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언 머피, '이처럼 사소한 것들' 제작 및 주연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며 지난해 '말 없는 소녀'에 이어 국내 예술영화계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말 없는 소녀'와 함께 키건의 작품이 담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 입체적으로 구현해냈다는 평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킬리언 머피가 책을 읽고 이야기에 사로잡혀 영화로 제작 및 기획에 직접 나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올해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되었으며, 은곰상(조연연기상)을 수상 했다. 국내에서 지난 11일 개봉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독립예술영화 1위를 사수하며 1만 5000명 관객 수를 돌파, 주말에는 일요일 관객 수가 토요일 대비 20% 가까이 증가 입소문 흥행 중이다.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1980년대 아일랜드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석탄목재상인 빌 펄롱(킬리언 머피 분)의 하루는 정해져 있다.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 석탄 목재를 체크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석탄을 배달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화장실로 곧장 들어가 석탄이 가득 묻은 손과 얼굴을 씻어낸다. 그리고 나면 다섯 명의 딸들과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빌 펄롱은 어린 시절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가난하게 지내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는 했지만 친절한 주인집 덕분에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죽은 후에도 주인집의 배려로 지원을 받으며 지내왔다. 그렇게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빌 펄롱은 추운 겨울 날 수녀원으로 배달을 간 곳에서 창고 맨발로 창고에 갇혀 있는 세라를 발견한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보살핌'이라는 위선 아래 인권유린과 학대를 받으며 지내는 소녀들의 생활을 알게 된다.
세라는 자신을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이 곳 수녀들은 마을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다. 아내 역시 지금의 안락한 삶을 위해 빌 펄롱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미혼모인 엄마와 미혼모의 자식인 자신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집주인 같은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 빌 펄롱은 엄마와 이름이 같은 세라라는 소녀를 쉽게 외면할 수가 없다.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이혼과 피임이 금지돼 있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미혼모들은 사회적 지탄 속에서 권력화된 종교에 의해 착취당했다. "살아가려면 모른 체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빌 펄롱의 아내의 대사처럼 당시 사회는 이를 침묵과 방관하며 관객들에게 그 시대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 '말 없는 소녀' 역시 같은 시대적 배경으로 가정 내에서 최소한의 돌봄을 받지 못한 코오트(캐서린 클린치 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톨릭 사회의 억압 속에서 다자녀를 둔 부모, 그 안에서 소외된 딸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코오트는 부모의 방치 아래 말을 잃어갔고, 엄마의 출산으로 한동안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다.
아일린(캐리 크로울리 분)은 낯선 환경에 놓인 코오트를 가엾게 여기고 다정하게 돌본다. 무뚝뚝해 보이는 남편 숀(앤드루 베넷 분)도 코오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생전 처음 마주한 다정함과 온기에 코오트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2관왕을 비롯해 37관왕, 전 세계 최다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아일랜드 영화 최초로 노미네이트 됐다. 국내에서 개봉했을 당시, 1주 차에 스크린 수 50여 개, 하루 평균 상영 50여 회, 2주차부터는 스크린 수가 30여개 이하로 떨어졌지만 열악한 배급 환경을 극복하고 6주 동안 장기상영하는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
클레어 키건의 절제된 문장은 영화화되며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로 재탄생, 문학이 전달하는 여운과 영화가 제공하는 몰입이 결합되었을 때, 메시지가 더욱 강력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대규모 상업영화들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작은 영화가 어떻게 진심과 울림만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