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해도 말이 나오는 김태희 현상은 왜 ?
<김헌식의 문화 꼬기>돈과 명예, 외모와 학벌 갖춘 스타의 결핍은 공격 대상
드라마 '용팔이'에서 배우 김태희는 상당량의 회차에서 거의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이에 대해서 비판이 쏟아졌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심지어 편하게 출연료를 챙긴다는 비난도 있었다.
배우 주원의 활약으로 시청률이 비교적 높다는 전제에 따른다면, 김태희는 불로소득자로 생각될 지 모른다. 숟가락만 얹었다는 말이 되겠다. 김태희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상의 설정이 그렇게 되었는데 배우에게 모두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어 보였다.
이렇듯 김태희는 드라마 출연 때마다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김태희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액션을 해도 말이 나오고, 움직이지 않아도 비판을 받는다. 김태희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대사가 많으면 많은 대로 말이 적으면 적은대로 비난에 직면한다. 말 그대로 무엇을 해도 김태희는 논란을 일으키게 되고 많은 경우 비난을 받는다.
도대체 김태희는 왜 이런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일까. 이런 김태희 현상은 이미 운명에 가까워 보인다. 그것은 대중적 질투의 진화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나쁘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때문에 애초부터 각오가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한 문제였다.
장점은 단점이 된다. 데뷔 초반에 김태희는 출신학교가 서울대라는 이름 때문에 주목을 받았지만, 이는 김태희가 인기를 끌면서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되었다. 완벽함은 오히려 주목의 대상이 되지만 어느 순간 지배자나 권력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 외모 여기에 학벌까지 갖춘 스타에게 드러나는 결핍은 좋은 공격 대상이 된다.
김태희의 뛰어난 외모는 그 인기가 증가할수록 그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시켜주어 더욱 사회적 완벽함을 갖추는 조건이 되어갔다. 뛰어난 외모는 그것에 부응하는 기대감을 높이는 법이다. 따라서 지나친 그러니까 우월한 외모는 역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통례이다.
우리는 외모가 뛰어나면 배우가 되라는 말을 하거나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연기자에게도 해당된다. 그만큼 일반화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연구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지나친 외모는 오히려 해가 된다. 특히 많은 이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회 활동을 하는데 제약이 뒤따른다.
또한 일반적인 인식속에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오히려 불공평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따라서 무엇인가 흠결을 찾아내어 그것을 부각시키고 싶은 욕구들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그 흠결이 발견된다면, 그것에 대한 집중적인 부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오히려 개성적인 연기파 배우가 외모에 관계없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된다. 외모에 비해 연기는 상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기 쉽다. 오히려 같은 연기 수준을 보여주어도 더 낫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이는 배우 이영애에게도 같이 적용되어 왔다. 이영애도 애초에 뛰어난 외모 덕분에 기대감이 놓아지고 웬만해서는 그것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 쉽다. 이는 드라마 '대장금'에서 연기력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요구되는 곳은 아쉽게도 연기력이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미모의 배우에게는 연기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는 여성진행자에게 적용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결국 요구되는 것은 텔레비전 속의 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여성 스타에게 요구되는 것이 연기력이라면 드라마의 수준은 매우 뛰어나게 되었을 테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나온다.
젊고 예쁜 배우가 주연일수록 연기력이 뛰어난 조연이나 중년배우가 항상 포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수단이 되는 상황에서 욕은 예쁜 배우가 먹고 노이즈 마케팅은 성공한다. 그런데 욕을 먹는 문제의 핵심은 따로 또 있다.
그것은 지역이다.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 하지 말아야할 것은 역설적으로 배우다. 그런 이들이 배우를 하면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된다.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 대부분은 악녀로 머물지만 불행하게도 김태희는 악녀에서 선녀로 이동했다. 악녀에서 머물러야했던 김태희가 선녀의 입지를 갖추었으니 그 비난은 어쩌면 당연한 수준이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더욱 가속화했다.
그냥 적절하게 생긴 외모를 가질수록 배우로 인정받기 쉬울 것이다. 그럴수록 연기력을 배가시켜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된다. 뛰어난 외모는 연기력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주목을 받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덜 일으킨다. 어차피 쉽게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결국 공짜가 없는 것이며, 김태희 논란은 그러한 균형성을 회복 하려는 대중문화심리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는 채 김태희도 합의를 해야한다. 그 절충점을 찾아가는 하나가 드라마 '용팔이'인 셈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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