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의 시계는 4월 16일 오전 8시에 정지됐다
<현장>한집 건너 단원고 학부모 가족…시민들 충격속 말 잇지 못해
세월호 참사 특별취재반 |
이충재 기자 김수정 기자 백지현 기자 |
조성완 기자 윤정선 기자 |
사진 박항구 기자 홍효식 기자 |
안산시의 일상이 정지됐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따라 안산시는 대부도 튤립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비롯해 4·5월로 예정됐던 어린이날 행사,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등 축제성 행사를 줄줄이 취소시키고, 모든 촉각을 사고소식에 곤두세우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지 엿새째로 접어든 21일 희생자 수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도시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에 파묻힌 가운데 거리 곳곳은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평소 대학생들과 젊은이들로 북적였을 번화가는 상점에서 틀어놓은 음악만이 휑한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대체로 음식점과 카페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명상가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50대 여성은 “여기도 번화가인데 사람이 없다. 시 전체가 온통 침통한 분위기다”라며 “노래방이고 어디고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사람 몇 백 명이 그렇게 되는데, 제정신에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하루 벌어 먹고사는 처지라 어쩔 수 없이 장사하러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장사를 한다는 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린 학생들이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한 것이 어른들 탓이라고 자책했다. “오죽하면 장사하러 나왔겠느냐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그는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인근 주변 상가에도 물건을 정리하는 주인들의 손놀림만 분주했을 뿐 물건을 흥정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여성복을 판매하는 50대 여성도 “안산시가 모두 침통하다”고 분위기를 전하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말했다. 그는 “뉴스를 보고 정말 놀랐다. 우리 아이가 1년 전 수학여행을 갔을 때 탔던 배더라”라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아이들이 피지도 못하고... 그걸 지켜보기가 마음이 정말 안 좋다. 그걸 지켜보는 부모들은 오죽하겠느냐. 가슴이 미어지진다”며 혀를 끌끌 찼다.
상가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는 50대 여성도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딸을 두고 있는 그는 큰 딸이 사고를 당한 선생님의 제자였다고 했다. 뜻밖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선생님 소식에 큰 딸의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큰 딸 충격이 크지만 우리 작은 딸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원고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는데 그걸 지켜보는 부모마음도 가슴이 아프다”며 “매일같이 뉴스에서 사고소식만 들리는데 우울증이 걸릴 것 같다. 이 일이 수습이 된다고 하더라도 충격에서 헤어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서 하는 축제 뿐아니라 기업에서도 친목회에서도 주말행사를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길거리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아버지가 매주 산에 다니시는데, 사고가 발생하고 친목회도 자체적적으로 활동을 연기하고, 희생자 가족들을 애도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한창 봄 축제인파로 북적였을 광장25시 거리에는 수 만송이의 튤립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인근을 지나가던 50대중반의 남성은 “여기 광덕로는 서울에서 세종로라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는 축제도 많이 열려 사시사철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인데 지금 보다시피 이렇다”며 “안산이 지금 다 그렇다. 지금 안산에 예정된 행사들이 거의 다 취소됐다. 이런 판국에 누가 웃고 떠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광덕로를 뒤로하고 학교인근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올라타자, 60대 중반의 택시기사도 “경기가 완전히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기 보이는 광장에서 매년 거리극 축제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축제가 왠 말이겠느냐. 행사도 10개정도가 줄줄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는 지인 아들이 그 학교 2학년생이다”며 “그 학생은 배타기가 무서워 수학여행을 안 가서 사고는 면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모양이더라. 아이가 말을 안 한다고 하더라. 매시간 같이 공부하고 놀던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데 왜 충격이 없겠느냐”고 했다. 그는 단원고 1·3학년들의 정신적인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체계적인 치료를 시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6일째를 접어든 학교인근을 돌아다니는 주민들의 마음도 무거웠다. 학교는 관계자외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탓으로 취재진들의 과도한 취재 열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사고여파는 가시지 않았다. 학교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학교 앞 공원로 벤치에서 앉아 한동안 학교를 물끄럼이 지켜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인근 문구점·분식집·미용실 등 가게 사람들과 주민 사람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 다 우리 자식들이 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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