의 과정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담백하고 솔직한 화법이다. 다시 김성한 감독의 얘기다.
“이번에 프리(사전제작) 단계부터 시작해서 촬영하면서 정말 제가 느꼈던 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배우구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하구나!’였습니다. 시나리오 회의를 방 잡아서 같이 하기도 했고, 밥 먹다 세트장 가서 본인이 설명하는 바의 이해가 쉽도록 리허설로 보여주기도 했어요.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가 직접 보여주는데 설득이 안 될 수가 없지요. 제가 신인 감독이다 보니, 불확실한 것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직접 연기로 이런 방식 어떻겠냐 보여주시고. 어떤 장면에선 제가 확신이 있고 정우 씨가 생각이 다를 때는, ‘제가 확신이 있거든요’ 이러면,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게 가보시죠’ 하며 다해 주는 거예요. 왜 이렇게 다 잘 들어주지? 태인이라는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애정, 현장에 대한 애정이 감독인 저 못지않게 있지 않았나, ‘백두산’ 때보다 ‘아, 다정한 사람이구나!’를 느꼈습니다.”
배우 하정우에 대한 극찬에, 하정우는 감독님의 연출력에 모든 공을 돌리더라는 말을 전하자, 고개를 저었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배우가 표현해주지 않으면 절대 완성되지 않는 예술입니다. 스태프가 하고자 하는 바를 함께 애써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게 영화입니다. 그런 면에서 배우 하정우가 제게 준 건 120%, 130%를 넘어갑니다. 제가 칭찬에 인색한 편인데, 사교성 없는 사람이고 특성이 칭찬 안 하고 남 얘기 안 하는데, 정우 씨와 이번 작업이 너무 좋았습니다. 술 마시다 한 얘기라 전하기 좀 그렇지만, ‘담에 꼭 같이하자!’ 얘기도 나눴습니다. 그때는 리허설을 더 많이 하자!, 정우 씨가 제안했고 저는 좋습니다! 답했지요.”
두 사람을 따로 인터뷰하며 각각 들은 내용을 붙여 놓고 보니 이보다 더한 사랑 고백이 있을까 싶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 호감과 애정이 촉촉이 스며 있다. 이제부터는 비행기 공중납치범 용대 역에 배우 여진구를 캐스팅하게 된 얘기다. 다른 어느 배우가 하면 이런 폭발력이 나왔을까 싶게, 여진구는 백두산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하는 힘을 영화 ‘하이재킹’에서 발산했다.
“진구 씨가 연기한 용대는 1971년 납북 위기에 처했던 F27기 하이재킹(비행기 공중납치) 실화 사건의 범인이죠, 실제 스물두 살 청년이었습니다. 그 나이, 대학교 이삼 학년 때의 저를 생각해 보면 술 먹고 놓기 바빴을 나이인데, 그 친구는 왜 그런 일을 했을까, 궁금하고 고민이 많았어요. 진구 씨가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할까?’ 의구심이 있었어요, 해주면 너무 좋겠는데. 그런 마음을 안고 여러 이십 대 배우를 찾아봤는데, 다시 진구 씨로 돌아간 게. 툐요일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온통 여진구 사진으로 도배돼있는 거예요. 이거 뭐지, 잘못 들어왔구나 하고 나가려는데 ‘어, 진구 씨네!’, 들어가 앉았어요. 커피 시키고, 테이크 아웃 하려는 거였는데 오래 나오질 않아서, 어린 시절 사진들이 있길래 찬찬히 봤어요. 팬들이 자체적으로 진구 씨의 생일파티를 하는, 진구 씨는 없는데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였던 거예요. 삼삼오오 팬들끼리 사진 찍고 즐기고 하는 모습 보면서 약간 느낌이(환한 미소)…하라는 계시구나! 운명인가? 들이대야겠다, 까일 때 까여도 들이대야겠다!”
“이 얘기를 정우 씨에게 했더니, 예능 ‘두 발로 티켓팅’을 (함께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정우 씨! 적극적으로 캐스팅 디렉터 역할 해 주시면 좋겠다! 말씀드렸죠. 정우 씨가 기회를 마련해 주셨고, 그 용대의 궁금증을 안고 진구 씨 만났고, 진구 씨가 빠르게 좋은 답 주셔서 감사했죠.”
사람 느낌은 비슷하고 특히나 김성한과 하정우는 통하는 듯하다. 하정우 역시 아직 캐스팅되지 않은 용대 역이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두 발로 티켓팅’ 사전 모임에서 여진구를 보고 화면에서보다 좋은 눈빛과 두툼한 체격이 용대에 적역이라고 생각했기에, 김성한 감독에게 화답한 것이었다. 서두에 밝혔듯, 하정우가 ‘하이재킹’ 캐스팅 디렉터로 활약한 건 여진구만이 아니다. 배우 채수빈 역시 비하인드에 하정우가 있다.
“수빈 씨는 완전 정우 씨 추천이에요. 수빈 씨가 나온 영화 ‘새콤달콤’을 보며 매력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전 기억은 초콜릿 광고였어요.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데, 위트 있는 초콜릿 광고였는데, 저 친구 누구지? 강단 있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또 호감형이잖아요. 그 호감형이 스튜어디스로서 기내에서 승객들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싶어 수빈 씨께 전달해 드렸는데, 한 번에 오케이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함께했습니다. 캐스팅 디렉터로서 정우 씨 역할이 주요하게 작용했던 영화입니다.”
‘새콤달콤’은 배우 장기용과 호흡이 좋았던 넷플릭스 멜로영화로 [OTT 내비게이션]를 통해 소개할 것을 약속하고. 초콜릿 광고는 스니커즈 ‘미숙이’ 편이었다. 미숙 씨가 남자친구에게 “나 살찐 것 같지?” 물었을 때, 남자친구가 얘기를 리와인드로 돌려 3번이나 다르게 대답해도 매번 ‘우리 헤어져’가 되는 내용이었다. 남자들을 당황 시키는 여자의 질문, 어떻게 답해도 정답은 아니라는 연애의 어려움을 김성한 감독의 말처럼 위트 있게 그리고 코믹하게 잘 그려 화제가 됐다.
상큼 발랄 귀여운 외모를 지닌 채수빈이 남자친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고, 남자친구의 답변에 바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러다 초콜릿을 먹으니 세상에 없는 천사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무척이나 예뻤다. 그러다 마지막엔 다시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있을 텐데!”를 말하는 반전에도 채수빈의 미모는 폭발했다.
이렇게 술술 풀린 주연 캐스팅, 평소엔 연극 주연도 하고 뮤지컬에도 출연하고 ‘선재 업고 튀어’를 비롯한 인기 드라마에도 나오는 배우 50여 명이 영화의 좋은 취지에 공감해 조·단역 오디션을 자청해 합류, 한 숨결의 기막힌 호흡을 보여준 영화 ‘하이재킹’.
바로 어제 21일부터 뚜껑을 열기가 무섭게 “영화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귓전까지 온 걸 보면, 관객들은 참으로 현명하다. 좋은 영화 얼른 알아보고, 될 영화는 더 잘 알아본다. 어디 가나 ‘하이재킹’ 얘기가 꽃피는 풍경을 오랜만에 등장한 무서운 신인 김성한 감독과 뼛속까지 열과 성을 다한 배우들이 일궈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