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누가 강릉 구정리의 남근석을 훔쳐갔나


입력 2014.09.29 10:04 수정 2014.09.29 10:22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남근석을 찾아서>국내 유일의 남근 서낭당

강릉 구정면 구정리는 도심에서 10km 정도 떨어진 한적한 농촌이다. 주변이 수목들로 군락을 이뤄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났다. 면사무소 인근에는 우람하고 키가 큰 적송 몇 그루가 서있는데, 그 적송 사이에는 돌담으로 에워싼 방호벽이 있으며, 방호벽 중앙에는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서낭당은 겉보기에는 우리나라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당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낭당 내부에만 관심을 두면서 뒤쪽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 구정리 서낭당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외부에서 볼 때 당집과 방호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돌탑이 둥글게 쌓여 있다. 이 돌무더기는 개천의 강돌을 옮겨와 포개놓은 것으로 높이가 약 2m, 둘레는 15m 남짓하다.

돌탑 위에는 높이가 약 1m, 뿌리 쪽의 둘레가 60cm,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청색을 띤 자연석의 남근이 하늘을 향해 발기된 형태로 서있었다.

당집 뒤쪽에 세운 영험한 남근석. ⓒ최진연 기자

이 남근석이 세워진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옛 부터 이 서낭의 신력(神力)이 마을을 수호하고 치병, 재액을 막는 것은 물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공동체의식을 높여주는 주는 것으로 믿고 남근석을 서낭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빤히 마주보는 남근석 앞에서 치성 드리는 것이 보기에도 민망해 조선시대부터는 남근석을 가리기위해 그 앞에 서낭당을 별도로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형태의 돌무더기와 당집이 함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구정리 남근석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남근석은 1990년대 후반 누군가가 훔쳐가고 말았다. 기자는 1990년 중순 남근석 사진을 찍기 위해 현장에 갔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 때문에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현재 마을사람들은 도둑맞은 남근석과 형태가 비슷한 것을 꼭대기에 세우지 못하고 돌탑아래 세워놓았다. 또다시 도둑맞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남근석을 안으며 아들을 얻는다고 남근의 영험함을 믿고 있으며, 지금도 매년 음력 10월에 서낭당에 제사를 지낸다.

남근석을 가리기위해 지은 당집ⓒ최진연 기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근석은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드나드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2002년 구정리 마을에 태풍이 닥쳐 홍수가 났지만 돌탑은 해를 입지 않았다. 또한 서낭당을 둘러싼 적송은 조선말 대원군시절 경회루 복원사업 때 전국의 질 좋은 소나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적송이 대궐목재로 사용될 처지에 놓이자 마을주민들이 적극적인 보호노력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구정리에는 어느 효자의 전설이 내려온다. 그의 아버지가 질병으로 몸이 쇠약해 고기를 먹고 싶어 했지만 엄동설한이라 고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집 앞 우물에서 매일 하늘에 기도를 했다. 그러자 어느 날 우물에서 거북이 한 마리 나와 그 거북이를 잡아 아버지께 고아드려 병환을 낫게 했다는 얘기다. 그때부터 거북이가 나온 우물이라 해 구정(龜井)으로 마을 지명이 붙었다.

태산준령의 끝머리에 세운 구정리 남근석은 태백산의 정기를 받은 마을 수호신이었으며, 우리역사와 우리자연, 우리 선조들의 손길이 배어있는 곳이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최진연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