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피노키오'는 슬럼프 때 만난 작품"(인터뷰)
사회부 수습기자 기하명 역 맡아 열연
"연예인 끼 없어…관심은 오로지 연기"
잠을 더 잘 수 있어 좋단다. 앞뒤 재지 않는 솔직한 답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에서 기하명을 연기한 배우 이종석의 종영 소감이다.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종석은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매끈하고 하얀 피부는 여전했다. 인터뷰 초반, 이종석은 말주변이 없다고 했다. 화려한 언변은 아니었지만 꾸밈 없는 말이 이어졌다.
"'피노키오' 통해 연기 열정 얻어 행복"
'피노키오'는 '기자 드라마는 실패한다'는 속설을 깬 작품이다. 여주인공이 가상의 병인 '피노키오 증후군'(거짓말을 하면 자율 신경계의 이상으로 딸꾹질 증세를 보임)을 앓는 설정이 독특했다. 방송사 사회부 기자들 이야기를 토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들의 성장기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이하 '너목들')의 조수원 PD와 박혜련 작가는 연타석 흥행 홈런을 쳤다. 기자라는 직업보다 청춘들의 성장에 주목했다는 게 박 작가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취재에 소홀한 건 아니었다. 취재만 1년 이상했고, 자문기자만 네 명이다. 탄탄한 필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여기에 조 PD의 섬세한 연출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박 작가의 '페르소나'인 이종석은 제작발표회, 기자간담회, 그리고 인터뷰 자리에서 제작진을 치켜세우기 바빴다. "'너목들' 현장이 그리웠어요. 작가님과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과 이보영·윤상현 선배 등 출연진 모두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이었죠. 연락도 꾸준히 하고요."
드라마 인기 비결에 대해 그는 "박 작가님이 대본을 잘 써주셨다"면서 "사건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였는데 너무 무겁지도 않고, 로맨스도 적절히 녹아 있어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피노키오'에서 이종석은 열혈 사회부 기자 기하명 역(가명 최달포)을 맡았다. 어린 시절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로 부모를 잃고 모든 과거를 지운 채 살아가는 캐릭터다. 자신의 아버지를 범죄자로 매도했던 기자가 사랑하는 여자 최인하(박신혜)의 엄마인 걸 알게 되면서 갈등에 휩싸인다.
그러다 어렵게 만난 형 재명(윤균상)이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걸 알게 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형의 죄를 까발려야 한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형이 살인자가 됐다니.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11~12회였을 거예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13회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막막했죠."
기억에 남는 장면으론 화재 사건 배후에 있는 박로사(김해숙)의 자백을 받는 신을 꼽았다. 하명은 "아들은 무고하다"는 로사에게 "죄 없는 아들을 범죄자로 보도하는 기자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로사가 "잘못됐다"고 강조하자 하명은 "그럼 잘못된 걸 바로잡아 달라"고 했다. 결국 로사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뉴스는 과장과 왜곡 없이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드라마의 메시지가 드러났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진실'은 빛난다는 작가의 생각도 돋보였다. 양심과 정의를 위해 진실을 좇은 하명은 말의 무게와 가치를 깨닫고 어느덧 기자로 성장했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느꼈죠. 대중에 노출된 연예인으로서 더 그렇고요. 사실 제가 한 말과 다른 의도로 기사가 나가는 경우가 있을 때 당황스러워요.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려고요."(웃음)
사회부 기자 역을 하고 나니 사회 기사들이 보였다. 이전에는 연예 기사만 주로 봤었는데 보다 다양한 기사를 읽게 됐다고. 미처 몰랐던 언론의 모습도 봤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봇물 터지듯 나오는 기사들이 그렇다.
'피노키오' 전에 이종석은 '닥터 이방인'에 출연했다. 시청률은 괜찮았지만 평은 안 좋았다.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지치고 힘들었어요. 데뷔 후 쉬지 않고 일한 탓일까요? 마냥 지치더라고요. 그때 쉬었으면 오래 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열정이나 도전 정신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그런 찰나 '피노키오'를 만나 행복했죠."
오로지 연기에만 관심 있는 청춘 배우
이종석은 풋풋한 16세에 모델로 데뷔했다. 하얀 피부, 끝을 모르는 기럭지, 매혹적인 눈빛. 연기도 잘한다. 청춘 스타의 조건을 고루 갖췄다. 필모그래피도 안정적이다. SBS '시크릿가든'(2010),'너목들'(2013), '관상'(2013), '피노키오'(2014) 등 출연했다 하면 화제가 됐다.
그가 맡아온 캐릭터들은 멋진 재벌 3세와는 달랐다. 무언가 결핍된, 깊은 사연을 지닌 역할이다. "저는 만족해요. 가정사나 사연이 풀리는 게 재밌거든요. 약해보이는 제 모습과도 비슷하고요."
이종석은 또래 배우 이민호, 김우빈 등과 자주 언급된다. "각자 다른 매력과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어요.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죠. 이 친구들이 남성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저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잘할 수 있고 저한테 어울리는 로맨스 작품에 집중합니다."
그는 자신을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했다. 집에서 잠을 자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활동적인 운동을 피하고 집에서 TV 보는 걸 선호한다. 여행을 떠나더라도 호텔 방에서 TV를 보는 편이다.
배우 이종석에게선 선뜻 떠올릴 수 없는 의외의 모습이다. 드라마 속 그는 카리스마 있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사람 이종석은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리는 어린 소년 같이 느껴졌다. 그런 그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은 연기할 때다.
"연기는 대본만 따라 가면 되는데, 인터뷰나 제작발표회 자리는 생각지 못한 질문들을 받아 긴장됩니다. 아직도 떨리고 쑥스러워요."(웃음)
밖으로 나가는 대신 TV를 선택한 그는 드라마 캐릭터에 빠져든다고 했다.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역할을 간접 경험하는 게 흥미롭다. 끼가 부족해 방송 출연에도 관심이 없단다. 관심사는 오로지 연기다.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것도 배우라는 직업 때문이다.
캐릭터를 위해 배우는 다양한 것들도 연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해야 할 일은 연기"라고 당차게 말하는 그에게선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진중함이 엿보였다.
"박 작가님이 제게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는 배우'라고 칭찬해주셨어요. 정말 기뻤죠.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될 거예요. 나이가 들어도 청량하고 산뜻한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