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 해외의 사례 언급하며 대한민국 정체성 상징할 수 있는 공간 필요하다고 주장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 태극기 게양대·불꽃 상징물 설치하겠다고 하자 비판여론 쇄도
시민의견 수렴 결과, 상징물로 태극기 제안 가장 많지만…여전히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대한민국 정체성 드러내는 상징물이면 꼭 태극기 아니어도 상관없어…내년 5월 착공·9월 준공 목표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광화문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거리 일대를 '국가상징거리'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상징'을 이름으로 하는 첫 사업인 광화문광장 개방이 추진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를 이어 지난 2023년 국토부와 양해각서체결(MOU)을 맺고 서울역과 현충원 등 서울의 주요 지점에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때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처음 나왔다. 이후 오 시장은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언급할 때마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징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 6월 25일 국가상징공간 조성 관련 기자설명회에서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의 ‘워싱턴 모뉴먼트’,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에투알 개선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서울시도 자체적으로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며 국가정체성 상징에 대한 갈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랜드마크 한 곳을 골라보라고 하면 제각각 다른 곳을 꼽을 것이다. 누구는 한강, 누구는 경복궁, 누구는 광화문, 누구는 남산N타워. 오 시장은 이런 점에서 태극기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상징물을 앞세워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오 시장의 바람대로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이 문제없이 착공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시가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고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와 불꽃 상징물을 세우겠다고 발표하자 '세금 낭비', '애국심 강요' 등의 비판이 나왔다. 이에 시는 한 달간 시민 의견을 받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문재인 정권 때 활약한 '태극기 부대'의 강골 우익 이미지로 인해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된 점이 지금의 여론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한 건 태극기 게양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시행된 이번 시민 의견 수렴에서 정작 적합한 상징물로 가장 많이 제안된 것은 태극기였다. 522건의 제안 중 215건(41%)이 이같이 답했다. 결과에 따라 상징물로는 태극기가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반대 여론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는 1000만명의 시민 중 522명만 참여한 것이 시민 의견을 대표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쇄도하고 있다. 여기에 의견 수렴 과정도 굉장히 폐쇄적인 방식이었다며 시의 결정에 공감할 수 없다고 한다. 시의 의견 수렴 과정에 허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질문의 내용도 부실했고 구글과 네이버 계정 두 개를 모두 활용한다면 한 사람 당 두 번 답변할 수 있었다.
오 시장은 이 같은 우려와 반대 여론을 예상한 듯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의 주제를 '자유'와 '평화'로 설정했다. 주제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최대한 뺀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던 오 시장에게 태극기는 차마 뺄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은 전문가 자문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달 중 설계 공모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어 올해 12월 기본 및 실시 설계에 착수하고, 내년 5월 착공해 9월 준공하는 것이 목표다.
꼭 태극기가 아니어도 좋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징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한번 조성된 상징물과 상징공간은 이전하기도, 변경하기도, 폐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숱한 비판을 뚫고 추진돼 경제 발전과 선진화에 기틀을 마련했던 경부고속도로처럼, 광화문광장에 세워질 국가상징물도 서울의 관광 활성화와 전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