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은 7년간이나 대표팀에서 청소와 빨래 등 잡무를 해왔다고 밝혔다. 안세영은 무려 중학교 3학년 때인 2017년에 대표팀에 발탁됐다. 아직 성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나이에 어른들과 시합하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는 것은 안 선수의 실력이 그 연령대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워낙 어린 나이에 대표가 됐으니 당연히 막내일 수밖에 없고, 막내가 잡일을 하는 게 전통이라 결국 7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청소와 선배들의 빨래를 해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 선수가 다리 부상으로 몸조리를 해야 할 때조차 청소와 빨래는 계속 됐다고 한다. 선배들의 끊어진 라켓 줄도 안 선수가 갈았다고 한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다. 중 3이면 아직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을 나이다. 그 나이에 배드민턴을 천재적으로 잘한다는 죄로 대표팀에 차출돼 어른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선 안 선수가 그동안 하녀살이를 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어린 청소년이 부상당한 몸으로 어른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생활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나라에선 천재인 게 죄란 말인가?
안세영이 국가대표 선수촌에 들어간 지 2년 쯤 후에 어머니에게 ‘선수촌에서 얼마나 바쁜 줄 아냐’고 말했다고 한다. 온갖 잡무로 바빴다는 것이다. 결국 안세영의 부모는 지난 2월 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안 선수가 일과 후 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각종 잡무로 피해를 봤다’며 악습의 개선과 더불어 총 7가지 요구를 했다고 한다.
청소 빨래와 선수촌 생활 개선 문제 외에, ‘부상당했을 때 선수촌 외부 재활을 허락해 달라’, ‘후원사 운동화가 불편하니 다른 운동화를 신게 해 달라’, ‘항공석 업그레이드를 허락해 달라’ 등의 요구였다.
이에 대해 협회 측은 ‘오래된 관습이기 때문에 당장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점진적으로 고쳐 나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건 결국 청소 빨래 문제 등을 당장은 안 고치겠다는 소리 아닌가? 악습에 불과한 것을 ‘관습’이라고 표현한 것도 황당하다. 당시 협회 측에선 2가지 요구만 들어줬는데 하나는 국내에서의 1인실 배정(해외는 제외), 둘째는 항공권 자비 업그레이드 허용이었다고 알려졌다.
과거 배구의 김연경도 대표팀에서의 빨래 이야기를 했었다. 막내로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빨래를 해야 했고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지 않으면 혼났다고 했다. 나중엔 '내가 지금 빨래를 하러 온 건지, 운동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겠는 지경까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배구를 하러 왔는데, 배구보다 빨래하고 청소하는 시간을 더 많이 쓴다’며 항의하니 상황이 개선됐다고 한다.
이러한 김연경 사례와는 달리 안세영에겐 이 악습 문제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배드민턴 천재로 태어난 죄가 너무나 컸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같은 죄를 지은 선수는 같은 악습의 멍에를 쓰게 된다는 얘기다. 더 엄청난 천재라면 중1 때부터 대표팀에 차출돼 하녀살이를 해야 하나? 이 나라에선 배드민턴 천재인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다.
안세영은 개인 스폰서 이야기도 했다. 외국의 유명 선수들은 개인 스폰서 계약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는데 안세영은 한국 천재인 죄로 개인 스폰서 수익이 ‘0’원이라고 한다. 대표팀 스폰서 계약을 맺어 배드민턴계 운영비로 쓰기 때문에 국가대표 개인 스폰서를 규제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안세영 수익을 빼앗아 협회가 쓰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이 역시 황당할 뿐이다. 우리나라가 알고 보니 공산주의 체제였나? 협회에 정상적인 ‘어른’들이 있었다면 세계 1위가 나타났을 때 협회가 먼저 그에 상응하는 처우를 고민했을 텐데 현실에선 전혀 안 그랬던 것 같다. 선수 개인을 전체의 부속품처럼 여겼기 때문 아닐까?
남자 단식 1위인 덴마크의 악셀센은 개인 스폰서 수입은 물론이려니와 아예 덴마크를 떠나 두바이에 개인 캠프를 차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덴마크 배드민턴 협회는 “두바이로 이사하기로 한 결정과 새로운 영감에 대한 그의 열망을 존중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덴마크 대표팀과 악셀센이 협조해 파리 올림픽에 출전했다. 해외에서 이런 선수들을 접하면서 안 선수는 당연히 답답했을 것이다. 자유 국가 선수들을 바라보는 북한 선수의 심정이 이랬을까.
안세영은 16일에 내놓은 입장에서 “협회와 싸우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며 “조금씩 더 유연하게 바뀌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시비비를 말고 조금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합리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하며 좋은 경기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뭐가 문제인지 적시하지 않고 애매하게 말했다며 안 선수에게 분명한 입장을 요구한다. 하지만 한국 풍토에서 개인이 집단과 척을 지면 해당 분야 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배드민턴 계에서 안 선수의 입지가 충분히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선수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부디 안세영과 협회가 잘 협의해서 그녀의 한국 대표로서의 선수 생활이 오랫동안 원활히 이어지길 바란다.
그것과 별개로 대표팀 운영에 악습이 있다면, 특정 선수의 고발에 기대지 말고 우리 사회가 직접 문제를 알아내서 개선해나가야 한다. 정부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쨌든 배드민턴 협회의 경우는 후배가 선배 뒤치다꺼리하는 악습, 세계 1위의 개인 스폰서 수입이 0원일 정도로 개인을 전체의 부속품처럼 억압하는 구조, 이런 문제들이 정말 있었다면 그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