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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복구’론 해결 안 될 드라마 현장 문제 [기자수첩-연예]


입력 2025.01.05 07:00 수정 2025.01.05 07:17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남주의 첫날밤’ 팀 안동 병산서원 건축물에 못 박아 훼손

KBS 복구 노력·재발 방지 약속하며 사과

KBS 새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가버렸다’(이하 ‘남주의 첫날밤’) 측이 촬영 중 안동의 병산서원 건축물에 못을 박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병산서원을 훼손한 것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불과 2년 전,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말을 일부러 고꾸라지게 해 논란을 빚었던 KBS에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한 실망감도 이어진다. ‘고질적인 문제’라며 ‘강한’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KBS만의 문제가 아닌, 드라마 현장 전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병산서원에서 등을 달고 있는 스태프의 모습ⓒ민서홍 건축가 SNS 캡처

병산서원 훼손 논란은 민서홍 건축가의 폭로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해 12월 30일 병산서원을 방문한 당시 서원 내부 여기저기에 드라마 소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놓여있었고, 몇몇 스태프들이 등을 달기 위해 나무 기둥에 못을 박고 있었다는 글을 적었다.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을 달고 있는 사진과 함께 “둘러보니 이미 만대루의 기둥에는 꽤 많은 등이 매달려 있었다”고도 말했다.


민 건축가가 문화재 훼손에 대해 지적하자,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스태프들은 귀찮다는 듯, ‘이미 안동시의 허가를 받았다’며 ‘궁금하시면 시청에 문의하면 되지 않겠느냐? 허가받았다고 도대체 몇 번이나 설명을 해야 하는 거냐?’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기 시작했다는 폭로도 덧붙여 네티즌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에 KBS는 “현재 정확한 사태 파악과 복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 중에 있다”고 밝히며 사과했다. “이후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촬영 중에 문화재를 훼손한 사안과 관련해 송구하다”고 재차 사과하며 “기존에 나 있던 못자국 10여 곳에 소품을 매달기 위해 새로 못을 넣어 고정하며 압력을 가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촬영과정에서 제작팀은 소품을 거는 것이 가능한 위치인지를 사전에 병산서원을 관리하고 있는 별유사님께 검토를 받았고, 별유사님 입회하에 촬영을 시작했음을 알려드린다”고 해명했지만, 그럼에도 부주의한 태도로 문화재를 다룬 ‘남주의 첫날밤’ 팀을 향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박힌 못을 뺀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복구를 위해 전문가들이 나서겠지만, 병산서원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은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KBS의 ‘반성 없는’ 행보에 대한 실망감도 이어진다. ‘태종 이방원’ 속 이성계의 말 낙마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말의 앞다리를 밧줄로 묶은 뒤 달리게 해 말 학대 논란을 빚은 것이 불과 2년 전 일이었다. 말이 꼬꾸라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고, 이후 해당 말이 사망한 것이 드러나면서 큰 비난을 받았었다.


당시에도 KBS는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었다. 이들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콘텐츠 제작에 있어,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작 현장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를 통해 신뢰받는 공영미디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었는데, 결국 ‘불미스러운 일’은 다시 발생했다.


KBS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도 촬영 공간을 훼손하거나 혹은 쓰레기를 무단투기한 것이 폭로돼 사과하는 작품들이 이어졌었다. 2023년 10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Mr. 플랑크톤’ 측이 제주도 촬영을 마치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했다는 폭로가 나왔으며, 같은 해 tvN ‘무인도의 디바’ 제작진은 제주 서귀포 안덕면 황우치 해변에서 소품용 돌멩이를 가져와 촬영한 후 해변 한쪽에 쌓아 놓고 방치해 자연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이 외에도 스태프들이 촬영을 위해 시민들을 무리하게 통제하거나 무례한 언행을 해 폭로의 대상이 되곤 했다.


폭로가 되면 ‘사과’하고, 때로는 KBS처럼 후속 조치를 약속하곤 하지만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는 믿기 힘들다. 이에 ‘해당 촬영분을 담을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의견 등 더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촬영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용인하거나 혹은 ‘시간이 없어서’ 촬영 외 부분들은 무시하는 촬영 현장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일시적인 노력으로는 개선이 될 수 없는 문제인 셈이다. 스태프 개개인의 인식부터 여유 없이 돌아가는 현장 시스템, 나아가 외주 제작사를 관리해야 하는 제작사 또는 방송사까지. 모든 이들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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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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