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재입북→재탈북' 김광호의 사연
김정은 하사 새집 뺏기고 민원 넣었다 신변위협
간부들 등쌀에 돈 탕진…다시 남한행 결국 구속
지난 6월 재탈북한 김광호씨가 남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북한 당국으로부터의 철저한 냉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 씨는 스스로 입북을 결심하고 자발적으로 중국 심양에 있는 북한영사관에 찾아갔으며, 영사관 직원의 말대로 칠보산호텔에서 무려 9일간 기다리다가 평양행 고려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후 김 씨가 단 7개월만에 아내와 한살배기 딸을 데리고 또다시 목숨을 거는 재탈북을 결심하기까지에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이중적인 처우를 겪으면서 비로소 현실을 실감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씨를 구속기소한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2012년 10월24일 칠보산 호텔에서 만난 북한영사관 직원이 김 씨에게 “조국은 아직 어려워. 그래도 돌아가겠느냐”고 묻자 김 씨는 “상관없다. 어머니와 같이 살게만 해주면 만족하겠다”고 답했다.
김 씨는 올해 1월 평양에서 남한을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남조선은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험악한 사회이다. 탈북자들은 남조선 괴뢰들에게 강제로 끌려간 피해자이다”라고 주장했던 그는 이후 고향땅에서 체포될 위기에 놓이자 재탈북을 결심했다.
15일 소식통에 따르면, 기자회견까지 마친 김 씨는 고향으로 돌려보내지면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새집을 한 채를 선사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혜산시 인민위원회 간부는 김 씨에게 하사된 새집을 가로채고 헌집을 지정해줬고 김 씨는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됐다고 한다.
평양에서 한때 환대를 받는 것처럼 보였던 김 씨는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이후에는 철저한 감시 대상자가 됐다. 평소 간부들에게 이런 저런 시달림을 받던 김 씨는 새집을 돌려달라고 중앙당에 신소(민원)를 넣었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됐다.
이전부터 툭하면 간부들이 김 씨 집으로 몰려가서 술이며 돼지고기를 요구하는 바람에 남은 돈을 탕진해야 했던 김 씨는 슬슬 불만이 쌓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남한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가 한차례 체포된 일도 있었다.
위기를 느낀 김 씨는 일가족과 처제, 처남까지 데리고 다시 북한을 탈출했지만 중국 공안에게 체포됐다. 하지만 김 씨 부부가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어린 딸이 한국땅에서 태어난 사실 등의 이유로 무사히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결국 김 씨는 두 번의 탈북 과정에서 한국에서 3년여간 살면서 모은 재산 3000만원만 고스란히 날리고 그의 처남과 처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공소장에서 김 씨는 북한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은행에 모든 통장을 해지해 현금을 인출하고, 자동차도 팔아서 현금 300만원, 미화 1만1500달러, 인민폐(중국돈) 5만위안으로 환전한 채 중국 연변으로 들어갔다.
김 씨는 이중 2000만원 정도는 중국에서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으로 잠입하려던 시도 과정과 심양 칠보산호텔에 머물면서 북한의 최종 입북 허가를 기다리는 과정 등에서 탕진했다고 한다. 나머지 1000만원은 북한 고향땅에서 인민위원회 간부들을 대접하거나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뒷돈을 대거나 하는 식으로 소비됐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직후부터 국가안전보위부 조사를 받으면서 국정원에서 탈북자 신문을 받은 내용, 하나원 교육 내용, 주변 탈북자들 신원, 담당 경찰관 신원 등을 줄줄이 발설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재탈북한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북한으로 넘어간 데 따른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자진지원·금품수수, 북한 보위부와 접촉하고 기자회견 등을 한 데 따른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찬양·고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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