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진출·대권행보 전망 난무하지만…'황교안 재판(再版)' 될 수 있다 우려도
‘살아있는 권력’에 거침없이 수사의 칼날을 겨누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결국 자진 사퇴를 선언하면서 그의 화려하면서도 순탄치 않았던 검찰 인생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총장은 4일 대검찰청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윤 총장의 이 같은 언급에 법조계 등에서는 당장 윤 총장의 정계진출과 대권행보 등을 전망하고 있지만 조직 없이 바람만 앞세워 여의도에 뛰어들었다 오명 속에 사라진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1960년생인 윤 총장은 서울시 연희동에서 태어나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4학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서 9년간 낙방하다 1994년 34세의 나이로 비교적 늦게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윤 총장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등에서 일하다 1999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2009년 대구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으로 부임하고 이후 대검찰청 중수1과장,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에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며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의자인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다. 이어 그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강도를 낮추기 위한)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며 ‘항명 파동’의 중심에 섰다. 특히 이 자리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강직한 원칙주의 검사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윤 총장은 당시 서울지검장에게 보고·결재 없이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한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고 특별수사팀장 자리에서 경질됐지만,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특검팀은 국정농단 사태 핵심 인물들을 잇달아 구속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후 윤 총장은 '문재인의 남자'로 승승장구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윤 총장을 임명했다. 당시 윤 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DAS) 의혹, 사법농단 의혹 수사,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굵직한 수사를 도맡으며 현 정권이 원하는 성과를 냈다.
여권은 “흔들림 없는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정권 중반기 조직 장악의 적임자”라고 윤 총장을 끝없이 치켜세우며 2019년 검찰총장에 앉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임명식에서 “살아있는 권력도 눈치 보지 말라,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수사 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윤 총장이 '뼛속까지 검찰주의자'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마냥 자신들의 편인 줄만 알았다. 나라를 두 동강 냈던 '조국 사태'를 계기로 윤 총장과 여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의 뜻에 부응하겠다는 듯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향해 거침없는 수사의 칼날을 겨눴고, 2019년 8월 당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딸 입시 특혜 의혹과 일가 사모펀드 논란, 사학비리 등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오자 조국 후보자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어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등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자 정부·여당은 일제히 윤 총장을 규탄하고 윤 총장 라인 인사를 잘라내는 이른바 ‘학살인사’를 단행했다.
조국 사태 이후 새로 취임한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 총장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인 2020년 11월, 추 전 장관은 정치적 중립에 관한 신망 손상 등을 이유로 윤 총장에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윤 총장이 신청한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고, 추 전 장관은 올해 초 사실상 경질됐다.
이후 여권은 박범계 의원을 새 법무부 수장으로 앉히고 '검찰개혁 시즌2'에 박차를 가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경파들은 검경수사권 분리, 공수처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까지 밀어붙히며 윤 총장을 압박했다. 윤 총장은 중수청 신설을 통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에 대해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고, 결국 사의까지 표명했다.
윤 총장이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이었다"는 일각의 비판까지 무릅쓰고 작심 강경발언을 이어간 것은 중수청 설치가 검찰의 존재 자체를 흔들수 있다는 검찰 수장으로서의 절박감과 향후 정치적 행보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치권 등 각계는 윤 총장의 향후 정계진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렇다할 야권의 차기 대권후보가 빈곤한 상황에서 각종 여론조사 수치가 입증하는 국민적 지지기반을 발판으로 유력 정치인으로 변신해 향후 대선레이스에 합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윤 총장은 이날 사퇴를 표명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해 정계진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기존 정치권에 조직과 인맥이 전무한 상황에서 바람에만 의지해 여의도에 입성할 경우 노회한 기성 정치인들의 속셈에 이용만 당하고 철저하게 소모된 뒤 황교한 전 총리처럼 황급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