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향수? 재개봉의 진짜이유는 따로 있네
<김헌식의 문화 꼬기>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다변화와 콘텐츠 소비 새로운 기회
재개봉은 추억과 연관된다. 예전에 감명깊게 본 영화를 다시 즐기고 싶기 때문에 재개봉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점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영웅본색’같은 영화들은 이런 추억의 코드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영화가 재개봉하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유하려는 마음도 작용한다. 개별적으로 즐겼던 것들을 같이 극장이나 안방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개봉은 디지털 기술이나 환경과 밀접하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재개봉 영화 가운데 가장 흥행한 사례가 되었다. 개봉 당시에는 16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면, 2015년 재개봉에서는 40여만명에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했다. 3만명이면 충분한 손익분기점을 10배이상 훌쩍 넘겼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기록했던 5만명 흥행기록을 간단하게 뛰어넘었다. 이 영화는 디지털 마스터링 과정을 거쳤다. 화면이 깨끗해졌고 사운드도 풍부해질 수 있었다.
이런 기술적인 조치가 재개봉의 이유가 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경우, 지난 10년간 디지털 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입소문을 탔던 영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꼭 봐야할 인생의 영화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봐왔던 이들도 극장을 통해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디지털 마스터링을 통해 한결 나아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재개봉을 하는 이유도 또 있다. 이 역시 디지털 환경과 맞물려 있다. IPTV와 주문형 비디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기인한다. 4-5년 전에 비해 이 시장은 10배 이상 커졌다. 이 때문에 영화의 일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봉후에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만 영화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주기적으로 재개봉해 부활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다른 영화들도 예컨대, ‘공동경비구역JSA’, ‘빽투 더 퓨쳐’, ‘아마데우스’, ‘렛미인’ 등처럼 훨씬 더 가치를 높게 받으며 부활하고 있다.
IPTV와 주문형 비디오(VOD)시장이 커진 이유를 무엇보다 여가 패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시민들은 주말에 여행이나 레저활동을 즐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텔레비전 그리고 IPTV등을 실내에서 보는 것이다. 콘텐트 소비 체계의 관점에서 재개봉을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좀 더 수익을 올릴 수가 있는데, 재개봉작은 2-3배의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극장 개봉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홍보 효과를 낳기 때문에 좀 더 이용자의 수를 높일 수가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현상을 낳게 된다. 물론 재개봉을 무조건 디지털 환경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가 좋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계절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가을은 로맨스 영화와 밀접하지만재대로 된 개봉 영화가 없다. 이때문에 ‘이터널 선샤인’이나 ‘러브액춸리’가 개봉하는 것이다. 11월이나 12월 초는 비수기이기 때문에 저렴한 장르영화나 예술, 다양성 영화가 선호된다.
여름같은 계절에는 명함도 못내밀 작품들도 기회를 잡는다. 다만, 여전히 이 시장자체에서는 액션, 오락, 섹슈얼리티에 관한 장르가 여전히 선호되고 있다. 아울러 스타의 출연도 중요하다. 당연히 팬심이 강력한 스타이어야 한다. 영화의 흥행성적이 좋지 않아도 이런 요건에 맞으면 이런 공간에서는 성공을 한다. 대표적인 영화들이 이민호 출연의 ‘강남, 1970’ 그리고 송승헌의 ‘인간중독’, ‘간신’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재개봉영화가 많이 선을 보이고 실제로 흥행 랭킹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널리 알릴 수 있는 확률이 많으며, 이때문에 IPTV와 주문형 비디오(VOD)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이런 영화들은 저렴한 비용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게 된다. 이 때문에 영화 투자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게 된다. 욕심부리지 않고 작품성 자체에 주목을 하면 언제인가는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좋은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영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진화와 함께 갖추어지는 상황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또한 연기력과 연출력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밑에서 부터 인정을 받을 수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단, 전제조건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실험적이고 색다른시도라고 해도 대중적인 친화성이 있어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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