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언론, 디즈니플러스에 입장 표명 요청
'뮬란' 인권 탄압 정당화 논란 떠올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가 지난 16일(이하 현지 시각) 홍콩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미국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중국 천안문(톈안먼) 사태를 연출한 에피소드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디즈니플러스가 '뮬란' 사태에 이어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29일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따르면, 2005년 첫 방송된 '심슨 가족'의 시즌 16의 12번째 에피소드 '베이비 인 차이나'(Goo Goo Gai Pan)가 사라져 홍콩에서 서비스 되지 않고 있다.
이 회차는 심슨가족이 입양할 여자아이를 찾기 위해 중국을 찾는 내용이 담겼다. 심슨가족은 베이징 천안문 광장의 마오쩌둥(毛澤東) 기념관에 안치된 마오 중국 전 주석의 미라를 감상하며 "5000만 명을 죽인 작은 천사 같다"라고 말한다. 중국 대륙을 군림했던 마오쩌둥은 1976년 숨진 뒤 방부처리돼 베이징 한복판 마오쩌둥기념관(毛澤東記念館) 기념당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다.
또 '천안문 광장:1989년 여기서 아무일도 없었다'라는 비석이 등장한다. 이는 천안문 시위의 역사를 백지화 하려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블랙코미디 요소다. 이외에도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상징하는 전차를 맨몸으로 혼자 막아선 시위대 남성 일명 '탱크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담겼다.
천안문 민주화시위란 1989년 6월 4일 학생·노동자·시민들이 중국 공산당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벌인 시위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무차별 발포를 했고, 탱크와 장갑차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아직까지도 중국 내에서 검열과 보도통제로 금기시 되고 있다. HKFP에 따르면, 검열 우회로인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디즈니플러스에 접속하면 여전히 해당 에피소드를 감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홍콩언론은 디즈니플러스의 입장 표명을 요청한 상태다. 해당 에피소드와 관련 중국의 검열이 있었는지, 디즈니 측에서 결정한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디즈니플러스는 영화 '뮬란' 공개 당시에도 제작비 2억 달러(2357억원)를 투입한 디즈니가 중국 시장 흥행을 위해 중국을 의식했다는 지적을 받고 아시아권의 거센 ‘보이콧’과 국제적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뮬란' 제작진은 주요 촬영지로 중국 소수민족 위구르족의 자치구인 신장 지역을 택했고, 엔딩 크레딧을 통해 중국 당국의 협조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으로, 신장위구르족(이슬람교를 믿는 중국 소수민족) 등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재교육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외신들은 디즈니가 인권탄압 지역인 신장에서 촬영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타협했다고 비난했다.
그 동안 디즈니는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화권을 바탕으로 주체적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왔다. 인종·민족·종교·성(性)차별 등의 편견을 경계하는 태도,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우고 중요 가치로 강조했기에 소수민족을 배제하는 모순적인 태도는 위선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뮬란' 측은 영화 제작을 허락한 국가 또는 지방정부에 사의를 밝히는 것은 전 세계적인 관행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시들지 않았다.
디즈니플러스의 이같은 행보에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넷플릭스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의 이야기를 '틴에이저vs슈퍼파워', '우산혁명:소년vs 제국' 두 편으로 제작했다.
조슈아 웡은 15살 때인 2012년 중 고등학교 학생운동단체인 학민사조를 설립하고 학생운동을 주도 하며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당시 홍콩 당국이 중국 본토식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려 하자 반대 운동을 주도해 계획을 철회시켰다. 이후 2014년 79일간 홍콩 도심을 점거하고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일명 '우산 혁명'의 주역으로 다시 등장했다. 제2의 천안문 사태를 우려한 지난해 범죄인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 때는 미국으로 건너가 홍콩 인권민주주의법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OTT 플랫폼으로서 조슈아 웡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여지와 판단을 제공했다.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를 잡기 위해 빠르게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지만, 소수를 외면하고 콘텐츠를 검열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행보는 국제적 OTT의 역할과 책임에 어울리지 않는다. 디즈니플러스가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할 때마다 사람들은 '뮬란'과 '심슨가족'을 떠올리지 않을까. 디즈니플러스의 또 다른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