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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치열한 고민 끝에 완성된 차승원의 '싱크홀'


입력 2021.08.30 14:01 수정 2021.08.30 13:0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올해 한국 개봉작 중 최단 기간 100만 돌파…200만 눈 앞

넷플릭스 '낙원의 밤' 이어 '싱크홀'로 대중 만나

배우 차승원의 얼굴은 하나만 규정지어 떠올리기 어렵다. 올해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으로 서늘한 기운을 가득 품은 마이사 역의 얼굴을 보여줬다면 이번 '싱크홀'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보통의 가장을 연기했다.


'싱크홀'은 11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이 지하 500m 초대형 싱크홀로 추락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재난에 코미디를 버무린 오락 영화로, 차승원이 연기하는 만수는 대리운전, 사진관, 체육관 트레이너 등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다. 불만 가득한 얼굴에 틱틱 거리며 오지랖을 꺼내지만, 빌라의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임한다. 밖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지만, 집 안에서는 아들의 눈치를 보며 숨소리조차 편하게 못 내쉰다. 코믹한 영화 속 상황과 현실적 아빠의 모습을 버무린 그야말로 '웃픈 캐릭터'다.


평소에도 한 번 더 비틀어서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걸 즐겨 한다는 차승원은 슬픈데 웃음을 유발하는 '싱크홀'에 마음이 갔다. 만수란 캐릭터도 가상의 설정을 하기보다 자신의 것을 극대화해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차승원에게 '싱크홀'은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장르는 별로 안 좋아해요. 재난과 코미디라는 다른 성질의 만남이 재미있었어요. 나이가 있다 보니 저와 동떨어진 연기를 하는 것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만수는 저를 많이 투영할 수 있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캐릭터를 만들어는 데, 이제는 그런 걸 걷어내려 해요. 만수는 보편적인 아빠라고 생각해요. 자식에게 못해 주는 것들이 많이 미안하고, 눈치를 보죠.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아빠의 마음, 그런 걸 보여주려 했어요."


'싱크홀'은 지난 11일 개봉 이후 현재 200만 관객 고지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가는 항상 어려움에 발버둥 쳤지만, '싱크홀'은 방역 4단계 시점에서 올해 한국 영화 중 최단 속도로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기분은 좋지만 박스가 작아져서 그건 많이 아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열심히 찍었네'라는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많이 울었다'라고 말한 관객 반응이 인상에 남았어요. 그러려고 만든 건 아니데 말이죠. 하하."


지하 500m 싱크홀이라는 설정 아래 차승원은 김성균, 이광수, 김혜준과 함께 절박하지만 유쾌한 고군분투기를 보여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재난과 여기에서 보여줘야 할 현실감, 감정 연기, 수중 연기 등 소화해야 할 일이 많았던 차승원. 이를 지켜본 후배 배우들은 하나같이 '차승원같이 솔선수범하고 현장을 편하게 만드는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저는 서로가 일에 대해 기본적으로 피해를 안주는 현장을 좋은 현장이라고 말해요. 그건 시간 약속일 수도 있고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죠.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잘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싱크홀'은 더할 나위 없었죠. 제가 선배니까 먼저 다가갔어요. 그래야 그들도, 저도 편하게 일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모두 심성이 고운 친구들이었어요. 못된 친구들이었다면 제가 다가갔겠습니까.(웃음)"


'싱크홀'은 생생한 재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지하 500m 지반의 모습을 담은 대규모 암벽 세트를 만들고, 짐벌 세트 위에 빌라 세트를 짓는 대규모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또 물이 차오르는 장면 촬영을 위해 아쿠아 스튜디오에 빌라 옥상까지 포함된 수조 세트, 영화 속 장수동을 표현하기 위해 총 20여 채 건물을 지어 지상 세트를 완성했다. 차승원도 이같이 대규모 세트장에서 연기를 할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차가 실제로 지나갈 수 있는 세트라는 점이 근사하고 새로웠어요. 세트 안에서 운전하는 게 희한하더라고요.(웃음) 재난 1차, 2차 이 현장을 구분해서 지었는데 1차에서 덜 깨져 있던 것들이 2차에서는 더 부서져 있고 이런 디테일들이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싱크홀'은 수직 상승하는 집값으로 인해 고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11년 만에 자가를 마련한 동원(김성균), 원룸 월세에 사는 김대리(이광수)와 은주(김혜준), 그리고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만수 등이 보금자리가 무너져내리며 하나같이 절망한다. 또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모두에게 진정한 집의 의미를 넌지시 묻는다.


"저에게 집은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그 집 안에는 우리 식구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집은 크고 좋은 것들이 가득한 것보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이 모습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들어 '가화만사성'만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싶어요. 펜트하우스가 살면 뭐 합니까. 가족들의 온기가 있어야죠."


코로나19 이후 관람 환경이 급변하며 '싱크홀'은 지난해부터 개봉을 미뤄왔고, '낙원의 밤'은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많은 영화들이 제작부터 개봉까지 예전과 다른 고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배우로서 차승원은 하루빨리 원상복구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변화 겪고 싶지 않아요. 이 흐름 안에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시장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서로 윈윈 해야 하겠죠. 극장 개봉이 위축돼 있고, 개봉을 하더라도 불안해요. 이런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차승원은 개봉이 예정된 영화들을 위해 '싱크홀'이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경쟁보다는 서로가 상생하는 마음으로 한국 영화의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저희가 잘 돼야 추석 시장이 커지겠죠. 그래야 또 그다음 영화도 개봉하는 데 부담을 덜 겪을 것 같고요. 승자와 패자 없이 모두가 잘 되어서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싶어요."


차승원은 '스위치가 잘 되고 싶은 배우'가 되기 위해 여전히 고민한다.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 대중에게 캐릭터로 기억되는 일은 보람을 안긴다. 좋은 연기, 차승원 다운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그가 은퇴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과제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이 고민을 많이 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연기는 인위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나답게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늘 생각해요. 연기하는데 다른 비결은 없어요. 그냥 그렇게 고민하고 그것들을 연기에 담으려고 합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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