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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동성당(성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㉓]


입력 2025.02.05 14:00 수정 2025.02.05 16:11        데스크 (desk@dailian.co.kr)

(국가 지정 사적 제288호)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서양식의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동성당이다. 언제나 관광객과 순례객으로 붐비는 성당에는 마침 멋스러운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한창이다.


전동성당 전경 ⓒ
배롱나무꽃과 전동성당 ⓒ

전동성당은 호남 지방에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하여 지어졌다. 성당 정면 중앙에는 높이 솟아 있는 고탑과 좌우 계단탑이 있는데, 고탑 밑에는 종탑이, 종탑 밑에는 장미창이 있다. 아치와 채광창은 따뜻함과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전동성당은 종교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적 차원에서도 매우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국가 지정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예수성심상이 순례객을 반기고, 왼쪽으로는 은행나무 고목이 우람하게 서 있다. 맞은편에는 사제관, 교육관, 유치원 등이 있는데, 붉은 벽돌의 건물들에서 오래된 묵직함과 아름다움이 보인다.


예수성심상과 사제관 ⓒ

1889년 본당 설립 후 첫 본당신부로 부임한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는, 1891년 이곳의 집과 터를 매입하여 본격적인 전주지역 사목활동을 펼치다 1908년 성전 건립을 시작하였다.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건축하였던 프와넬 신부가 맡았다.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재정난을 비롯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914년에 성전 외부 건축이 마무리되고 1915년 8월 24일에는 종 축성식을 가졌다.


성당 내부 ⓒ

성전의 주춧돌은 전주성의 성벽 돌이 사용되었는데, 일부 돌은 참수된 순교자들의 머리가 성벽에 매달렸을 때 피가 스며든 돌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26년에 신축된 사제관은 1937년 전주교구가 설정되면서 교구청과 주교관으로 사용되다가 1960년 교구청이 이전되면서 현재까지 사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동성당 야경 ⓒ

전동성당은 한국천주교회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순교터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대한민국 순교의 역사적인 성지이다. 성당 마당에 피어난 붉은 배롱나무꽃이 그때 흘린 순교자들의 붉은 피를 닮은 것 같아 애달다.


금산에 살던 윤지충과 권상연은 지체 높은 양반가의 자제들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된 후, 스스로 교회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하였다. 윤지충은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권상연은 그로부터 천주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1791년 5월 윤지충은 모친상을 당하게 된다. ‘교회의 가르침을 위배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윤지충은 외종사촌인 권상연과 더불어 신주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거부하였다. 이는 당시의 패륜으로 받아들여져 체포령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진산 관아에 자수함으로써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당한다.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과 전동성당 ⓒ

이것이 1801년 신유박해의 도화선이 되었던 진산사건이며, 그들의 참수는 현재의 전동성당 터에서 이루어졌다. 1801년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유관검,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하고 이 밖에도 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2021년에는 초남이성지 바우배기에서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유해가 230년 만에, 윤지헌의 유해가 220년 만에 발굴되었고, 전동성당 제대에 그들의 유해를 모셨다.


전동성당 제대에 모셔진 순교자 유해 ⓒ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화 : 063-284-3222

주변 가 볼 만한 곳 : 한옥마을, 경기전,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 덕진공원



홍덕희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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