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하나뿐인 ‘지적박물관’ 우리 곁에 있었네
개관기념 특별전 ‘탑, 땅을 딛다’사진전도 열어
미닫이문이 정겨운 제천 금성면 옛 초등학교
“오늘 아침방송을 보고 방문하게 됐습니다. 매일같이 박물관 앞을 오가면서도 지금까지 모른 척 했네요. 전시장에 진열된 측량도구들을 살펴보니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지난 15일 오전, 제천 금성면에 위치한 지적박물관에서 기자와 만난 신호(72) 씨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같이 온 일행에게 전시장 부스를 살피며 도구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있었다.
신 씨는 젊은 시절 서울전기사무소 용산통신분소에 근무할 당시 매일같이 들고 다니던 도구들이 전시된 것을 보고 지난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우리나라 토지․측량에 관한 모든 유물들이 전시된 지적박물관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1999년 10월 폐교된 한 초등학교를 개조해 4개의 전시실과 자료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지적자료 1000점, 향토지 1000점, 백년사, 그리스도교 자료 등이 보관돼 있다.
초등학교 복도 벽면을 이용한 현관전시실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적측량의 현장을 기록한 사진이 걸려 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 최초의 측량사진이 시선을 끈다.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토지측량의 교과서인 상명산법필사본(1878년 제작)과 한국최초의 근대 수학책인 정선산학(1907년), 조선시대 말부터 현대에 이르는 지적관련 서적과 전국 각 시․도지와 시․군․읍․면․리지, 북한의 시․도지 등이 망라돼 있다.
또한 측량의 역사, 자의 역사가 진열된 전시실에서는 서양보다 한국이 측량에 한발 앞섰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다. 거리를 측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손․ 발을 이용한 계산법과 쌀을 이용했던 자도 호기심을 끈다.
지적박물관 설립자인 리진호 관장은 서울대 농대 졸업 후 1959년부터 공직에 근무하면서부터
취미로 지적 분야 고서적을 수집해 왔다. 그 후 대한지적공사 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겨 지적공
무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동안 수집해 놓은 많은 서적들을 아파트에 쌓아 놓았는데, 반상회 때마다 이웃주민들이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 정도라며 박물관을 차리라고 권유했다한다. 평소 생각해 오던 박물관설립 계획이 이웃들로 인해 탄력을 받게 됐다. 이때부터 향토지와 백년사 등의 문헌자료들을 본격적으로 모는 것이 8천여 점에 이른다.
그는 서적 수집뿐만 아니라 연구 및 저술활동도 병행했다.‘대한제국지적 및 측량사'‘서울지적연혁지’'한국지적사, '한국성서백년사' 등 많은 논문과 책 등을 발표했다. 사무실로 쓰는 교실은 그동안 출간한 책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설박물관 대다수가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이곳 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가끔 찾아오는 관람객들의 입장수입으로는 전기료에도 못 미친다. 리관장은 "제천시에서 박물관 운영보조금을 받지만 교육지원청에 임대료를 내고나면 아무것도 없다“면서, 그래도 지적측량에 관한 유물은 세계에서도 단 하나뿐인 박물관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박물관개관 15주년 기념으로 ‘탑 땅을 딛다’ 특별 사진전도 열었다. 사찰마당 한가운데 또는 고즈넉한 사지터에 홀로 남은 우리나라 석탑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다.
초대전은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허애영사진가로 20여년 불교문화재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어릴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절집을 다니면서 스님의 독경소리와 향냄새에 듬뿍 빠졌다.
젊은 시절에는 문학에 꿈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뒤늦게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고 사진작업에 몰두했다. 사진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밤을 새워 책장을 넘기고 눈을 비벼가며 며 마음자락을 살폈다.
“탑은 내게 강한 의지와 굳게 살라는 힘을 주었으며, 탑을 찾아가는 길은 잊고 살았던 꿈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카메라를 둘러맨 어께도, 발거음도 가벼워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마음이 편했습니다.” 사진작업은 나에게 삶에 행복은 물론, 매력덩어리라고 말했다.
나무로 된 골마루에 미닫이문이 정겨운 옛 초등학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넓은 운동장엔 잡초만 무성하다. 유년시절 동심의 세계가 그리우면 ‘탑, 땅을 딛다’ 사진전시장을 찾아가보자 2015년1월3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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