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곽도원 "공인의 삶, 감당 안 될 때 있다"
영화 '특별시민'서 심혁수 역 맡아 최민식과 호흡
"제대로 된 정치인 뽑자는 게 영화 메시지"
영화 '특별시민'서 심혁수 역 맡아 최민식과 호흡
"제대로 된 정치인 뽑자는 게 영화 메시지"
"저보고 '공인'이래요. 진짜 공인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인데 말이죠. 공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요? 저도 공인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강할 것만 같은 곽도원(본명 곽병규·43)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고민이 꽤 깊어 보였다. 걱정, 근심거리가 있으면 '뭐 그까이꺼!'라고 툴툴 털어버릴 것만 같은 그였다. 하지만 직접 만난 곽도원은 '평범한 인간' 곽병규와 '배우이자 공인' 곽도원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20일 서울 팔판동에서 영화 '특별시민'(감독 박인제) 홍보 인터뷰차 곽도원을 만났다.
'특별시민'은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가 대한민국 최초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정치 스릴러물이다.
'장미대선'과 맞물려 화제가 된 영화는 권력을 얻는 수단이자 입문 과정인 선거, 그리고 정치판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간 많이 봐왔던 대한민국 정치판의 모습이 그대로 나와 영화 속 상황을 현실에 발붙이게 만든 점이 미덕이다.
곽도원은 극 중 변종구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역을 맡아 최민식과 앙상블을 이룬다.
곽도원은 "선거판이라는 소재가 신선하고 재밌었다"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시국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고 미소 지었다.
'장미대선'과 맞물린 것에 대해선 "탄핵 정국이 될지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지친 현실에 또 정치 영화라서 진절머리날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정치인에게 당하지 말고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자는 게 '특별시민'의 메시지다. 나쁜 정치인에게 지배당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심혁수는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인물이다. 극 중 심혁수의 가족은 등장하지 않는다. 집에 가도 반겨주는 이 없다. 심혁수의 취미는 구두 모으기다. 구두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광이 나게 반짝반짝 닦는다.
배우는 심혁수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외로운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심혁수에게 품었던 궁금증을 나열했다. '정치판에서 영원한 친구나 적은 없다'는 말의 의미,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이유, '정치인들은 권력욕만 있을까', '정치인들은 자기 고민을 가족들에게 얘기할까', '정치인들은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등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단다.
이어 검사 출신 심혁수의 전사(前史)를 상상했다. 아내, 아이들을 비롯해 심혁수가 집착하는 구두 스타일까지 생각해 캐릭터를 만들었다.
아쉬운 점을 묻자 "많은 분량이 잘려나간 건 아쉽다"면서도 "좋은 배우들과 제작진이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는 부분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전날 대선 후보 스탠딩 토론이 열렸다. 몇 달간 정치인으로 산 곽도원은 어떤 인물이 바람직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할까. '공약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답이 나왔다.
'특별시민'에서 후보들은 공약, 정책에 집중하기보다는 네거티브를 펼치며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올바르게 쓰여야 하는데 참...어제 TV 토론을 보는데 '네거티브 말고 없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촌철살인 질문도 없고요.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도 첫 스탠딩 토론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나아지겠죠?"
최민식과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이다. 그는 "민식 형님은 항상 떨림을 주는 선배"라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민식 형님 앞에 서면 긴장되고 너무 떨립니다. 식은땀도 나고. 허허. '대호'가 앞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죽을 것 같아요."
변종구 캠프의 '젊은 피' 박경 역을 맡은 심은경에 대해선 "어린 나이인데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며 "정말 대견하고, 잘해내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흥행은 배우로서 짊어질 수밖에 없는 부담이다. 곽도원은 "정말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김영애를 언급하며 연기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냈다.
"고해성사하자면 '죽을 것 같이 열심히 하는 게 연기'지, '죽음과 맞바꾸는 게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기의 숭고한 정신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하는데 진짜 열심히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루하루 열심히 연기하는 게 예술처럼 아름답길 바랍니다. 관객들의 믿음, 영화에 참여한 분들을 떠올리며 사명감을 갖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크게 아쉬운 점은 없어요. 또 정치 얘기냐고 지겨워하지 마시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여섯 개의 시선'(2003)으로 데뷔한 그는 수많은 단역과 조연을 거쳤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변호인'(2013), '타짜-신의 손'(2014)을 찍은 후 '곡성'(2016)으로 주연을 꿰차며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아수라'(2016)에 나온 그는 '아수라' 홍보차 출연한 MBC '무한도전'에서 의외의 사랑스러움을 뽐내며 '곽블리'(곽도원+러블리)라는 귀여운 수식어를 얻으며 사랑받았다.
인터뷰 내내 '곽블리' 웃음을 터뜨린 그는 인터뷰 말미 '곽블리' 수식어를 언급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런 수식어가 사람을 옭아맨단다.
그러면서 '인간' 곽병규에서 '공인' 곽도원을 거치면서 겪었던 심경을 전했다. "한 선배가 '스스로 다스리면서 살아라'고 해주셨어요. 근데 이 과정이 힘들잖아요. 죽을 때까지 곽병규와 곽도원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 듯해요. 문득 이럴 때 있어요. 밤에 외롭고 힘들어서 휴대폰을 봤을 때, 카카오톡 친구는 400명이나 되는데 전화할 친구가 한 사람도 없을 때요. 이게 잘 사는 건가 싶죠. 그럼 혼자 술 마시면서 '무한도전' 보곤 해요. 하하."
남자이자 인간 곽도원으로 고민하는 부분도 깊었다. 그는 윤여정이 뱉은 '나 환갑을 처음 겪어봐서 모르겠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는 말과 성동일이 '응답하라 1988'에서 한 대사 '미안하다. 아빠를 처음 해봐서 잘 몰랐다'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도 공인이 처음이고, 45세가 처음이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쉼터인 제주도에서도 마스크 쓰고 다녀야 합니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참 속이 부대끼는 기분이에요. 이런 불편함을 처음 경험해서 도망가고 싶기도 했어요. 잠을 잘 못 자기도 하고. 연극할 땐 마음대로 여행도 다녔는데 이젠 안 돼요. 제가 이런 얘기 하면 '그래도 너 먹고 살잖아'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요. 제게 닥친 일들이 감당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배우는 심혁수를 언급하며 '고민 토로'의 정점을 찍었다. "심혁수는 똑똑한데 '곽병규라는 사람은 왜 이럴까', '왜 이런 선택을 못할까'라고 생각한 적 있어요. 제주도에서 곽병규로 혼자 살면서 곽도원을 감추려면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제주도에서 지내다 보면 서울 오기 싫을 때도 많아요. 마스크를 더 큰 걸 써야 할까요? 하하."
곽도원은 "연기를 하면서 공인으로 사는 건 혼자서 못해내는 과정"이라며 "소속사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도 속이 부대끼는 건 어쩔 수 없다"고 '고민 토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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