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강동원·웨이드 윌스에 여성들이 왜 열광?
<김헌식의 문화 꼬기>폭력 액션 넘어선 비호감 캐릭터의 반전
최근 개봉한 영화들 속에 폭력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 관객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고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차별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폭력 액션 자체 때문에 영화를 선호한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면이 있다. 영화 '매드맥스'에도 액션 자체 보다 여성주의적 세계관이 주효했다.
최근의 영화들을 보면, 그 안에 남성 캐릭터가 갖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데드 풀'의 라이언 레이놀즈와 영화 '검사외전'의 강동원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우선 영화 ‘데드 풀’의 웨이드 윌스 캐릭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과 다르다. 반(反)영웅은 아니지만 안티 히어로에 가깝다. 안티 히어로는 영웅과는 다른 면이 많은 캐릭터이고, 반영웅은 영웅을 거스르는 악인이나 악당에 가깝다. 영화 ‘데드 풀’에서 웨이드 윌스(라이언 레이놀즈), 그는 단지 거리의 깽이며 약쟁이에 불과해 보인다.
안티 히어로의 관점에서 볼 때, 영화 ‘핸콕’의 주인공과 닮았다. 그는 자신을 떠난 연인 때문에 피폐한 삶 속에서 자신만을 생각한다. 세계 평화나 정의 실현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질서를 혼란스런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웨이드 윌스만큼 말이 많지는 않았다. 웨이드는 역대 가장 수다스러운 영웅이다. 그 수다는 보통 그냥 말이 아니라 거친 욕설에 비속어이며, 성적 농담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유머와 위트를 넣으려 하니 더욱 더 말이 많아진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에 어이가 없어 웃는 때도 많다. 그것은 한편으로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 하기도 한다. 그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이면서 여성들의 눈길을 끄는 인물은 영화 '검사외전'에도 등장한다.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은 말이 많다. 사기꾼이기 때문에 세치 혀를 자유자재로 놀린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정도라서 권력의 화신 우종길(이성민)과 출세지향주의 양민우(박성웅) 검사 등을 깜쪽 같이 속여 넘긴다.
물론 이 둘은 모두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반사회질서주의자들이었다. 이런 비호감의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관객들은 강동원 때문에 발길을 극장으로 향했다. 비호감의 캐릭터일 수 있는데 어떻게 이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들이 사기꾼이고 깽일지라도 악한 사람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소한 웨이드는 자신의 연인을 끝까지 지키려는 로맨틱한 남자이다. 자신이 사랑한 여성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불행한 사고를 당해 외모가 엉망이 된 불행의 고통을 당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영화‘검사외전’의 한치원(강동원)은 여성을 특히 울리고 웃기지만 악인이라기보다는 악동이나 개구쟁이에 가깝다. 여성에게는 러블리한 캐릭터들일 뿐이다. 그것은 말은 물론 다변하는 표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이 된다. 어쨌든 사기꾼임이 분명하지만, 개과천선하려는 듯 변재욱(황정민)에 협조해서 부정부패한 권력자를 일벌백계하는 데 참여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조폭 두목인 안상구(이병헌)가 우장훈(조승우) 검사를 도와 정치-언론-기업의 카르텔을 부순다. 물론 손을 못 쓰게 되고 그들에게 버려지는 참담함과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린 후에 복수에 참여한 결과였다.
물론 안상구 역의 이병헌은 이전의 스캔들 때문에 대중적 비호감이 되었는데, 이 영화의 캐릭터를 통해 대중적 반전을 충분히 이루었다. 그가 처음에는 사회정의나 세계 평화 수호의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영화 '데드 풀'의 웨이드도 결과적으로는 악인을 무너뜨린 셈이다. 물론 정의와 평화 수호와는 관계없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자에게 회복 방법을 묻고자 하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담스미스의 원리가 그대로 투영이 되고 있다.
각자 열심히 살면 그것이 전체의 공익을 증대시킨다는 것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영화는 이상적인 상태의 소망 실현을 담아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은 단순한 오락이나 액션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고 그것을 발견하면서 공감을 느낀다.
이제 현대 영화들은 절대적인 초인 캐릭터의 영웅을 그리지 않는다. 결함이 있는 존재이거나 그것을 넘기 위해 부단히 존재하는 영웅들이다. 영웅들은 철저히 인간화 되었다. 우리 안에 있는 결핍과 한계, 상처와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영웅들이다.
반드시 영웅들일 필요는 없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듯이 그들은 철저하게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B급 영웅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본래 B급들이 새롭게 바꿔가는 법이다. A급은 새롭게 바꿀 필요가 없고, 그 안에서 안주하면 그만이다. 아니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생각이 필요 없는 지도 모른다.
영화 ‘앤트맨’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냥 아이의 아빠로 존재할 수 있으면 좋고, 영화 ‘데드 풀’처럼 누군가의 연인으로 그냥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있는 사회를 영화는 계속 그려낼 수밖에 없는 사회로 점점 더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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