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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㊸] 리틀 부다, 키아누 리브스, 377억 기부


입력 2022.01.14 08:28 수정 2022.01.14 08:2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키아누 리브스 ⓒ영화 '존 윅' 스틸컷

지난 3일 뉴욕포스트는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영화 ‘매트릭스’ 신작으로 벌어들인 수익 70%, 3150만 달러(약 377억원)를 백혈병 치료법 연구에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377억원, 평생에 걸쳐서도 벌 수 없는 금액 앞에 “돈이 많으니까”라고 말하기 어렵다. 짧게 살았든 길게 살았든,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기부는 나이나 수입에 비례하지 않는다. 기부라는 것이 ‘돈’으로 하는 게 아님을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기부금액만 떠올려봐도 당장 확인된다. 돈으로 하는 기부든 몸으로 하는 봉사든 ‘마음’이 한다.


키아누 리브스가 마음으로 기부해 왔다는 것은 지속성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매트릭스’ 1~3편을 통해 출연료 및 성과급으로 2억 6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는데 그때도 이미 백혈병 환자, 어린이 암 환자,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보냈고 애초에 그 발생을 예방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재로 소아암과 백혈병 연구를 위한 재단을 만들어 지원했다.


영화 '영블러드'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키아누 리브스 ⓒ출처=네이버 블로그 cine_play

키아누 리브스의 개인사도 기부의 배경에 있다. 그가 혈액암, 백혈병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데에는 여자 동생 킴 리브스가 영향을 끼쳤다. 리브스가 세 살 때 아버지는 홀로 떠났고, 어머니는 자녀를 데리고 레바논으로 시작해 호주, 미국의 뉴욕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할 때까지 멀리 세계지도를 돌았고 캐나다에서도 이사가 잦아 리브스는 고등학교만 4군데를 다녔다고 한다. 리브스와 킴은 친구를 갖기엔 이동이 잦은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내면서 유독 사이가 돈독했는데, 1991년 킴이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킴의 병세는 10년 넘게 지속돼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서야 완치됐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어서 당시 키아누 리브스는 2000년을 전후해 영화 출연도 멈추고 동생 옆으로 거처(2003년에야 첫 집을 샀고 호텔 등의 임대 숙소를 떠돌았으니 아마도 장기 투숙 호텔)도 옮기고 극진히 간호했다. ‘매트릭스’ 속편 촬영을 미뤘다 하니, 1편이 1999년에 개봉하고 2편과 3편이 2003년에 연달아 개봉한 것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기부 또는 위로, 함께 비 맞아 주는 사람 ⓒ영화 '존 윅3' 스틸컷

키아누 리브스는 동생이 완치된 후에도 계속해서 연구에 돈을 보탰고 기부를 멈추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소아암과 백혈병 환자와 연구를 돕기 위한 자신만의 암 기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자선단체가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리지 않았다. 2009년에야 해당 사실이 알려졌고, 리브스는 당시 ‘레이디스 홈’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 병원과 암 연구를 돕는 개인 재단을 지난 5~6년 운영했습니다. 저의 활동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선단체에 제 이름이 거론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냥 단체에 맡기고 있죠. 다만 저의 지명도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도울 겁니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기부인의, 실천하기 쉽지 않은 자세다.


마치 다시 함께하게 된 동생의 가치, 꺼질 듯하다 소명한 동생의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도 읽히는데 이보다 더한 동생에 대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싶다. 더불어, 1999년 크리스마스이브, 생명으로 잉태된 지 8개월이나 된 상황에서 태중 유산된 자신의 아이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도 읽힌다. 내 동생만, 내 가족만 아끼는 애정에서 멈추지 않고 널리 사랑하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다.


'영 블러드'에 이어 다시 만난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 ⓒ영화 '폭충 속으로' 포스터

키아누 리브스는 척추를 다친 하키 선수들을 돕기 위해 만든 단체 ‘스코어’, 동물보호단체 ‘페타’ 등에도 꾸준히 기부와 후원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도 개인사가 연상된다.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던 소년이 영화를 보고 연극에 참여해 연기를 하고 아이스하키를 하며 얼굴에 그늘이 걷혔다. 이것이 운명인가 싶게, 캐나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를 꿈꾸던 운동 소질이 뛰어났던 소년은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미국 영화 ‘영 블러드’에 기용되며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유이’하게 좋아하고 잘하던 일, 연기와 아이스하키가 하나로 만난 영화였으니 ‘물 만난 고기’였다. 하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하키 선수들의 애환을 함께한다. 반려견 한 마리로 핏빛 전쟁이 시작되는 영화 ‘존 윅’을 생각하면, 동물보호에 관심을 가져온 그가 존 윅을 연기하기엔 제격이지 않나 싶다.


배우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오른쪽부터)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스틸컷

‘미담 제조기’라 불리는 키아누 리브스다 보니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개인적으로, 배우로서의 개념 행보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는 1997년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에 출연을 결정한 뒤, 제작비 문제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알 파치노를 캐스팅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자신의 출연료를 삭감해 출연을 성사시켰다. 2000년 영화 ‘리플레이스먼트’ 때도, 자신의 출연료를 반납해 전설적 배우 진 핵크만과 함께했다. 덕분에 관객인 우리는 알 파치노-키아누 리브스, 진 핵크만-키아누 리브스의 조합도 보게 됐지만, 훨씬 더 환상적으로 완성된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연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를 위해서도 여러 일을 했다. 자신의 출연료를 스스로 삭감해 박봉에 고생하는 스태프에게 양보하는가 하면, ‘매트릭스’ 오토바이 액션 장면을 연출한 스턴트팀 12명에게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선물했고, 내년 개봉할 영화 ‘존윅 4’ 스턴트팀에게는 직접 제작한 롤렉스 서브마이너 시계를 선물로 건넸다고 한다.


돈을 벌기보다 제대로 쓰는 게 더 어렵다 ⓒ영화 '매트릭스' 2편 포스터

물론 곳간에서 인심 난다. 키아누 리브스가 곳간을 채울 수 있었던 배경에 복잡한 혼혈 혈통(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등의 유럽 혈통을 이어받은 혼혈 하와이인 할아버지와 중국계 하와이인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 영국인 어머니를 둔)에서 장점만 뽑은 듯한 조각 미모, ‘뱀파이어’라 불릴 만큼 더디 늙는 외모도 있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 준비의 노력이 중하다.


실제로 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를 위해 미국에서 2개월, 호주에서 4개월, 액션 전문가 9명을 붙인 훈련팀에 의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반년을 훈련받았는데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풋볼 영화 ‘리플레이스먼트’ 촬영을 위해서도 3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데, 아무리 운동 소질이 뛰어난 키아누 리브스지만 36세의 나이에 ‘진짜 풋볼 선수’처럼 보여 관객의 액션 쾌감을 높일 수 있었던 데에는 ‘땀’이 있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존 윅’을 위해 주짓수, 유도, 쿵푸를 훈련 받아 ‘건푸’(gun 총과 쿵푸를 합한 말)를 선보였다.


영향을 받고,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영화 '리틀 부다' 스틸컷

몸만 준비하지도 않는다. 키아누 리브스는 영화 ‘구름 속의 산책’(1995)에서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폴 슈턴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귀환한 사람의 사진을 구하고 참전 해병대원과의 인터뷰를 자청했다.


특히 ‘리틀 부다’(1993) 촬영을 앞두고는 명상과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네팔을 여행하며 스님을 만나 말씀을 듣기도 했다. 부처를 연기한다는 것이 큰 부담일 수 있었을 텐데, 영화를 보면 얼굴이 닮았느냐의 문제보다 ‘오옴’의 도를 깨달은 한 철학자의 깊이를 담았다. ‘존 윅’ 홍보 차 내한했던 지난 2015년 밝혔듯 불교 신자는 아니라지만, 키아누 리브스의 말이나 행보를 보면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리틀 부다’ 개봉 후 13년이 지난 시점에도 티베트의 사찰로 가서 3개월간 수행한 바 있다.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2015년 내한 당시의 모습

비록 그늘진 유소년기를 보냈지만 스스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다지고, 엄청난 부와 인기를 거머쥔 스타가 된 뒤에도 자만과 향락에 빠지기보다 마음공부와 수련에 힘썼기에 키아누 리브스는 내 것을 움켜쥐기보다 나누는 삶으로 자신을 이끌었다.


키아누 리브스라는 이름은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라는 뜻의 하와이 인디언 말인데, 이제 많은 이의 마음에 싱그러움을 전하는 이가 됐으니 이름 그대로의 삶이다. 내한 당시 그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 내 가진 것의 크기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을 엿볼 수 있다. 우리도 모두 실천할 수 있는 삶의 태도다.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


“불교 신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윤회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제가 하는 일에 관해서도 늘 감사하게 여깁니다. 이런 것들이 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줍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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