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홍종선의 메모리즈㉜] 하정우가 흉터치료 제안을 수용한 까닭


입력 2021.06.05 06:40 수정 2021.06.05 10:1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하정우 ⓒ영화 '백두산' 인터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때는 2019년 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영화 관련 행사에서 하정우를 보았는데 스포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고, 얼굴이 시뻘겠다. 보자마자 든 생각이 ‘다쳤나?’였을 만큼, 얼굴 부분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피가 배어있었다.


상대가 곤란할 질문을 굳이 하지 않는 게 예의지만,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고 속마음은 눈빛으로 탄로가 난 모양이다. 하정우가 먼저 설명해 주었다.


“여드름 흉터 치료한 거예요. 의사분 설명을 빌자면 얼굴에서 아주 얇은 ‘피부 마스크’를 한 겹씩 레이저로 떼어내는 거래요.”


설명을 들으며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마치 생살이 드러난 것 같은 얼굴을 보며 피부 한 겹이 마스크처럼 떼어지는 상상을 하니 눈이 질끈 감겼다. “너무 아플 것 같아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본의 아니게 질문이 된 기자의 말에 하정우는 답했다.


“레이저 여드름 치료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뭐 비슷하겠지 싶은데 원장님께서 수면 마취 치료가 필요하다시는 거예요. 괜찮다고 했죠. 그래서 그냥 했는데, 정말 너무 아파서 창피 이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러댔어요, 아이처럼요. 한 번은 모르고 생으로 했지만, ‘아, 의사가 수면 치료 얘기하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하고 따르고 있어요.”


얘기를 듣다 보니 단순 미용 치료가 아니라 다른 종류 치료 같고, 혹시나 피부만 벗겨내고 되레 더 큰 흉터가 남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의 심각한 얼굴이 눈앞에 있다 보니 믿을 만한 실력의 병원인지 궁금해졌다. “잘 알아보고 한 거죠?”.


“아, 제가 먼저 알아본 건 아니고 동생(소속사 대표) 통해 연락이 왔어요. 저의 팬이시라며, 본인이 흉터 치료 전문 의사인데, 화면에서 제 얼굴 볼 때마다 ‘내가 말끔하게 해 줄 수 있는데’ 싶어 안타까우셨다네요. 얘기 듣고 주변에 물어보니 흉터 치료 잘한다고 해서 예약 잡고 다니고 있어요.”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정우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흥행 ‘블루칩’이 됐다. 기본기 탄탄한 연기력, 기존 배우들과는 다른 스타일의 현대적 연기(연기가 아니라 일상으로 보이는 자연스러운 캐릭터 창출)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함에도 스타 배우에게 미모는 필요불가결의 조건이어야 하는 건가, 안타까운 마음에 물었다. “여드름 흉터가 많이 신경 쓰였던 거예요?”.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서 사내 녀석이 머쓱하면서도 피부관리 받고 여드름 치료도 했던 거고요. 사실 이번에 ‘말끔하게 할 수 있다’는 흉터 치료 제안을 받아들인 계기가 있어요. 영화 ‘신과 함께’ 때, 그린 매트에서 허공에 보이지 않는 칼 휘두르며 연기하다 보니 궁금했어요, 화면에는 어떻게 나오는 건가, CG가 입혀지면 어떻게 보이는지가요. 그래서 작업하시는 곳에 찾아갔어요, 일정 끝나고 가느라 늦게 갔는데. 어떤 분이 제 얼굴의 여드름 자국 지우느라 애쓰고 계시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판타지 CG 작업 하기도 바쁜 일정에 내 얼굴이 시간을 잡아먹고 있구나, 내 흉터 때문에 야근을 할 일인가.”


물론 하정우의 여드름 흉터 때문에 야근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촉박한 일정에 자신의 얼굴을 붙들고 씨름하는 장면을 본 하정우의 미안한 마음과 절망은 이해가 됐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하정우의 여드름 흉터 치료에 대한 이성적 접근을 멈추고, 친구의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로서 추후 더 면밀히 알아보고 조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아까 말한 수면 치료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위내시경 해보셨죠? 그거랑 똑같아요.

아, 프로포폴. 저는 근데, 잘 못 깨어나서 위내시경 정도는 생으로 해요.

통증을 잘 참으시는구나.

잘 참는다기보다는 못 깨어날까 두려워서요.

저는 잘 깨어나더라고요, (흉터) 치료 중간에 깨어날까 봐 걱정될 만큼요. 실제로 이번에 중간에 깬 적도 있었어요.

으악!


기자 역시 의사의 결정이라 하니 수면 마취 치료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겨울쯤 다른 행사에서 볼 일이 있었는데, 참석 인원이 많아 특별히 대화를 나누진 못했으나 얼굴이 한결 깨끗해진 걸 보며 ‘다행히 효과가 있네’ 생각하고 치료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하정우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작품 안에서 그는 스타 아닌 배우다 ⓒ영화 '터널' 스틸컷. ㈜쇼박스 제공

그리고 얼마 안 돼, 지난해 2월 프로포폴 사건이 터졌다. 취재해 보니 해당 병원에서 재벌 2세, 3세 관련 프로포폴 불법 투약이 이뤄졌고 투약 횟수가 엄청났다. 하정우는 2019년 1~9월, 10차례 투약이 확인됐다. 신기하다고 할 만큼 이상한 건 재벌들에 관한 보도는 나오지 않거나 나왔다가도 금세 사라졌다. 재벌 중에서도 그룹의 규모에 반비례해 상대적으로 작은 쪽의 보도가 그나마 남아 있었다. 언론의 포화는 대중연예인 하정우에게로 집중됐다.


그 과정에서 변명할 수 없는 잘못도 드러났다. 하정우 치료의 일부가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 명의로 기록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하정우 소속사는 곧바로, 병원 첫 방문 전부터 “모자와 마스크를 하고 오라”며 프라이버시를 강조했고, 같은 맥락에서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의 연락처와 주민번호를 요청하기에 전달했다고 입장문을 통해 밝혔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지나쳐간 일에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촬영 등의 일정으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 소속사 관계자를 찾는 것, 아니 그 이전에 연예인 개인이 아니라 소속사 통해 연락하는 게 연예계 관행이니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개인정보 보호를 소홀히 했다. 지난 2017년, 우리가 너무나 아꼈던 한 배우가 소속사 통하지 않고 혼자 예약을 잡고 치료받으러 가다가 변고가 났을 때, 너무나 큰 충격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소속사를 질타하고 왜 스타인데 늘 대동하지 않았는지 아쉬워하기도 했잖은가.


타인 개인정보 제공은 더욱 큰 화가 될 수 있었다. 기록상에는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투약이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 이름으로 이뤄졌다. 하마터면 은밀함을 요하는 이들을 위한 그 모든 투약을 대신 책임질 뻔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모든 방문일시 예약과 치료 예후에 대한 상담 등을 소속사 사람들을 통하지 않고 원장과 직접 문자로 대화했고, 치료를 위한 투약 사실과 횟수를 입증했다. 그래도 타인 명의 사용은 잘못이고, 하정우는 벌금형을 받았다. 치료를 위한 투약임을 인정받아 재판까지 가지 않고 약식기소로 검찰 선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해석된다. 소속사는 이러한 사실을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자신이 누구를 바라보고 연기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배우 하정우 ⓒ영화 '백두산' 레드카펫.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제 보도를 보며 검찰의 약식기소, 심각한 범죄자들과 선 긋기가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배우 하정우가, 또 배우 김남길과 지난겨울과 봄을 함께한 영화 ‘야행’(감독 김진황)이, 배우 황정민과 현재 촬영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감독 윤종빈)이 관객을 만나기 전에 일단락이 돼서다.


하정우는 인터뷰에서 늘, 얼마 전 방송된 예능 ‘곽씨네 LP바’에서도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다)”라고 말한다. 강조해서 말하지 않고 말끝에 자연스레 얘기하기에 귀에 쏙 들어오지 않을 수 있는데, 10년 넘는 세월을 듣다 보니 진심임을 알겠다. 나보다 작품, 작품보다 대중을 앞서 생각하며 일하는 하정우의 연기를 보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파로 개봉이 미뤄지고 있는 블록버스터 대작 ‘보스턴 1947’(감독 강제규)에서 우리 민족의 첫 번째 마라토너이자 신문명인 손기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어서 확인하고 싶다. 배우 하정우는 작품 안에서 자유롭고 아름답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