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응팔' 어차피 남편은 둘 중 하나인데...
>김헌식의 문화 꼬기>첫사랑의 성공이라는 판타지 언제까지 추리극으로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재미를 봤던 남편 찾기 추리포맷을 '응답하라 1988'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에 전작인 '응답하라 1994'에서 크게 재미를 본 것이 사실이다. 삼각관계 속에서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사랑의 짝대기를 풀어내는 시청자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스릴러나 팩션에서나 자주 사용되는 추리 기법이 복고 드라마에 사용되는 것은 참 이색적이었다. 과거는 그냥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배우자에게서 찾도록 했기 때문에 의미와 가치도 지니고 있어 보였다.
치열하게 여러 이견이 갈렸지만, '응답하라 1994' 에서 성나정(고아라)의 남편 '김재준'은 쓰레기(정우)였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혜리)의 남편은 정환(류준열), 택(박보검) 가운데 누구일지 맞추는 추리 게임이 2회를 남기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여러가지 단서들을 조합해서 그럴듯한 추리를 해내고 있는 시청자들은 서로 갑론을박 하는 상황이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응사에서 칠봉은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정환과 택 둘 가운데 누가 칠봉이가 되고, 누가 쓰레기가 될 지 추측이 되는 동시에 응원도 이뤄지고 있다. 마치 옆에 살아 있는 실제 인물을 응원하고, 연민 동정 하듯이 말이다. 택으로 분하고 있는 박보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남편 맞추기 게임은 현실과 매우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는 같은 하숙집 패밀리가 진짜 가족, 배우자가 되었다. 응팔에서는 한 동네에서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이들이 커플이 된다. 특이하게도 '응팔'의 경우, 등장인물들은 그 동네를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는 물론 배우자도 동네 친구 중에서 얻는다. 서울이 비좁아도 어느 시골 동네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대학교와 직장생활도 할 이들이 말이다. 수많은 상황과 사람들, 인간관계 속에서 동네에서 같이 자란 비슷한 또래와 결혼한다는 점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서 '응팔'의 정체성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결국에 첫사랑에 대한 추억의 판타지가 투영되어 있는 드라마다.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드라마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극적으로 구성된 판타지의 세계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전원일기'의 도시판이며, '한지붕 세가족'의 동네 확장판인 셈이다.
분명, '응팔'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다. 추억은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런 실제를 보여주듯이 '응팔'은 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광고, 노래들을 배치한다. 여기에 당시 유행했던 팬시 용품이나 책, 장신구 등 소품들을 적절하게 등장시킨다. 여기에 당시의 경제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이 드라마 주요인물들의 삶에 치명적이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억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그럴듯한 현실인듯 말이다. 사극이나 시대극이나 모두 과거를 재구성할 뿐이다. 그대로 과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배경으로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내려 한다. 지금도 결핍되어 있고, 그 당시에도 결핍되어 있는 무엇인가를 그려낸다. 이미 현실에 있던 것이라면 재삼 반복할 이유가 없다.
그런 면에서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가도 결국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상적인 선택에 머물 것이다. 실제에서는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선택될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는 것이다. 결국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와 결혼하는 일은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많은 이유이겠다.
과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만이 중요할 뿐이다. 동네 친구와 결혼했다면 결혼하지 못하고 싱글로 있거나 돌싱으로 남아 있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린 너무나 많이 돌아왔다. 거품과 버블의 시대에 세상 밖으로 나아가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꿈에 젖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저성장 시대에 파랑새는 집에 있으니 그것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겠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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