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신고 후 불이익 사례 잇따라…기소의견 송치 건수는 8개월간 '15건'
전문가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무고·명예훼손 성립 가능성 작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가 해고되거나 무고 또는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는 등 불리한 처우를 당하는 근로자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보복 갑질'이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문가들은 전면적인 제도개선 및 처벌 조항 손질이 필요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최근 발간한 사례집에 따르면 직장인 A씨는 동료와 함께 노동청에 직장 내 성희롱을 진정하고 경찰에 가해자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고 회사는 오히려 A씨와 동료를 해고했다. A씨는 "가해자는 나를 무고로 고소하고 강제추행 고소 사건의 대응 변호사에 대한 선임료 및 위자료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폭행·폭언을 당해 경찰에 신고한 또 다른 근로자 B씨는 "변호인 도움 없이 혼자 대응하고 있는데 패소하게 되면 가해자의 변호사 선임비를 물어내고 무고죄로 역고소당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7일부터 14일까지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1.4%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또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1001건 중 회사나 노동청 신고까지 이어진 사건 402건을 살펴본 결과 신고를 이유로 노동자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총 139건으로 신고 건수 대비 34.6%에 달했다.
하지만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고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4301건 중 피해 신고 후 불이익을 당한 경우와 관련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이 송치된 건수는 15건에 불과했다.
직잡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 있는 처벌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신고로 인한 해고 자체가 불리한 처우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그 처우가 정당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등 노동청이 보복 갑질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거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협박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이 실제 있었다면 무고 및 명예훼손죄는 성립할 가능성이 작다"며 "고소를 하는 측도 결국 괴롭힘과 성희롱에 대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과정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쉽게 고소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직잡갑질119 권두섭 변호사는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또한 해고 등 큰 불이익을 당하면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애매하고 약한 수위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에는 '신고했을 때 더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문제 제기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보복 갑질이 반복되는 원인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복갑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 차원의 대응 시스템 마련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 변호사는 "피해자는 무고, 명예훼손, 손해배상 등이 실제로 성립될 가능성이 작다는 걸 인지하고 자신감 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면 다른 가시적인 증거가 없어도 괴롭힘과 성희롱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어 평소 기록을 철저히 하거나 카톡, 메시지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권 변호사는 "노동조합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고용노동부나 수사 기관이 불이익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실제 현장에서 처벌 조항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잡갑질119 권호현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등 불이익 처우에 관해서 지금은 피해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며 "반대로 입증 책임을 전환해 회사가 직접 '해고, 부당징계, 부당 전직 등 불이익 처우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와 같이 입증하게끔 법을 규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