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이 '구원의 종'? 점점 벗겨지는 허와 실
조류 상관없다? 파랑 심하면 불가…20시간 작업? 40분
'실종자 가족들 절빅함 기댄 홍보전략' 비판 솔솔
29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 실종자 가족들의 시선은 단상에 설치된 스크린에 집중됐다. 한 케이블방송 뉴스에서 ‘다이빙벨’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볼륨을 키워달라”며 관심을 보였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진도 방문,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뉴스에 미동도 않던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울린 건 다이빙벨이었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이날 다이빙벨을 바지선에 싣고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으로 떠나자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에는 희망이 부풀었다. 다이빙벨의 ‘구원의 종’이 울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데일리안은 이날 오전부터 30일 오후까지 26시간 동안 바지선을 타고 다이빙벨 투입 과정을 지켜봤다.
20시간 수색 작업 가능? 1명씩 40분 작업 가능!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지난 2000년에 자체 제작한 다이빙벨은 무게 2t에 높이 3m, 반경 1.2m 규모의 종(鐘) 모양을 한 해난 구조장비다. 케이블과 감압장치 등 부수기재(1t)와 추(3t)를 더하면 총 무게는 6t에 달한다. 외형은 보신각종(높이 318㎝ 입지름 228㎝)을 약간 줄여놓은 모습이다.
종 모양의 구조물이 수면 아래로 내려갈 때 형성되는 공기층(에어포켓)을 이용해 잠수사를 바다 깊은 곳까지 데려다주고, 거기서 휴식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수중 엘리베이터’다.
이 대표는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싼 논란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다이빙벨이 대단한 장치가 아니다. 철로 만든 종이다. 그걸 잠수에 이용하는 것”이라며 “없는 사람이나 쓸 필요가 없어서 안 쓴 것이지 비싸거나 특별해서 안 쓴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20시간 연속작업이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한 사람이 20시간 동안 작업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40~50분마다 잠수사를 교체하면서 연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선 수색작업을 위해서는 잠수사가 다이빙벨을 타고 바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선체로 들어가야 한다. 다이빙벨은 29일 오전 사고 해역 인근에서 ‘시험 잠수’를 진행했다. 테스트를 진행한 잠수사는 “시계가 나쁘지만, 40~50분은 작업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테스트는 사고 해역과 달리 파고가 잠잠한 곳에서 진행됐고, 바다 아래 3~4m 지점까지 잠수했다. 세월호 선체를 수색하기 위해서는 1m가 넘는 파도를 뚫고 40m까지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다이빙벨의 ‘성능’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잠수사 한 사람이 물 밑으로 내려가는 시간을 줄여주는 데에 도움이 된다지만, 예행투입에서는 작업시간이 짧은 탓에 최대 작업시간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30일 실전에서도 중간에 케이블 장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정확한 평가는 어려웠다.
다이빙벨은 또 심해에는 수상에서 공기를 주입하는 ‘머구리 방식’, 얕은 수심에서는 공기통을 메고 가는 ‘스쿠버 방식’으로 이원화한 기존 수색 방식과 작업할 수 있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사전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할 때, 다이빙벨이 기존 방식보다 효율적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특히 다이빙벨은 파랑이 심한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물살에 바지선이 출렁이면 크레인이 움직이고, 크레인에 매달린 다이빙벨까지 시계추처럼 흔들려버리기 때문이다. 다이빙벨 투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수직하강’이다.
결국 잠수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파랑으로 바지선이 흔들린다면 작업은 중단된다. 잠수사 교체 시 물살의 세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말한 20시간 연속작업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실종자 가족 "성공하면 영웅 되겠지만, 실패하면 대가 치러야"
이 대표는 이날 사고해역에서 거센 파도에 다이빙벨 설치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이빙벨의 경로를 유지시키는 버팀줄과 잠수사를 인도하는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 데에만 18시간이 꼬박 걸렸다. 지난 26일에도 이 대표는 다이빙벨 투입을 시도했으나 “날씨 때문에 어렵다”며 작업을 중단했다.
즉, “조류 세기에 관계없이 수색이 가능하다”는 이 대표의 주장에는 ‘파고가 높지 않을 경우엔’이라는 단서가 빠진 것이다. 구조당국의 “사고 해역은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다이빙벨의 투입과 수평 유지가 힘들다”는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다이빙벨 투입 과정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구조작업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다이빙벨이 실종자 구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이 대표의 주장이 각종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실종자 가족들이 장비 투입을 강력히 요청해 구조당국이 이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구조당국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깔려 있다.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작지 않다. 자칫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원의 종을 울렸다가 다시 절망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다이빙벨 설치 작업을 지켜보던 한 실종자 가족은 이 같이 말했다. “이게 어떤 장비인지 잘은 몰라도... 성공하면 영웅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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