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북 매체에서 이제 농담따먹기를?
김정은 시대 아이콘 '모란봉악단' 등장 이후 북 파격변화 계속
전문가 "북, 선군정치·병진노선 포기 안 하면 변화 의미 없어"
김정은 시대 아이콘 '모란봉악단' 등장 이후 북 파격변화 계속
전문가 "북, 선군정치·병진노선 포기 안 하면 변화 의미 없어"
친숙한 진행에 맛집 소개까지, 기존 권위적이고 경직된 스타일의 북한 매체가 오락적 요소를 속속 등장시키며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공산국가 특유의 ‘딱딱한’ 이미지를 벗으려는 북한의 다양한 시도는 김정은 집권 이후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최근 북한 조선중앙TV의 남자 아나운서가 진행 도중 감탄사를 연발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8일 SBS에 따르면 최근 조선중앙TV에 등장한 이 남자 아나운서는 태양열을 이용하는 주유소를 찾아 원격조종 전지판 회전 장치를 사용하며 놀라는 연기를 하는 등 만담을 하는듯한 독특한 진행으로 화제가 됐다.
또 이 아나운서는 양복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장난기 어린 미소와 포즈를 취하며 “제가 (양복을) 입은 모습이 정말 맵시 있고 보기 좋지 않습니까”라고 대화하듯 진행을 이어갔다. 그간 대본을 읽듯 경직된 말투와 결연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전투적 모습을 연출하던 기존 북한의 보도 스타일과는 퍽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김정은 체제 들어 더 이상 특별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개혁개방 움직임을 의심하게 할 만한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판 ‘소녀시대’로 이름을 알릴만큼 파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모란봉악단이 그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6월, 형형색색의 튜브탑 미니원피스에 ‘킬힐’을 신고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이들은 일제히 같은 색, 같은 모양의 한복이나 노출이 거의 없는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던 은하수악단 등 기존 북한예술단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유주의체제 국가에서 더 친숙히 느낄만한 무대를 연출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열린 8.25 남북 고위급 합의 당시에는 과거 보도방식에서 볼 수 없던 현장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합의 직후인 25일 오후, 북측 대표로 참석했던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조선중앙TV에 직접 출연해 회담에 참석한 소감을 밝혔다. 함께 참석한 김양건 비서 역시 이튿날 해당 매체에 출연해 직접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북한의 보도방식에서 크고 작은 사안에 관계된 고위 당국자가 매체에 직접 등장해 ‘소감’을 전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방식에서 현장의 주체가 직접 나서 ‘소통’하는 방식으로 변화된 양상이다.
김정은 역시 2012년 4월 김정일 사망 후 공개적으로 연설을 하는가 하면 정치국회나 여러 회의를 통해 여러 차례 방송에 출연해 직접 간부들에게 최고지도부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정은 체제 이후 북 당국자들이 직접 매체에 등장해 연설하는 것은 과거 북한 보도방식에서는 볼 수 없던 현상으로, 현장감과 소통을 중시한 서구의 보도방식을 좇는 형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보도 주제도 보다 다양화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맛집, 여행지 소개와 같은 프로그램이 올초 북한에서도 등장했다. 지난 1월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송한 ‘동해의 명승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에는 부부 출연자들이 등장해 북한 곳곳의 명소와 맛집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때 함께 현장을 찾은 리포터가 방송 중간 중간 곳곳의 명소와 음식점 메뉴를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기존 리포터만 나서 대본을 읽듯 홍보했던 방식에서 일반 주민들을 동원해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변화에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유럽 유학파 출신인 것에 주목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본보에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르게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서구의 보도방식을 접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이를 통해 보다 ‘주민 직접적’으로 소통에 무게를 둔 선전선동 형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변화는 분명하지만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눈에 띄는 북한의 변화는 김정은 정권에 의해 의도된 표면적인 변화로, 근본적 변화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은 8일 본보에 “북한의 보도 스타일이나 문화·예술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고 해도 모두 김정은 정권이 의도한 표피적 모습으로, 공포정치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술수”라면서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는 ‘선군정치’, ‘병진노선’이 변화하는 것으로, 이를 제외한 변화는 모두 표피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