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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영웅화에 배설만 죽일놈? 역사와 허구 경계는...


입력 2014.09.05 11:00 수정 2014.09.05 11:05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역사적 맥락상의 진실 안에서 컨텐츠 만들어야

영화 '명량' 스틸컷.ⓒ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계인은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양녕대군을 연기했을 때, 양녕대군 문중의 항의를 받았다고 밝혀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당시 문중에서는 어디 범죄자를 양녕대군 어르신역에 캐스팅하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드라마 '수사반장'이래 주로 배우 이계인이 악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양녕대군을 맡기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생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만큼 미디어를 통한 대중적 이미지는 강력할 수 있다.

드라마 '허준'을 제작할 때, 이병훈 피디는 최완규 작가에게 백과 사전만한 자료를 주었다고 한다. 이게 뭐냐고 묻자 이병훈 피디는 문중 등에서 항상 문제제기하는 내용들이라고 했다. 그만큼 사극이 한편 나가면 제작사로 방송사로 문중의 항의가 많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자료를 따로 만들었던 것이다. 소설 '불멸의 이순신'의 작가가 밝힌 경험메 따르면 이순신 장군 주변의 장수들이 150명인데, 소설에 10명밖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문중의 사람들이 항의 방문을 연이어 했다고 한다. 문중의 어르신을 소설에 등장시켜야 한다는 항의였던 것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 가문에서 항의를 했다. 신숙주의 아들 신면을 신의와 믿음이 없는 악역 무도한 인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병훈 피디는 윤봉길 드라마를 만들었다가 문중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윤봉길 의사의 연인을 등장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나라가 가문이나 문중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있어 왔는데, 요즘은 옛날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의 역사 사실 논란은 역사학계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문중이나 후손, 가문에서 일으킨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역사학계에서는 역사 드라마 창작 자체가 중요하다면서 관용하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불거진 영화 '명량'의 배설 장군에 대한 논란이다. 배설 장군 후손들이 영화 '명량'에 그려진 배설 장군의 모습이 매우 부정적이다못해 사실을 심하게 왜곡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결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향후 적극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배설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암살을 획책하는가 하면, 거북선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는 쫓겨 도망가다가 바다 위에서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물론 이같은 내용은 기록에 없다. 그는 명량해전 전에 병이 깊어 고향으로 려간 기록이 '난중일기'에 나오는데, 이순신 장군은 이것이 못마땅했는지 허락을 하고는 이틀 뒤 일기에는 다시 내뺐다고 적고 있다. 1599년 권율은 그가 탈영을 했다며 선산에서 잡아 한양으로 압송해 참형했다. 이를 두고 후손의 입장에서는 임란의 책임을 지운 희생양이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그가 남해안에서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 배설 장군이 거북선을 태웠거나 이순신 암살을 시도했는지 전혀 기록에는 없다. 물론 12척의 배를 칠천량에서 가져와 이순신 장군에게 인계한 것은 맞다. 이에 대해 도망이냐 작전상 후퇴냐로 볼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지난하게 있었다. 사실 이 배가 없었으면 명량 해전은 없다. 원균이나 배설 장군은 모두 전쟁 수행상의 이견을 피력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절대적인 악인으로 그리는 모티브로만 삼는 것은 편견에 영합하는 것일 수 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맞았던 것일 뿐이다.

2010년 영화 '방자전'이 개봉하자, 관련 춘향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은 물론이고 위자료 1억 2천여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2011년 이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법원에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데, 배설 문중이 이같은 소송까지 갈 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문제이다. '방자전' 소송 주체는 이익단체였고 이번에는 문중 후손이 소송 주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안이 이제 역사적 사실이냐 상상력이 우선이냐라는 이분법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문중의 주장이나 기록은 기존의 정사에서 놓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제대로 학자들이 연구에 반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상태에서 기존 연구자료에 따라 콘텐츠가 제작되면서 문제를 낳아왔다.

그리고 이미 고착된 캐릭터가 계속 일탈 확장되었다. 예컨대, 정조는 선하고 정순왕후는 악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드라마 '기황후'처럼 기존의 캐릭터를 뒤집는 노력도 중요할 수 있다. 어쨌든 영화 '명량'은 영화의 극적인 재미와 이순신 장군의 영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설 장군을 극악스럽고 무도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사실이다.

후손이 조상을 좋게 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영화 '명량'이 1700만명을 넘으면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몇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영화를 많이 보는 현상, 즉 콘텐츠 소비의 쏠림 현상이 일어날수록 이런 사극 고증을 둘러싼 논쟁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더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영화 매체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천만 관객의 영화가 많아지고 사극이 대박콘텐츠로 많이 제작 소비될수록 이런 기준은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다양한 해석이라는 점은 중요하지만 일방적인 해석의 강요와 획일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근본원인으로 도사리고 있다. 만약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 '명량'을 보지 않았다면 배설 논란을 이렇게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 대응을 할까 싶다.

무엇보다 제작자들은 대중적 흥행이 아닌 역사관이 있어야 하며 역사적 맥락 상의 진실 안에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창작의 자유는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그것은 단순히 몇가지 팩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사들은 물론 방송사들이 연합하여 자문연구기구인 역사영상콘텐츠소스뱅크를 만들어야한다. 이미 영상이 역사를 쓰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위인전이 숨기는 이순신 이야기', '이순신의 일상에서 리더십을 읽다'의 저자)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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